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어느 하루 롯데 자이언츠로 복귀한 양상문 감독은 주장 완장을 찼던 이대호와 마주 앉았다. 이대호가 어렵게 입을 뗐다. “감독님 내년부턴 야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주장 자리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이대호의 간곡한 요청에 양 감독은 고갤 끄덕였다. 이후 선수단이 모인 한 자리에서 양 감독은 주장 후보들의 얼굴을 쭉 돌아봤다. “(민)병헌이는 팀에 온 지 1년밖에 안 됐고, (전)준우는 이제 FA(자유계약선수)고, 그렇다고 (채)태인이는(웃음). 아무래도 롯데하면 (손)아섭이의 눈빛이 먼저 떠오르더라. 그래서 아섭이한테 ‘너밖에 없다’고 부탁했다. 다행히 아섭이도 흔쾌히 주장을 하겠다고 했다. 어떤 순간에도 악착같이 뛰는 주장이 있으면 후배 선수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거다.” 양 감독의 말이다. 2009년부터 이어진 양상문 감독과 손아섭의 인연 물론 단순한 투지만으로 주장이 될 순 없다. 동료들이 인정하는 실력도 갖춰야 하는 자리가 바로 주장직이다. 지난해 손아섭은 141경기에 출전해 타율 0.329/ 182안타/ 26홈런/ 93타점/ 20도루/ 출루율 0.404/ 장타율 0.546로 맹활약했다. FA 계약 첫해부터 자신의 진가인 호타준족의 매력을 제대로 선보인 손아섭이었다. 한층 더 성숙한 실력을 자랑한 손아섭은 어느덧 팀 내에서 선임 위치에 올라섰다. 이제 팀 후배들이 훨씬 더 많아진 상황이기에 손아섭도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었다. “감독님의 주장 제안을 듣는 순간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장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부담이 분명히 있고 책임감을 느껴야 할 곳이다. 그만큼 영광스러운 자리기도 하다. 그래서 비시즌 동안 나태해지지 않도록 더 신경 쓰고 있다. 감독님이 믿어주신 만큼 더 좋은 리더가 되고 싶다.” 손아섭의 말이다. 손아섭과 양 감독의 인연은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롯데 2군 감독으로 부임한 양 감독은 당시 ‘미완의 대기’였던 손아섭을 조련했다. 2009년 손아섭은 1군 34경기 출전/ 타율 0.186로 슬럼프에 빠진 상태였다. 양 감독은 “10년 전 (손)아섭이는 야구가 잘 안 풀리는 선수였다. 그래도 눈빛에서 나오는 열정 하나만큼은 대단했다. 더 힘을 불어 넣어주려고 했다”며 고갤 끄덕였다. 손아섭도 양 감독과의 재회를 반겼다. 손아섭은 “참 힘들었던 시기에 양 감독님의 좋은 말씀으로 힘을 얻은 기억이 난다. 감독님이 제가 어떤 스타일인지 잘 아신다. 그만큼 저도 준비를 잘할 수 있고 소통도 원활할 듯싶다. 우선 마음은 편안하다. 감독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연속 경기 출전 기록 중단의 아쉬움, 올 시즌 전 경기 출전으로 풀겠다.” 올 시즌에도 손아섭을 포함한 ‘국가대표 외야진’을 향한 롯데 팬들의 기대감이 크다. 지난해 FA 이적한 민병헌이 합류한 롯데 외야진은 ‘예비 FA’ 전준우의 각성과 더불어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했다. “나(1988년생)와 (전)준우 형(1986년생), 그리고 (민)병헌이 형(1987년생)은 나이 차이가 크게 안 난다. 그래서 더 편하고 격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외야진의 ‘리더’를 맡은 준우 형은 올 시즌에도 지난해와 같은 최고의 활약을 펼칠 거다. 병헌이 형은 야구에 대한 욕심이 정말 많아서 서로에게 자극제가 된다. 더 열심히 하려는 욕심이 커서 ‘국가대표 외야진’이라는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거다.” 주장 손아섭이 올 시즌 추구하는 가치는 단 한 가지다. 바로 144경기 전 경기 출전이다. 지난해 진한 아쉬움이 하나 남은 까닭이다. 손아섭은 지난해 9월 19일 잠실 LG 트윈스전 도중 오른 새끼손가락 인대 손상으로 현역 최장기간 연속 출전 기록을 마감했다. 2015년 8월 15일 목동 서울 히어로즈전부터 이어진 449경기 연속 출전 대기록이었다. “연속 경기 출전 기록만큼은 정말 욕심이 났는데 그렇게 멈춰서 정말 아쉬웠다. 그래서 비시즌 동안 전 경기를 뛸 수 있는 체력 증진과 부상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아파서 못 나가면 팀에 도움이 안 된다. 특히 올 시즌엔 주장을 맡았지 않나. 주장이라면 팀이 이길 때나 질 때나 그 더그아웃 현장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눠야 한다. 그래서 나 자신을 향해 더 채찍질하고 있다.” 손아섭의 2019시즌은 지난해 가을부터 이미 시작됐다. 손아섭은 지난해 연말까지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보강 운동을 하다 새해가 되자마자 곧바로 필리핀으로 출국해 몸만들기에 돌입했다. 시즌 종료 뒤 온전한 휴식을 취한 건 보름 남짓에 불과했다. 전 경기 출전과 팀의 가을야구 진출만을 바라보는 손아섭의 각오다. “지난해 팀 성적이 롯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스러웠다. 올 시즌을 앞두고 새로운 감독님이 오셨고, 좋은 동료들과 함께 주장으로서 새 시즌을 잘 준비할 자신이 있다. 개인 전 경기 출전과 더불어 이번 가을엔 롯데 팬들과 사직구장에서 오랫동안 야구를 하고 싶다. 주장이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겠다. 투지와 열정만큼은 다른 팀에 뒤지지 않는 롯데를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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