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애가 나를 좋아해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계속 밀어내기만 했고. 일부러 차갑게 굴어보기도 했지만 예상과 달리 그 애는 날 언제까지고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다 계속되는 혼자만의 짝사랑에 지쳐갈 때쯤의 어느 날, 얼어붙은 날씨에 집 앞에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그 아이.
차갑다 못해 빨갛게 부르튼 손으로 내 손을 감싸쥐면서 말했다. "이렇게 추운데 왜 이제 와요. 많이 추웠죠?"
그 목소리에 왈칵 눈물이 쏟아진 건 왜였을까. 그 애의 코트 주머니 속 다 식어버린 캔커피가 왜 그토록 슬퍼보였을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애는 정말 날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구나 라는 걸. 그 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이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널 그동안 외면해 와서.
"죄송해요" 내 울먹이는 표정에 또 바보같이 사과하는 놈, 니가 뭘 잘못했다고 미안하냐고 되물으려는 찰나,
"커피가 식었어요." 바보처럼 또 고개를 떨구는 너.
"방금 전까진 따뜻했는데.."
이 바보같은 녀석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2. 경찰이 되겠다고 큰 소리 뻥뻥 칠 때마다 웃어 넘기기만 했었는데. 그 철부지가 진짜로 경찰이 될 줄이야.
나랑 동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경찰옷을 입더니 부쩍 성숙해진 게 눈에 보인다.
언제나 꼬맹이인 모습 그대로일 줄 알았던 너였는데. 이렇게 커버렸구나. 부모된 마음으로 새삼 씁쓸해 하고 있을 무렵
큼지막한 손이 내 머리 위로 와 닿는다. "근데 넌 왜 이렇게 아직도 쪼끄맣냐" 신기하다는 눈으로 그렇게 묻기에 한 마디 해줬다.
"너 키우느라 바빴는데 키 클 정신이 어딨냐" 그러자 갑자기 쑤욱 하고 내려온 그 친구의 얼굴. 순식간에 눈이 마주친다.
그러고선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짓고서는 하는 말,
"이제 난 다 컸으니까..."
'어라.. 근데 우리 둘 얼굴이 너무 가까이 붙은 거 같은데' 라고 생각이 들 때쯤. 다시 들려온 목소리.
"내가 너 키우면 되나?"
아서라, 키울 애가 그렇게 없어서 날 키우냐. 빨리 좋은 여자 만나서 애 낳고 키울 궁리나 하라고. 내가 아니라.
"만날 여자가 없어" 허, 그래 자랑이다 이 놈아.
"그래서 한동안 낳을 애도 없어"
그래 그건 그건데, 니 표정 지금 왜 그렇게 진지하ㄴ...
"그냥 나한텐 너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