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부터 자취를 시작해 기억과 함께 낡아간 나의 본가는 오래되고 좁은 책방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맨 뒷장에 빛바랜 우표가 붙은 촌스러운 디자인의 소설책과 양장본이 하나 없는 역사책들, 그리고 파스텔 색감의 섬세한 그림 동화책들이 책꽂이와 바닥에 가득 쌓여있었다. 유명하고 읽을 만한 책들을 대부분 읽어본 부모님은 그런 집 안에서 여전히 새로운 지식을 탐하고 익숙한 듯 낯선 감성을 느끼며 살아가신다. 그래서 몇몇 저명한 작가들의 전성기 시절 책들은 굳이 살 필요 없이 부모님께 연락을 하면 택배로 받아볼 수 있는데, 내 기억 속 마지막 모습과 달리 노랗게 변해 바스락거리는 책장을 마주하면 필름 카메라로 찍은 옛 사진을 본 듯한 여운이 밀려온다. 마음먹은 주말에 대청소를 하다 발견한 먼지 쌓인 추억에 시간이 멈추고 정신을 차려보면 노을이 져가는 그런 여운 말이다. 눈을 감으면 보일 만큼 선명한 추억은 아니지만 일렁이는 심연 위로 유심히 들여다본 그 잔상 같은 기억은 왠지 모르게 나를 슬프게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반가웠던 그 감상이 벌써 나를 슬프고 울적하게 하다니, 모르는 사이 내 영혼이 조금씩 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