1. "어머님은 뭘 조아해?" 양 손에 든 다른 종류의 꽃을 들이밀며 묻는 눈은 천진하다. 사실, 그렇게 거친 방법으로 쫓겨났으니까, 분명 제 성격 감당 못하고 길길이 날뛸줄 알았는데. 의외로 의젓한 태도였다. 아니, 그는 내가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진지한 얼굴로, 깊은 눈매로, 미래에 대해 언급했다. 묵직하고, 따듯하게. * 맨발에 구두만 들린 채로 내쫓긴 상태에서 그는 차마 뒤돌아 가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었나보다. 우물쭈물하면서 현관 앞에 서있는 그를 보고 놀랐다. 일찌감치 자기 집으로 가서 내게 화를 내거나, 씩씩 거리다가 놀러갈 줄 알았더니. 그는 현관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뒤늦게 쫓겨난 나를 보고 씨익 웃는 모습은 또, 아이같이 천진했다. 그리고는 얼른 내 손을 가로채서 도망쳤다. 뒤늦게 문을 열어 고함을 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놀라 우리는 그렇게 날아가듯 도망쳤다. 작은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침대,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타투 도안들, 그리고 작업용 컴퓨터.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하고 있는 그의 집은 마치 집주인 마냥 제 색깔을 그대로 내뿜고 있었다. 천진하고, 정리 되지 않은. 언젠가 엉망으로 어질러진 방을 보고 질색했던 적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마저 그의 일부로 보였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도 마찬가지로, 나를 닮아갔다. 그는 나를, 나는 그를. 천천히 서로를 물들이고, 뒤덮고. 아직까지 그와 나는 진득하게 손을 잡은 채였다. 그와 버스를 타면서도 우리는 웃었다. 키득거리고 서로를 간질이면서 웃었다. 아까 아버지에게 욕을 얻어먹던 것과는 달리 우리는 달큰하게 서로를 응시했다. 그가 자신의 자켓을 옷걸이에 걸고 바지마저 훌렁훌렁 벗으며 금세 속옷 차림으로 부엌으로 달려간다. 문신만 가득하지, 아직 애다. 등에 그려진 무서운 얼굴조차도..침대에 앉으며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뭐라고 할까. 우리 집에 대해. 우리의 관계에 대해. "배고파. 라면 먹고 다시 가보자." 당장에 집을 나와라, 동거하면 된다, 그냥 이렇게 사귀기만 하자, 어쩌면, 헤어지자. 극단적인 반응으로 날뛸 꺼라 생각했는데. 나보다 두 배는 더 이성적으로 판단중이다. 오히려, 혼란스럽고 주눅이 든건 나였다. 부모님의 저런 역정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 긴장대서,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머것써.” 그리고는 냉장고를 열어 얼려둔 냉동밥을 꺼낸다. 무슨, 시험이라도 끝난 양 홀가분해 보이는 태도다. 내뱉고 나니 별거 아니네? 하는 듯한. "일단 너네 엄마를 먼저 꼬셔보자." 라면을 끓이다 말고 아차, 하며 그가 덧붙인다. “아니, 장모님 먼저. 근데 너 엄마 닮았더라. 엄마도 예뻐.” 그리고는 다시 덧붙인다. 엄마말고, 장모님이지 참. 하고. 어쩌지, 너같이 사랑스러운 남자는. * 우선 장모님을 공략해보자며, 설레발을 치며 나를 끌고 간 곳은 꽃집이었다. 그리고는 두 송이 꽃을 보여주며 이를 드러내 웃는데, 이상하게, 든든하게, 느껴졌다. 이토록 작은 너와 나인데. 그렇게 무서운 부모님이었는데. 지금은 무서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거랑 이거. 엄마는, 장모님을 뭘 더 조아해?” "몰라..엄마는 꽃 안 좋아해." "알러지?" "아니, 그냥..