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운아."
전화한 지 몇 분이나 됬다고 헐레벌떡 뛰어오는 이재환 모습이 구경하기 딱 좋았다.
콧방귀를 뀌며 옆에 두고 다니는 조그만 그 여자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
"별빛이, 아. 이따 저녁에 만나기로 했어."
이재환은 초조한 듯 서둘러 말을 돌리는 눈치였다.
입술을 깨무는 이재환의 모습에서 꽤나 급해보이는 모습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재환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러대며 내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놓여 있는 핸드폰을 들어 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홍빈 인거 확실하지. 이건 공항사진인데 아는 애가 보내주더라."
이재환은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재환이 천천히 입을 떼며 언제 찍은 사진이냐고 물어왔다.
"어제야."
*
얼굴이 하얗게 변한 차학연을 보는 것은 좀 놀라웠다.
순간 차학연의 표정이 확 바뀌더니 화난 얼굴을 짓는 모습이었다.
"왜 그래요."
차학연은 너를 힐끔 보더니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아냐, 아니.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진 않는데,
반말 쓰다가 존댓말 쓰다가 이리저리 조금 이상해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냥 저희끼린 말 놔요. 예전에도 저한테 반말 쓰신걸로 아는데.
갑자기 오늘 존댓말하면 저도 당황스럽잖아요."
"........."
"... 차학연 씨?"
차학연은 말 없이 바깥이 보이는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급하게 짐을 챙겼다.
"그래요. 스탈라잇. 나중에 연락할 테니까 그 때까지 핸드폰 고쳐놓길 바랄게."
너가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다 급히 떠나려는 차학연을 붙잡았다.
"갑자기 어디 가요! 아니, 어디 가는 건데..!"
차학연은 가방을 옆으로 매고 힘차게 걸어갔다.
너가 급하게 쓰레기를 들고 차학연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저, 저기 차학연 님. 정말 미안하지만 제가 지금 어디 갈데가 없어서 이렇게 가버리면."
"별빛 님. 나 따라오겠단 소리면 사양할게요."
너는 그렇게 처음 본 사람마냥 대하며 쌩하니 가버리는 차학연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괜히 창을 기웃거리면서 뛰어가는 차학연의 뒷모습을 유심히 지켜볼 뿐이었다.
눈을 찌푸리며 사라져가는 차학연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아까의 기억을 조금씩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차학연한테 말 건 그 남자, 손이 불편해 보였는데.
손이 불편.
손을 망가뜨려,
어딘가에서 들은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어디서 들은 얘기인지 생각하기 위해 집중했다.
"아."
뭔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초반에 들었던,
상혁이가 듣고 온 이재환 소문.
*
"잠깐만, 잠깐만 멈춰 봐."
학연이 헐떡이는 숨을 격하게 쉬며 멈춰섰다.
앞을 걸어가던 남자는 몇 초 뒤를 힐끗 볼 뿐 관심도 없는 눈치였다.
"이홍빈."
이름 석자에 남자가 그제야 반응하는 듯 어깨를 움직였다.
남자 옆에 있던 짐을 들던 남자도 고개를 돌려 학연을 바라보았다.
학연은 침을 삼키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너가 어떻게 이 동네에 있는지 설명 좀 해 줄래."
"... 학연아. 너는 정말 제자리 그대로구나."
이홍빈이란 남자는 말을 끊으며 싸늘하게 학연을 쳐다보았다.
눈빛 뿐만 아니라 그 말 한마디가 날카롭게 학연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홍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도 안 쓰며 말을 툭툭 내뱉었다.
학연의 눈이 씰룩거렸다.
"차학연. 나한테 큰 소리치는 모습은 여전한데, 나는 예전 그 한가로운 대학생이 아니야."
"그래. 또 이번엔 뭘 믿고 그렇게 나오는 건지 보자. 또 이재환 건드리려고 한국 온 주제에."
금방이라도 때릴 것 같이 으르렁 대는 학연을 홍빈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막았다.
계속 옆에 서 있었던 남자는 조심스럽게 학연을 접근치 못하게 막는 모습이었다.
학연은 그 모습에 어이가 없는 듯이 혀를 찼다.
"너네는 바뀐 것 같이 나한테 제자리네 뭐네 하더니. 너네도 똑같네.
무슨 말만 하면 김원식이 막고 뒤에서 너가 그러고 있는 건 변한게 없어."
김원식이란 남자가 한숨을 쉬며 땅에 놓았던 짐을 다시 들었다.
홍빈도 지금 순간의 기억을 잊은 듯 행동하며 휙 뒤를 돌아 다시 가던 길로 걸어갔다.
학연은 그런 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됬다. 이재환만 또,
.......하, 어떡해야 하는거야."
학연이 연신 마른 세수를 반복했다.
*
집으로 돌아간 너가 신발장을 열어보았다.
