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고 음산하게 깔리는 안개. 잔뜩 쉬어서 흐트러진 종이는 물방울이 비산한 안개 같다. 오래된 흑백 영화처럼 노이즈 낀, 오래된 추억? 혹은 쭈욱 간직해왔던 어떠한 바람. 가볍게 리듬을 타는, 위아래로 흔들리는 박동. 퍼즐을 맞추는 그 모든 색들의 조합. 반쯤은 미친듯 심장 뛰게 하는. 내뱉고 나면 쉬익, 바람이 빠지듯 울리는 쇳소리. 갱스터, 혹은 카르텔처럼 새까만. 온전히 마지막을 바라보며 달리는, 아둔한 무언가. - 김원식은 스물 둘 평생 단 하나의 그림만을 그려왔다. 기억조차 희미할 어린 시절의 그림일기를 펼쳐봐도, 초등학교를 다닐 시절 스케치북을 열어봐도 그려져있는 그림은 하나였다.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쭉, 그 어떤 그림을 요구한다고 해도 김원식이 그려내는것은 늘 같았다. 붉은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남자. 누군가 그림속 남자의 이름을 물었을때 김원식은 그저 웃었다. 늘 그렇듯 사무치도록 수줍게, 입을 가린채 웃어냈다. 감히 제가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남자는 김원식의 창작물이 아닌, 그 자체로 존재하는 무언가였다. 남자는 때로 웃고 있었고, 때로는 울고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따라 남자에게 입혀지는 옷 또한 달랐다. 때로 남자는 서 있었고, 때로는 앉아있거나 누워있었다. 김원식은 종종 남자에게 스스로를 투영하는듯 보였다. 김원식이 그리는 그림에는, 남자의 주변에는 그 어떠한 부속품도 없었다. 흰 캔버스 위, 흰 도화지 위 오롯이 버틴 붉은 남자. 배경도, 함께하는 부속품도 없는 붉은 남자는 김원식에게 스스로보다 중요했다. 그는 신이었고, 종교 그 자체였고, 연인이고, 가족이고, 아주 가끔 성애의 대상이었다. 그는, 심지어는 김원식이었다. - 붉은 '그' 는 눈이 예쁘다. 끝이 살그마니 내려앉은 눈은 순하다. 눈이 뜨여졌을때 제 모습을 감추는 쌍꺼풀은 눈꼬리 즈음에서 흩어진다. 그는 보조개를 가지고 있다. 흰 볼이 길게 패이며 우물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달콤했다. 때때로 김원식은 상상했다. 그림속의 그가 자신과 눈을 맞추며, 볼을 패며 웃는 모습을. - 김원식이 화가로 등단하게된 이유는 하나였다. 그를 그리고 싶다. 혹은 그려야한다. 이제는 의무와도 같이 자리잡은 그 생각은 김원식의 뇌리에 깊숙히 뿌리를 박고있었다. 화가로 등단한 후 발표한 작품은 하나였다. 당연하게도 그를 그린 작품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김원식은 그림에 제목을 붙였다. Pietà. 안긴듯한 형상을 취한 채 흰 천과 함께 흐무러진 그는 심지어 성스럽기까지 했다. 그 고아한 자태에 그림은 수억원대를 호가하며 경매에 올랐지만, 김원식은 끝끝내 그림을 팔지 않았다. 아주 일상적인 날중의 하나였다. 화가라고는 하지만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할수 없는 김원식은 늦은 시간 집에 돌아왔고, 작업실 한켠에 자리하고 있던 캔버스가 텅 빈것을 발견했다. 그래, 텅 비어있었다. 그림 자체는 온전히 제 자리에 위치했지만 그림 안의 그가 사라졌다. 까만 눈동자가 순식간에 빛을 잃고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끝이 캔버스의 표면에 닿았을때, 결국 김원식은 무너져내렸다. 어떠한 경외심마저 담은 채 이유도 알 수 없이 흐느끼기 시작하는 어깨 위로 무언가 와닿았다. 뭉그러져 잠긴 눈이 천천히 어깨에 닿은 그것으로 향했을때, 김원식은 간신히 버티고있던 몸을 무너트렸다. 뒤를 돌 필요조차 없었다. 스스로가 그려낸 손이었다. 그 손이 닿은 흔적만 봐도 황홀할만큼 아릿했다. '그'가 그림에서 나왔다. 최소한 김원식에게만큼은, 신의 강림이었다. - 77ㅑ...너무 오랜만이네여...북흐 저 기억하시는분이 계실런지....돌아왔습니다 저ㅓ...쭈굴쭈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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