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골라놓은 옷을 입고 출근을 하면서 없을 줄 알면서도 괜히 집 앞 편의점을 들려보았다.
'역시 그 편돌이는 저녁반인가' 생각하며 딸랑- 거리는 편의점 종소리를 뒤로한채 출근길에 올랐다.
출근을 해서도 하루종일 그 편의점 생각 뿐이었다. '오늘은 가서 뭐라고 말을 붙일까?, 오늘은 뭘 사야하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간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6시가 되어버렸다.
괜히 별것도 아닌 일로 하루종일 머리를 썼나 싶으면서도 구준회라는 그 편돌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 식은땀이 삐질 흘러내렸다.
퇴근 버스를 타서도 계속 편의점 생각 뿐, 오늘 화장은 괜찮은지 머리스타일은 괜찮은지 신경쓰이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또 오늘 퇴근길은 왜 또 이렇게 뻥 뚫려있는 건지 빠르기도 하다. 벌써 내릴 정류장이 다 왔다.
후하후하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창에 비춰진 내 모습을 보고 또 보고 다듬었다.
이제 이 버스에서 내려 몇걸음만 걸으면 그 편의점.
삐- 하는 소리와 함께 버스 뒷 문이 열리고 저 멀리 밝게 불이 켜진 편의점이 보인다. '에라 모르겠다' 는 생각으로 뚜벅뚜벅 힘차게 걸어갔다.
-편의점
저녁에도 어김없이 딸랑- 거리는 소리가 제일 먼저 나를 반긴다.
그 뒤에 이어진 오늘 하루종일 듣고 싶었던 목소리의 '어서오세요' 라는 짧고 무뚝뚝한 인사.
그 인사에 괜히 굳어있던 몸도 풀리며 나도 슬며시 웃으며 카운터로 제일 먼저 걸어가 그 아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어? 준회 안녕?"
"네 안녕하세요 ㅇㅇ누나"
오늘은 그래도 대답이 더 길어진데다 이름까지 불러줬다.
괜히 더 기분이 들떠서 또 한참을 그렇게 카운터에 서서 떠들어댔다.
그랬더니 참다못한 그 아이가 내게 한마디를 더 건넸다.
"뭐 안 사실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 그냥 이 아이는 내가 손님인거다. 괜히 친한척해서 나만 또 민망해졌다.
머쓱해진 나는 얼른 즉석식품 코너로 달려가 이것저것 대충 눈에 보이는 것들만 잔뜩 집어 계산하고는 최대한 빠르게 편의점에서 나와버렸다.
오늘도 여전히 이런 모습만 보여버린 내가 너무 미웠다. 에잇 하필 고른것들 전부 내가 싫어하는 음식 투성이다.
그래도 그 아이를 만났다는 그 사실 하나가 맛없는 음식 투성이 속에서도 조금은 기뻤다.
그 아이는 나랑 친해지는게 어렵고 어색할 수 있다고 혼자 결론 내려 버리고는 또 그새 신이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들어왔다.
(준회)
얼마 전부터 전에 다니던 음식점에서 잘리고 새로운 알바를 구하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집 근처 편의점에 알바 자리가 난 걸 보고는 바로 일을 하게 되었다.
집 근처 인 것도 마음에 들고 게다가 이 동네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손님도 많이 없다. 알바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인 것 같았다.
시작한지 첫째날 저녁, 내 타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어떤 시끄러운 여자가 재잘 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마 전에 있던 알바생과 꽤나 친했던 모양이다.
내 얼굴을 보더니 당황한 눈빛으로 알바생 바뀌었냐고 물어보는데 '이 여잔 뭐지' 싶으면서도 당황한 모습을 감추고 계속 말을 걸어오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 시끄러운 여자가 가고 난 후, 손님은 더이상 오지 않았고 다음 타임 알바생이 오는 것을 확인하고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편의점 앞 건물에서 나오는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치고는 폴짝폴짝 뛰어오는 그 여자를 모른척 할 수가 없었다.
나이를 물어보던 그 여자는 24살이라고 말했다. 내 나이를 듣고 놀랐던 그 여자와 같이 티는 안내도 24살이라는 그 여자의 말에 나도 좀 놀랐다.
많이봐도 21살정도 봤는데 24살이라니.
그렇게 재잘거리며 걸어가다 집 앞에 거의 다 온 그 쯤 그 여자는 내 이름을 물어왔다.
그게 왜 궁금한건지 물어보는 "왜요?"라는 내 대답에 횡성수설 답을 찾는 그 여자의 모습에 홀린 듯 내 이름을 말했다.
"구준회요"
"뭐라고? 구준, 뭐..?"
"구준회요"
"아... 이름 예쁘네"
라는 짧은 대화 속에 그 여자는 뭔가 실망한 듯한 눈빛이었다. 그래서 이 눈치빠른 내가 물어봤지.
"누나는 이름 안 알려줘요?"
그 한 마디에 활짝 웃으며 "내.. 이름? 아, ㅇㅇㅇ! ㅇㅇㅇ이야!" 라고 말해오는 그 여자가 귀여워 웃어버릴뻔 했지만 간신히 참아내고 집으로 들어왔다.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 창문 너머로 그 여자는 내 등 너머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내일도 저 여자가 편의점에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