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안녕
많이 늦었지? 헤헤
하루에 이야기를 한편씩 써주기로 했는데
어쩌다보니... 헤헤..
상대적으로 어린 너희들은 알지 모르겠지만
직장생활이라는게 그렇잖아.
변수도 워낙에 많고 이리저리 치이기도 하고.
나도 갑자기 일들이 너무 쏟아져들어와서
한동안 글은 커녕 오세훈 그 녀석의 얼굴을 볼 틈도 없었다니까?
무려 같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데 말이야.
아무튼...
변명 아닌 변명은 여기서 끝마치도록 할게.
늦게 왔으니 빨리 글이나 풀라는 너희들의 원성이
벌써부터 환청으로 들리는것 같거든.
그래도 일주일만에 돌아와서 사과도 했으니까
화 내는건 아니지? 미안해~
아무리 아저씨의 유치찬란한 연애사라고 해도
나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이곳에 꽤 있었는데
약속을 어겨버린게 되어버렸잖아.
정말정말 미안해! 앞으로 약속 잘 지키도록 노력할게.
그럼 이야기 시작해볼까?
지난번은 냉전의 끝에 대해서 이야기 해줬지?
오늘은 그럼 소소한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다들 조금 19금 스러운 이야기를 기대하는것 같은데
아직은 내가 그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꺼내기에
부끄러움이 너무 많은것 같아...
말했잖아, 나 고지식하고 조금 꽉 막힌편이라고.
그것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풀어줄테니까, 너무 낙심하지는 말고.
오늘은 소소하게 김준면의 주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게.
보통 나는 주말에 체력을 보충하는 시간을 가지는 편이야.
이런말을 하면 조금 웃기겠지만
내가 원래 사람들한테 둘러쌓여서 헤헤거리는걸
잘 하는 편이거든. 그래서 인간관계도 그렇게 나쁜편은 아니고 말이야.
그런데 사실 혼자 있는걸 되게 좋아하는 편이라서
누군가와 막 이야기를 하고 정신없이 끌려다니다보면
체력이 방전돼서 그걸 회복할만한 시간이 필요해.
음, 주말은 그런 나에게 있어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할수 있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주말에 나는 되도록 아무곳도 안 나가고 집에 붙어있는걸 선호하는 편이야.
주말에 집 밖으로 나가면 피곤하기도 하고 돈만 쓰게 되잖아.
그래서 보통은 늦게까지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대충 점심을 먹고나서 느릿하게 집 청소를 하는 편이야.
사실 난 창소하는걸 엄청나게 싫어하거든. 진이 빠진다고 할까.
그리고 나서 지쳐버리면 소파에 누워서 디브이디를 보거나
주방 테이블에 앉아서 읽다가 말았던 책들을 읽는거지.
어때, 이 정도면 제법 완벽한 주말이지 않아?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완벽한 주말의 표본이야.
왜냐하면 내가 사실은 그렇게 빠릿빠릿한 타입은 못되거든.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톱니바퀴같은 사람이라서.
그래서 예전 여자친구들에게 핀잔도 자주 들었어.
황금같은 주말에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네,
사람이 인생을 즐기는 법을 모르네, 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사실 그 말이 웃기는게, 사람마다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 다를수도 있잖아?
나는 그 방법이 나에게 주어진 느긋함과 시간을 만끽하는거고.
결국에는 취향이 너무 맞지 않는다면서 헤어져버렸지.
헤어지고 나서 오히려 나는 평온한 시간을 보낼수 있었어.
연애라는 치열한 감정싸움에 내 시간을 소비하기에는
스스로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해버린거지. 연애에 그닥 흥미를 느끼지도 못했고 말이야.
그래서 몇년동안 솔로 생활을 영위해도 나는 큰 불만이 없었어. 오히려 만족스러웠지.
혼자 주말에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가 영화를 보고,
가끔 친구나 동료가 술을 마시자며 부르면 기분전환겸 나가기도 하고.
완벽하게 통제된듯 하면서도 나른하게 굴러가는 일상의 반복이었거든.
사실 그런 소소함이 인생의 참묘미 아니겠어?
그런데, 오세훈이 나타난거야.
그리고 그러한 평온함도 당연하지만 깨져버렸지.