아까 재환이에게 받은 신발이 너를 환하게 반기고 있었다.
아까 차학연 일은 싹 잊을 겸 너가 조심스럽게 신발을 꺼내 땅에 올려놓았다.
신으면 재환이가 좋아하겠지란 마음에 발 한짝을 집어넣었다.
"다행히다. 딱 맞네."
금세 기분이 좋아진 너가 신발을 신은 채 거실을 돌아다녔다.
집 안을 그렇게 돌아다니다 방 창문으로 재환이네 집 창문이 열려있는 것을 확인했다.
"어, 아까까진 닫혀 있었는데. 왔나보네."
너가 기다린 것 마냥 급하게 접어둔 종이비행기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입으로 펜 뚜껑을 열고 찍찍 쓸 말을 써보았다.
남길 말을 쓴 후 너가 살금살금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쇠창살이 달려있긴 했지만 재환이네 창문엔 아무것도 달려있지 않았다.
너는 그 사실을 이용해서 쇠창살 사이로 너의 손을 뻗었다.
손목을 흔들며 종이비행기를 던지자 이제는 자연스럽게 재환이네 집으로 향하는 비행기였다.
너가 이 기세를 몰아 두 개, 세 개를 연속으로 보냈다.
뿌듯한 마음으로 창문을 바라보는데 창살 사이로 낯익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 이렇게 비행기를 많이 보냈어, 별빛아?"
놀란 표정의 이재환이었다.
그것도 그거지만 너 눈엔 오랜만에 흰셔츠를 빼 입은 이재환이 눈에 들어왔다.
재환이는 수북한 비행기 중 하나를 꺼내들어 펴 보았다.
[왜 집 왔으면서 얘기를 안해용ㅜㅜ]
내용을 읽은 재환이 웃음을 참으려 입을 꾹 다물었다.
그 표정을 느낀 너가 무안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심심해서 날린 거야. 별 말 안 써있어."
"별 말이 안 써있긴 무슨. 너랑 저녁 먹으려면 이쁘게 하고 가야되니까 나도 준비했지?"
창문 사이로 꽃받침을 지으며 웃는 이재환이었다.
참으려 해도 웃음이 새어나왔다.
역시, 창문으로 보는 이재환이 그렇게 설레더라니깐.
*
"흠, 흠."
같이 식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너가 신발을 눈치채달라고 큼큼 대며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이재환은 어디 아프냐며 너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너가 웃으며 됬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너의 모습을 보던 재환이 픽 웃으며 너의 손을 꽉 잡았다.
"신발 잘 어울리네?"
"너도 신발 잘 어울려."
너가 발뒤꿈치를 들어 재환이의 귀에다 소근소근 말했다.
이재환은 좋아 어쩔줄 모르다 걸으며 한 쪽 발을 앞으로 들었다.
"커플 신발 낯뜨거울 줄 알았어."
"나도 이런 건 안 하고 살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거?"
이재환이 커플신발을 겨우 이런 거에 비유했다고 손을 놓고 빠르게 걸어갔다.
너가 빠르게 뛰어가 재환이의 손을 낚아챘다.
"아니, 너무 좋아서 친근하게 말한거야!"
"그래.. 너가 좋다 그러는데 믿어야지."
너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재환도 기분 좋을 때나 나오는 크흥, 소리를 내며 더 손을 세게 잡았다.
그래, 아무래도 창문으로 보는 것 보단 바로 옆에서 보는 이재환이 더 설레는 것 같기도 해.
*
"아, 벌써 다음 달이 개강이야?"
조신하게 스테이크를 썰던 너가 재환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벌써 몇 일 안 남아서 무서워."
"잘 할 수 있을거야. 그러면 개강하고 나서는 내가 데리러 갈까?"
너가 웃으며 스테이크를 집다 말고 빤히 이재환을 쳐다보았다.
이재환은 뭐가 묻었나 싶어 입술을 매만지며 너를 바라보았다.
"뭐 묻었어?"
"...근데 재환아, 넌 계속 휴학할 생각이야..? 그, 그렇게 많이 아픈거야..?"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너의 질문에 이재환이 시선을 내렸다.
재환이는 한 번 숨을 들이쉬고 내쉬더니 힘차게 스테이크를 썰었다.
".... 모르겠어. 고민 중이야. 졸업은 하고 싶은데.."
말 끝을 흐리는 이재환이었다.
너가 또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럼 나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
이재환이 너를 빤히 보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너에 관한 이상한 소문을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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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자주 찾아오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조금 양을 늘리면서 오도록 하겠습니다ㅠㅠ
늦게 왔는데도 반겨주셔서 감사드려요..ㅠㅠ 그리고 드디어ㅠㅠ 24편 만에 육빅스가(정확히는 육빅스 이름이..ㅋㅋㅋ) 다 나오는 광경이ㅠㅠ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고 우리 다음편에서 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