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지 않은데도 많은 분들이 마지막 경기를 축하해주셔서 감사하고 기쁘다. 대표팀 생활을 하면 오르막내리막, 실망스러운 상황도 있었지만 이제 다 끝났다. 앞으로는 여기 있는 기자 분들을 비롯한 모든 이들과 웃으며 보고 싶다.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선수로서 더 훌륭한 일을 해 낸 선배들이 있었다. 가깝게는 친구인 지성이만 해도 그랬다. 운동장에서 많은 분들의 함성, 영상에서의 메시지를 보며 한 것 이상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부끄럽고 미안했다. 너무나 행복한 축구 선수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아버지께서 운동장 나오셨을 때는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항상 아버지를 보고, 그 명성에 도전했다. 아버지보다 잘하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어느 순간부터 현실의 벽을 느꼈다. 내가 축구를 즐겁게 하고, 축구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보는데 큰 짐을 내려놓아 기분이 홀가분했고, 그런 아버지의 큰 아성에 도전했지만 실패한 데 대한 자책과 아쉬움도 남았다. 한편으론 밉기도 했다. 축구를 너무 잘하는 아버지를 둬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근처에 못 가니까 여러 기분이 교차했다.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 사람처럼 되겠다고 한 롤모델이 아버지니까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이다. 아버지는 모든 걸 갖춘 사람이다. 최고의 선수였고,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감독 역할도 했고, 아버지니까 내가 힘들 때 사랑으로 챙겨줬다. 집에 돌아가면 그런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행운이다.
지도자 중에서는 히딩크 감독님이 가장 기억에 남을 거 같다. 청소년 대표조차 안 한 선수를 월드컵대표팀에 합류시키는 건 웬만한 배짱과 큰 그림이 없이는 안 된다. 스피드와 파워가 좋다는 장점 하나를 크게 사서 월드컵까지 데려가 주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고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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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흥민이는 느낌상 페널티킥을 넣을 거 같지가 않더라. 처음엔 나보고 차라고 했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경기를 이기는 게 중요했다. 진지함을 끝까지 이어가야 해서 차는 걸 거절했다. 성용이가 그냥 차지 하는 느낌이 있었다. 후배들이 마지막까지 이기려는 게 눈에 보였다. 새로 들어온 재성이가 골을 넣고 승리했다는 건 앞으로 대표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다. 어린 K리그 선수가 그런 활약을 해준 것은 많은 K리그의 다른 선수들에게도 희망을 줬다. 앞으로 경쟁을 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 힘든데 마지막까지 이기려고 노력해 준 후배들에게 고맙다.
지금 당장은 FC서울이 성적이 나게끔 죽어라 뛰는 게 중요하다. 그 다음 내 인생을 차근차근 생각하겠다. 독일로 가서 지도자 자격증을 따는 게 목표다. 그 과정에서 축구 안팎으로 배우는 게 많을 거다. 그러면 내 인생의 방향이 정해질 것이다. 지성이가 문자가 왔다. 밥 먹자고 해서 내일 점심을 먹기로 했다.
2004년 독일전은 기억이 많이 남는다. 한국 축구가 독일을 꺾는 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대단한 경기였다. 그 당시 독일에서 뛰었지만 나는 독일에서 스타 플레이어가 아닌 평범한 선수였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그 큰팀을 이긴 건 자부심을 느끼고 많이 자랑스러웠다. 우리 대표팀이 축구강대국과 경기를 하며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소집이 돼 파주에서 훈련을 하고 평가전을 하고, 예선을 치르는 모든 과정은 하늘에서 집어준 선수들만의 특권이다. 선수들이 그걸 인식하고 거기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책임감을 가졌으면 한다. 수 많은 선수들이 여길 오고 싶어하지만 못 오고, 또 금세 낙오한다. 한번 들어왔을 때 뭔가를 보여주고 오래 남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대표팀에 들어왔으면 한다. 그래야 경쟁이 되고 대표팀이 강해진다. 우리는 유럽이나 남미처럼 선수층이 두텁지 않다. 한정된 자원 안에서 선수를 발굴하고 계속 성장시켜야 한다. 개개인이 그것을 느끼고, 발전을 해야 한국 축구가 발전한다. 아쉽게도 유럽과 달리 한국은 대표팀에 의해 모든 축구가 돌아간다. 소속팀이 대표팀 위에 있는 게 아니라 대표팀이 소속팀 위에 있다. 오늘 같은 평가전도 비기면 그만, 지면 그만이 아니라 이 1경기로 팬을 잃고 얻는 기회다. 모든 열정을 다해서 경기를 해준다면 축구팬들이 늘어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게임이다. 즐겁게 임해주길 바란다.
얼마 전 기사를 읽었는데 공감하면 안 되는데 공감한 댓글이 있다. 피지컬은 아버지, 발은 어머니. 정말 그런가 반문했다. 기술은 화려하지 않은 선수임은 분명하다. 대신 다른 데 장점이 있다. 유럽에서는 선수의 장점을 크게 본다. 한가지를 잘하면 그걸 극대화시켜서 팀에 맞춰 기용한다. 반면에 우리는 선수가 완벽해야 한다는 주의가 강하다. 지금 대표팀 선수들도 그런 것에 위축을 받는다. 완벽한 선수는 없다. 훈련장에 가서 자철이, 성용이, 태희가 공 차는 걸 보면 놀란다. 하지만 대신 내가 쟤들보다 잘하는 게 있다. 그게 분명 팀에 도움이 될 것이니 열심히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흥민이는 결정력이 좋으니 전방에 서야 한다고 봤고, 근호는 결정력은 조금 떨어져도 많이 뛰니까 측면에 서고, 그게 팀인 것 같다. 부족한 걸 서로가 메워간다. 팬들도 단점을 보기보다 장점을 보고 즐겁게 축구를 봐줬으면 한다.
개인 능력 면에서는 우리 선수들이 유럽 선수들에 견줘도 굉장히 뛰어나다고 본다. 참 열심히 한다는 말이 함정 같다. 우리 선수들은 열심히 했어라는 얘길 하는데 유럽에 가보니 그건 기본이었다. 그 다음이 잘해야 한다였다. 중고등학교 때 시합이 끝나고 아버지와 통화를 할 때 열심히 했어요 라고 말하면 그러면 됐지 했다. 대학교 때 열심히 했다고 답할 때 아버지가 이젠 잘해야지라고 하셨다. 순간 멍해졌다. 세계 축구에서 열심히는 기본이다. 유럽은 뛰는 양, 공을 위해 투쟁하는 것, 모든 걸 쏟는 게 열심히다. 그건 기본바탕이고 그 다음에 간결하게, 섬세하게 하는 게 잘하는 거다. 기술 좋은 선수들이 우리도 많지만 이젠 열심히 한다는 기준을 기본적으로 깔고 자기가 가진 기술을 보인다면 세계의 벽을 넘을 거라 본다.
예전에 얘기한 대로 내 축구인생의 스코어는 3-5로 졌다. 그런데 이전과 다른 건 경기 종료 직전에 골대 두번 맞춰서 진 게임 같다. 지난 2년 간 FC서울, 그리고 대표팀과 타이틀을 얻을 기회가 많았다. 지나고 보면 얼마나 우승을 했느냐로 선수는 평가받는다. 우승을 위해 뛰기 때문이다. 매해 타이틀을 딸 수 있는 마지막 단계까지 간 건 뿌듯하지만 결론으론 빈 손이다. 그래서 골이 안 들어가고 끝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