사실 따지고 보면 오세훈 그 녀석이 막 내 일상에 끼어들어서
무언가를 뒤흔들었다거나, 그런건 아니야.
다만 그 녀석의 존재 자체가 내 일상을 뒤집어 엎어버린거지.
오세훈 그 자식은 어찌되었던, 내 애인이잖아.
나는 그 녀석의 애인인거고. 그리고, 애인이라는 사이는 서로에게
어느정도의 기대를 품고 스스로 어느정도의 책임감을 품게 되잖아?
나도 은연중에 그런것을 느꼈던거야. 괜히 주말인데
연락이라도 해봐야 하는건 아닐지, 밖에 나가보자며 운이라도 띄워봐야 하는건 아닐지.
하지만 말했잖아, 난 밖에 나가는걸 좋아하는편이 아니라고.
그래서 토요일 오후인데도 그냥 핸드폰만 바라보고 멍하니 누워있었어.
침대 머리 맡에 커다랗게 창문이 있어서 석양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눈이 너무 부시더라고. 그래서 몸을 일으켜서 블라인드를 내리려고 하는데
핸드폰이 진동하더라. 카톡이 도착한거야.
블라인드를 내리다 말고 핸드폰을 들어서 카톡을 확인했는데
오세훈이 보낸 카톡이더라고. 안 그래도 나도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카톡을 보내볼까 말까, 사소한 걱정 말이야.
「주말이라고 아직까지 자고 있는건 아니죠?
애인이 잠이 너무 많으면 곤란한데.」
카톡을 확인하는데 괜히 웃음이 나오더라.
카톡에서 사용하는 말투가 실제로 사용하는 말투랑
너무 똑같은거야. 핸드폰을 내려다보면서
뚱한 얼굴로 카톡을 보내는걸 생각하니까 조금 웃기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다시 침대에 누워버렸어. 그리고 답장을 보냈지.
'방금 일어났어.
근데 왜 곤란한데?'
답장을 보내고 나서 잠깐동안 천장을 바라보면서
멍때리고 있는데, 답장을 보낸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카톡이 오더라.
「매일 자고 있으면 서로 봐줄수가 없잖아요.
일방통행이 얼마나 서러운데. 그러니까 나도 좀 봐달라구요.
얼굴은 예쁘면서 하는짓은 완전 메마른 아저씨야.」
오세훈 그 녀석도 참 웃기는게, 안 그러게 생겨서
은근히 닭살돋는 멘트를 잘 날린단 말이야.
하여간 진짜 웃기는 녀석이야.
'예쁘긴 누가. 웩. 닭살.'
사실 나도 저렇게 문자를 보내려던건 아니었는데
조금 부끄러웠던건가,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더라고.
아무래도 싸우고 풀린지 얼마 안돼서
조금 조심스럽게 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놈의 손이랑 입이 늘 문제야.
「밥은?
환절기에 감기 자주 걸린다면서.
또 앓아누운건 아니죠?」
'사람을 약골로 보고.
그런거 아니야. 그리고 지금 시간이 몇신데.
점심은 당연히 먹었지. 넌?'
「점심 말고 저녁요.
아직 저녁 먹었냐고 물어보기엔 좀 이른가?」
그때 시간이 5시경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당연히 저녁 먹었냐고 물어보기엔 애매한 시간이었지.
그래도 너무 면박주면 서로 민망해지잖아.
남도 아니고, 그래도 나름 애인사이인데.
그래서 나도 둥글둥글하게 대답해줬어.
'저녁도 곧 먹어야지.
한것도 없는데 밥만 이렇게 먹어서
나잇살이라도 찔까봐 무섭다.'
「선배는 좀 쪄도 돼요.
사람이 너무 왜소해서. 툭 치면 쓰러질것 같던데.」
'너 은근히 나 까는거 즐기는것 같다?
애인이라고 해서 선배와 후배의 경계가 사라지는건 아니거든?'
「그럴리가요, 선배.
늘 깍듯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둘만 있으니까 어리광 좀 부려보는거죠.」
하여간 이 자식은 말로 이겨낼수가 없다니까?
