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사랑할 수밖에
너와 헤어진 다음 날 그를 사랑했어
김이듬, 말할 수 없는 애인 中
못 살겠습니다.
(실은 이만하면 잘 살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원한다면, 죽여주십시오.
최승자, 근황 中
네가 그리워
우리가 즐겨 가던 오락실에 갔다
주인은 이제 시시한 테트리스 게임 같은 건
사람들이 하지 않는다고 했지
대신 나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몽땅 털어
총질을 해대고 왔다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오은,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에 관한 단상 中
Etude Op 25 No 11을 두드릴 때의
빠르고 음탕한 손가락들처럼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오갔다
창밖으로 첫눈이 날리던 그 밤,
그것은 좀도둑질에 불과했다
황병승, 스무 살의 침대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여기, 거기, 그리고 모든 곳에
멀리, 언제나 더 멀리에
말해 봐
이 모든 것들 위로
넌 아직도 내 생각을 하고 있는가
류시화,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中
꿈 같은 세상이다. 엿 같은 꿈. 무슨 잠자리를 가릴 필요가 있겠는가. 놀이 같은 삶에 무슨 옥석이 있겠는가. 잠들 수 있음. 옆으로 삐딱하게 그러나 개발도상국 국기보다 훌륭하게.
허연, 잠들 수 있음 中
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原石)과 같다.
한강, 몇 개의 이야기 12
피곤하다 털어놓고 싶었어
성냥으로 초에 불붙이던 당신이
힘들어, 먼저 말해버렸지
김소연, 학살의 일부 6ㅡ연애하다 中
부르튼 입술을 피가 나지 않을 만큼만 예쁘게 뜯겠다. 내 연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종말이 도래했다. 이건 모두가 기억하지만 없는 기억. 다 이루어져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이체, 장면의 이면 中
미움이 우리의 마음을 잿더미로 만들 때까지
자애로운 목소리가 우리의 마음을 질식시킬 때까지
황병승, 세상의 멸망과 노르웨이의 정서 中
하지만 이젠 정말 모르겠어.
슬픔인지 스프인지.
실체가 없어졌어.
최승자, 下岸發 中
인간들이란, 어쩜 그리도 인간적인지.
오은, 육식주의자 中
그런데 당신,
검은 옷의 사내여
여기 왜 왔나요?
누가 시켜서 날 사랑하나요
김이듬, 종업원 中
시집을 읽다, 여시들과 함께 읽고 싶어 적어보았어요.
따로 필사해둔 것이 아니라, 몇 권의 시집을 읽으며 적어서
오늘의 글은 시인들이 한정적이네요.
날이 추워져요, 따뜻함이 항상 여시들 곁에 있기를 바라요.
그 따뜻함이 본디 실재하지 않음에서 오더라도, 여시들의 냉기를 위무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