아마 안 좋아 할걸. 별로, 만지는 거 본적 없고." "에이. 여자들은 다 꽃 조아해. 우리 엄마도. 누나도. 할머니도. 다 조아해써." 그는 내가 별 도움이 안 됐는지 자기 판단대로 노란 꽃 몇 송이를 직원에게 주면서 포장해달라고 했다. 사실, 졸업식 같은 특별한 날 아니고는 보통의 가정집에서 꽃을 보는 일은 별로 없지. "아부지가 장모님한테 꽃 잘 안줘?" "어..응..그렇지. 아무래도." 보통의 가정집은, 달짝지근한 분위기가 부족하다. 너는, 달랐나보다. "그럼 내가 자주 해주께." 포장 되어 나온 꽃을 품에 한 아름 안아들고 진지하기 말하는 너가, 너무 좋았다. “엄마가 조아하면 조켔어.” 그가 자기 입을 두드린다. “아니, 장모님이.” 2. 꽃을 챙겨들고, 찾아간 집에서 당연히 쏟아지는 것은 질책과 분노였다. 하지만, 내가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에 안도한 것 같아 보였다. 내가 마치, 청소년기 아이처럼 집이라도 나갈 줄 알았나보다. 첫 번째 시도에서 가져온 과일바구니는 현관 앞에 쓰러있었고, 두 번째의 꽃송이도 옆에 던져졌다. "왜 안대요?" 화를 내다말고 아버지는 입을 다물고 그를 노려봤다. 그에 지지 않고 다니엘이 아버지를 노려본다. “그리고 꽃 던지지마요. 이거 엄마, 아니 장모님 준거, 아니 드린거 에요. 저 과일이 아버지꺼에요.” “누가 아버지야!!” 어깨를 으쓱이며 그가 다시 말을 이어간다. 왜 겨론하면 안 돼요? 하고. "그 문신!" “문신?” 그가 자기 손을 들여다본다. 마치 손바닥이라도 맞는 어린 아이마냥 들이민다. “이거 지우면 겨론해도 돼요?” “하! 그 몸뚱이에 빼곡히 새긴 걸 지우다가 애 늙어 죽겠다! 돈은 어디서 나서!” “그럼 이거 다 지울 때까지 동거해도 돼요?” “소금 가져와!!!!!!!” 다시 쓰러지려는 아버지를 진정시킨 것은 생각보다 냉정해진 엄마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네같이 문신을 새기는 사람이 없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테지. 우린 그게 걱정되는거야. 자네의 문신이 자네의 인성을 대신하지 않으리라 믿네. 하지만, 세간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잡고 상황을 설명할 수 는 없지않겠나.” “그럼, 같이 호주가도 돼요?” “안 돼! 절대 안 돼!” “그럼 제가 한국에서 살게요. 귀화할게요.” “그래도 안 돼!!!!!!” “왜 자꾸 안 돼요?” 아. 아버지가 훅훅, 하고 숨을 몰아쉰다. “직업도 안정적이지 않잖아!” “노후설계도 하고 이써요. 튼튼해요.” 안 돼! 안 돼! 안 돼! 하고, 아버지가 도리질을 치고 땅을 두드리고 악을 쓰고, 몇 번이고 다니엘을 내쫓으려 했지만. 밤이 깊을때까지 다니엘을 우리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20대의 장정을 힘으로 이기지 못한 아버지가 버럭버럭 성을 내고, 다니엘은 불리하면 외국인 코스프레로 구렁이 담넘듯 자꾸만 대화를 이어갔다. 어느 순간 엄마는 술상을 차리며 다니엘의 진솔한 태도에 넘어간 듯 보였다. 술을 한 잔, 두 잔 넘어가는 사이, 아버지는 점차 힘을 잃고, 분노 대신 눈물을 흘렸다. “아비 된 입장에서, 응? 좀 안정적이고, 응? 건실하고 말이야! 주말에 같이 목욕탕도 가고! 그런 사위감을 바란 게 그렇게 큰 거였나! 엉?!” “이태원에 가면 문신이써도 들어갈 쑤 있는 모굑탕 이써요. 거기 가면 아부지만 문신 없쓸꺼에요.” “그런 곳은 내가 싫다!” 어느 순간부터 웅얼 거리던 아버지가 추욱, 늘어지고서야 술상이 끝났다. “겨론하자.” 쓰러진 아버지를 확인 하자마자 그가 내 손을 잡았다. “이제, 해도 돼.” 구렁이 담넘듯 결혼 약속을 받아내버렸다. *** 정상들아 노력해봐써..ㅇ.ㄴ...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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