혀에 기름을 발랐는지, 유들유들
무슨 말이던 어찌나 능수능란하게 잘 넘어가는지
화법 하나만큼은 정말 본받고 싶을 정도라니까.
'넌 물에 빠져 죽어도 입술만 둥둥 떠있을거야.'
「빠지면 구해줄거죠?
참, 어리광 부리는 김에 더 부려봐도 돼요?」
'안된다고 하면 말 들을거야?'
「ㅋㅋㅋㅋ
저녁 같이 먹을래요?
주말인데 애인사이에 서로 카톡만 한다는게 말이나 돼요?」
저 말이 나오는 순간 나는 드디어 올게 왔구나, 라는 생각을 했지.
이 녀석도 다른 사람들처럼 애인사이에는
집 밖에서 만나서 데이트를 하는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
나는 집에 붙어있는게 정말 좋거든.
으으, 밖에 나가는건 정말 싫단 말이야.
'저녁?
글쎄...'
「곤란해요?」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그럼?
설마 보기 싫은건 아니죠?」
'아니야;;; 그냥 내가 몰골도 조금 추레하고
컨디션도 그냥 그런것 같고...'
「...
맞다. 선배 방콕 매니아랬죠.
회사에 소문 다 나있던데. 주말마다 혼자 집에 붙어있는다고.
꿀단지 숨겨놨어요?」
'꿀단지는 무슨. 내가 곰돌이 푸야?'
「곰돌이보다는 토끼에 가깝죠.
하는짓은 영락없는 곰이지만...
안되겠네. 나 몰래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는건지
확인해야겠다.」
나 참, 숨겨둔 애인은 무슨.
애초에 나처럼 집에 붙어있길 좋아하는 사람은
애인같은게 생기더라도 금방 나가떨어지는데.
남자애인같은 경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주말마다 데이트 하는걸 좋아하던 과거 애인들은 늘 그랬거든.
외향적인 사람이 더 좋다나 뭐라나.
이런식으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나도 처음이라서
내심 당황스러웠어. 참 오세훈 이 녀석은 여러모로
처음이라는 단어와 연관이 많이 되는것 같아. 내 인생에서 말이야.
'숨겨둔 애인은 무슨;
확인은 무슨 확인을 해.'
「집에 찾아가도 돼요?」
집에 찾아온다는 말에 사실 움찔 했던것 같아.
글쎄, 그냥 동료나 선후배 사이였다면
그래, 뭐 못올것도 없지, 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초대 할수도 있었을것 같은데
그런 가벼운 사이가 아니잖아. 앞으로 어떻게 진전할지 모르는
애인사이니까, 나도 조금 방어적으로 나가게 되더라고.
'집에? 지금?
나 씻지도 않았는데.'
사실 거짓말이었어.
늦장을 부리는 타입이기는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무조건적으로 샤워부터 하고 보거든.
오랜 습관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뭔가 조금 방어태세를 취해보려고
안 씻었다는 핑계를 대면서 둘러댔는데, 그 녀석은 끄떡 없더라고.
「저도 어차피 준비하고 가야하니까
시간적으로 여유 있잖아요.」
원펀치.
「보고싶단 말이예요.」
투펀치.
「진심인데. 진짜 안돼요?」
KO.
저렇게 나오면 내쪽에서도 어쩔수가 없잖아.
이름뿐이긴 하지만, 애인사이인데.
결국 나도 답장을 보내버렸지.
'나 할줄 아는거 김치찌개 밖에 없어.'
「준비하고 출발할게요.
(방긋)」
답지않게 이모티콘까지 붙여가면서
답장 보낸거 보니까 기분이 좋아보이더라.
집에 별로 볼것도 없어서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때문에
나는 조금 심란했는데 말이야. 그래도 나는 오세훈 그 녀석의 집을 봤는데
그 녀석은 내 집을 한번도 못 와본다면 조금 불공평하잖아?
연애에 있어 공평함과 불공평을 따진다는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렇잖아. 그래서 나도 자꾸 마음이 흔들려서 결국 오라고 해버렸어.
어찌됐든 언젠가는 집에 초대도 한번 해야하잖아.
서로의 가장 사적인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교감을 할수 있는거니까.
'올때 참치 한캔만 사와.'
저 카톡을 마지막으로 나도 욕실로 뛰어들어가버렸어.
아침에 샤워를 했어도 여지껏 침대에 누워서 뒹굴고 있었으니까
머리도 눌리고 모습이 추레해졌을거 아니야.
그래서 정신없이 옷가지를 다 벗어버리고 샤워를 시작해버렸어.
카톡 하나가 더 도착한줄도 모르고.
「아, 나 참치 싫은데...
스팸 사가면 안돼요?」
샤워를 하고 나오니까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있더라고.
원래 내가 행동이 조금 느린편이라서
샤워같은것도 하는데 조금 오래걸려.
오세훈 그 녀석이 도착하면 저녁도 먹어야하니까
쌀도 씻어서 앉혀놓고 냉장고에서 뒤적거리다보니까
현관벨이 울리더라고. 그래서 인터폰을 확인해봤더니 작은 스크린 속에서
오세훈 그 녀석이 멀뚱멀뚱 서있더라.
그래서 싱크대에서 손을 씻고 가서 문을 열어줬지.
문을 여니까 손에 뭘 바리바리 들고 있더라고.
무슨 대단한 사람 집에 찾아오는것도 아닌데
손에 뭘 한아름 들고 있는걸 보니까
참 무안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말을 막 해버렸어.
"야, 무슨 귀한 사람 집에 찾아온것도 아니고.
뭘 이렇게 그득 들고왔어?"
"중요한 사람 맞잖아요. 애인 집 첫 방문인데."
너무 당연하다는걸 말하는것처럼
오히려 나를 보면서 인상을 찌푸리는데
순간 내가 민망해지더라고. 맞다, 나 쟤랑 만나는 사이지.
그래서 그냥 봉투 하나를 받아들고 집 안으로 들어섰더니
뒤에서 쫄래쫄래 따라들어오더라.
주방에 봉투들을 놓고 천천히 안에 든것들을
정리하려고 꺼내보니까 이것저것 먹을걸 많이도 사왔더라고.
거의 간식 종류기는 했지만, 아몬드나 땅콩, 밤같은
안주거리부터 시작해서 생과일 주스, 스티커가 들어있는 양산용 빵,
과자들, 그리고 참치캔이랑 스팸같은 통조림들까지.
그런데 나는 스팸을 먹지 않거든. 너무 짠것 같기도 하고
괜히 먹으면 몸에 안 좋을까봐. 진짜 나도 가끔보면 참 별난것 같다니까.
몸에 안좋을것 같다는 이유로 안먹는다니. 안좋은것도 아니고, 그럴것 '같다는' 이유로 말이야.
"어, 나 스팸 안 먹는데."
"왜요? 맛있는데."
"짜잖아. 그리고 몸에도 안 좋아."
"참치캔은 몸에 좋고요? 다 비슷한거지."
"참치는 그래도 생선이잖아."
"에이, 엉터리네. 난 생선 싫은데..."
생선 싫다는 말을 하면서 딴청을 부리는데
갑자기 덜컥 뭔가가 내려앉는 기분이더라.
오늘 저녁 메뉴를 참치 김치찌개로 정해놨는데
생선이 싫으면, 뭘 해먹어야 하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내가 할줄아는 유일한 음식이라곤 참치 김치찌개가 다거든.
무슨 혼자사는 남자가 음식도 못하냐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불이 무서워.
알아, 진짜 별나지? 그런데 정말로 불이 무서워.
그래서 사실 요리를 되게 못해. 김치찌개도 겨우 끓이는 수준이고.
기름에 무언가를 튀기거나 굽는건 생각도 못할정도야.
아무튼 나는 혼자 멘붕와서 멍때리고 있는데
그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계속 안에 들어있는것들만
뒤적이고 있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지.
"너 생선 싫어해?"
"아까 문자 못봤어요? 그래서 스팸 사가도 되냐고 한건데."
저 말 듣고 핸드폰을 열어서 확인해보니까
뒤늦게 온 문자가 있더라고.
아마 내가 샤워를 하는 도중에 온 문자였던것 같아.
그걸 보고 아차, 싶었던거지.
바보처럼 문자 확인도 안하고 샤워부터 하고 봤구나.
그리고나서 다시 멘붕에 빠진거지.
참치 김치찌개를 안하면, 오늘 저녁은 뭘 먹지?
할 줄 아는게 없는데. 무능하게 보이는건 아닐까.
아, 진짜 어떡하지. 그래, 차라리 음식을 시켜먹자.
그래서 제안을 하려고 입을 열었어.
"귀찮은데, 저녁 시켜먹을까?"
"먹을게 이렇게 많은데 뭘 또 시켜먹어요?
그냥 대충 먹으면 되지."
"사실 내가 참치 김치찌개를 하려고 했는데...
너가 생선을... 안 좋아하니까..."
"별수 없죠, 뭐. 먹는다고 죽는건 아니니까."
저 말 하는데 갑자기 자신감이 확 떨어지는거야.
싫은걸 먹으라고 하면 그게 얼마나 잘 만들어졌던 상관없이
다 맛없게 느껴지잖아. 솔직히 냉정하게말하자면
내가 김치찌개를 잘 끓이는편도 아니고, 그나마 먹을만 하다고 생각되는 수준인데
그럼 이 녀석에게 그런걸 먹이고싶지는 않았거든.
그래서 계속 변명을 둘러댔지.
"그게, 내가 음식을 잘 못해서..."
"내가 쉐프 음식 얻어먹으러 여기 온것도 아니고.
걱정 말아요. 잘 먹으니까."
"아니, 내가 진짜로 음식을 되게 못해."
"거 참. 괜찮다니까 계속 그러네."
계속 변명을 하는데 안통하는거야.
이 자식은 왜 다른때에는 눈치도 빠르면서
갑자기 곰으로 둔갑해서는 사람 말길을 못 알아먹는건지.
결국 나도 짜증이 나서 버럭 해버렸지.
"내가 안 괜찮아!
그래도 애인인데 안 좋은거 먹이고 싶겠어?
좋아하는거면 말도 안하겠는데 너 생선 싫어한다며."
그냥 되는대로 말을 뱉어버렸는데
오세훈 그 녀석이 놀랐는지 눈이 커져서 날 쳐다보더라고.
나는 또 내가 말실수를 했구나, 싶어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는데
오세훈이 갑자기 웃더라고. 나는 그 녀석이 왜 웃는지 모르니까
그냥 멀뚱멀뚱 서있었고.
"선배가 스스로 우리 애인사이라고 정의해준거
처음인거 알아요?"
"뭐?"
"이게 이런 기분이구나.
되게 기분 이상하다."
애인사이라는 한마디 때문에
저렇게 좋아하는걸 보니까, 내가 그동안 표현하는데에
있어서 너무 박했나, 싶어서 괜히 미안해지더라.
그래서 비닐봉지만 만지작 거리면서 서 있었더니 그러더라고.
"그럼 저녁은 됐고,
티비나 보죠. 어차피 간식거리도 많은데.
어때요?"
"......"
"그것도 안돼요?"
"아니, 그게 낫겠다."
사실 나도 사람인지라 아직 마음이 그렇게 깊지는 않다고 해도
그래도 애인 사이인 사람한테 처음으로 내 집에서 저녁을 먹이는 일인데
그런 허접한걸 먹이고 싶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별 방법이 없는게
내가 음식을 잘 해서 뭔가를 뚝딱 만들어낼수 있는 수준도 아니고
그렇다고 참치를 넣어서 김치찌개를 끓일수도 없고, 난감하잖아.
그래서 결국에는 그 녀석의 제안에 수긍을 해버렸어.
동시에 다짐했지. 언제 날 잡아서 요리학원이나 다녀봐야겠다고.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가 좋다고 하니까
그 녀석도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과자 몇개를 안고
자기집에 온것처럼 소파로 가서 앉아버리더라고.
멀뚱멀뚱 서있던 나보고 빨리 오라면서 손짓까지 하면서 말이야.
누가보면 내가 영락없이 객식구인줄 알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데
웃기더라. 동시에 그래도 어느정도 사이가 가까워져서 이렇게
편하게 대할수 있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안심이 되기도 하고.
"야한거 봐도 돼요?"
물론 그런 생각도 오세훈 저 자식이 씩 웃더니
리모콘을 들고 저런 말을 내뱉었을때 싹 사라져버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