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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3년 전 (2021/3/18) 게시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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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묵묵부답이던 신께서 내 무전을 들어주신 날이었다.

〈hr class="se-hr" style="margin: 0px auto; border: 0px; height: 1px; background-color: rgb(221, 221, 221);">

꿈속에서 나는 몇 년 만에 자주 가던 카페를 찾았다. 쿠폰을 찍는 것을 성실히 했다면 아메리카노쯤은 무료로 두어 잔 마셨을 만큼 단골인 카페였다. 한 장소, 그리고 한 메뉴에 진득한 애정을 갖는 나에겐 익숙한 곳이었으나 어느샌가 발걸음을 끊어버린 곳이 되었다.

'고가 커피' 카페의 이름이다. 이름처럼 지하철역 부근 고가에 위치해있다. 카페의 내부는 보이지 않게 전체가 흰 커튼으로 덮여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얗고 따뜻한 내부가 한눈에 보였다. 무성한 잎이 자란 커다란 화분이 아담한 카페를 채웠다. 구석으로 눈을 돌리면 몇 개의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곳은 숨어있는 장소처럼 아늑하게 느껴졌다. 그 카페를 찾을 때마다 그 자리는 언제나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아쉬운 대로 늘 다른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내가 기억한 대로 카페는 제 모습 그대로였으나 아무도 없었다. 늘 앉고 싶어 했던 자리에 앉았다. 생각보다 훨씬 아늑하고 따뜻했다. 이곳에서 말하는 비밀 이야기는 절대로 새어나가지 않을 것처럼.

나는 자리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렸다. 기다림이란 이 카페에선 낯선 것이었다. 난 언제나 이곳에서 누군가와 함께였으니까. 함께이지 않을 때부터 이곳으로의 발길을 끊었다. 함께가 아니라는 건 내 일상의 대부분을 손보는 일이었다.

생경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익숙했다. 쿠션이 깔려있는 의자, 늘씬한 커피잔… 간절히 바라던 그림이 내게 실망을 안겨줄 리 없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조금씩 두근거리더니 내 머리까지 울렸다. 그러다 공간까지 웅장해졌다. 누군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아, 신발 굽소리, 나와 같이 이 자리를 못내 아쉬워하던 …

급격히 심해진 긴장에 온몸이 빳빳하게 굳혔다. 익숙한 걸음이 이윽고 내 자리를 찾아왔다. 돌리지 못한 고개, 그 시야로 그녀가 들어왔다.

01. 행방

중단발에 짙은 갈색 머리의 은오. 은오가 내 앞에 앉았다. 둥근 탁자 하나를 가운데 두고 우리는 마주했다. 근 5년 만의 일이었다. 검정 목티와 짧은 검정 스커트, 그 위에는 무릎 아래까지 오는 연갈색 트렌치코트… 혹시라도 은오를 우연히 마주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했던 내 생각 그대로 은오가 나타났다. 속쌍꺼풀의 신비스러운 눈 … 켜켜이 쌓인 5년의 시간도 은오의 눈앞에서 모두 무너져내린 듯했다. 그런 은오에게서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건네야 할 말이 머릿속에 부딪히다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혹은 모두 엉켜버렸다. 은오야. 겨우 이름을 뱉었다. 고작 이름일 뿐인데 마음이 물렁해진 것 같았다. 은오는 옅게 웃었다.

- 이 자리, 드디어 앉아보네. 확실히 괜찮다. 조용하고.

둥근 탁자에 두 손을 올려놓고 은오가 말했다. 목소리도 정말 그대로구나. 내가 생각한 그대로라 오히려 이상할 정도야. 들떠있지 않으면 조금은 음울한 목소리였지. 5년 전 마지막 만남을 끝으로 은오 네 행방은 전부 끊겼어. 1년을 함께 한 사이인데 난 너에 대해 너무 몰랐던 걸까. 터져 나오려는 많은 말들을 애써 참았다. 은오는 내게 시선을 거둔 채 이리저리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너도 나처럼 그때 이후로 이 카페를 한 번도 온 적 없었구나. 내 말에 은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 지나간 적은 많아.

- 그동안 어디 있었어? 왜 연락이 안 됐어?

- 우리?

- 나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랑도 연락 안 했잖아. 뚝 끊었잖아 전부 다.

추궁하듯 쏟아지는 질문에도 은오는 엇나가지 않았다. 차분한 분위기는 점점 격앙되는 나를 눌러주었다. 5년간의 행방이 가슴을 조여오며 내 의식을 마구 주물렀다. 불끈 쥔 주먹조차 감당 못하고 온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전에도 그랬다. 화를 참지 못하고 은오에게 쏟아부을 때, 은오는 두 눈에 눈물을 잔뜩 매달고 내게 소리 질렀었는데. 온몸이 고장 난 것처럼 떨리더니 말 대신 눈물을 뱉으면서, 끝에는 미안하다고 했었지. 네 불완전한 정신을 믿지 못하겠다고, 가라앉는 배에 억지로 나를 태운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그땐 은오 네 말을 동조하며 관계의 죄책감을 덜어내려 했었어. 은오는 고개를 떨구고 말없이 두 손을 만지작거렸다. 웃음이 걷힌 얼굴엔 피로감이 묻었다. 은오는 울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 내 소식, 안 듣는 게 나았잖아. 끝난 사이에.

- 네가 걱정됐어. 맨날 울었잖아. 몸도 약해서 자주 아팠잖아. 내 옆에서도 넌 금방이라도 떠날 것처럼 아팠어. 우리가 헤어진 날, 그 다음날 너에게 온 전화를 받지 못해서 네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나버린 것 같았어. 네가 너무 힘들었을 텐데 난 전부 다 외면했어. 네가 잘못됐을까 봐, 그럼 나도 못 견딜 것 같아서 내 생각만 했나 봐 … 미안해 은오야. 널 …

꿈속까지 끌어들여서. 자신 없다고 한 널 부추겨서 날 사랑하게 만든 것도. 힘든 네 삶에 비집고 들어가, 네 우울 버튼이 되어버린 거 … 차마 말하지 못했다. 나도 은오처럼 말 대신 울어버릴 것 같았다. 뭉개진 발음으로 감히 은오를 부를 것 같았다. 애써 힘주어 참는 내 표정이 은오의 두 눈에 담겼다. 은오의 시선이 떨렸다. 버림받았단 감정이 은오의 얼굴에 금 가듯 서렸다.

- 오빠를 너무 많이 기다렸어 …

말 끝이 흐려진 은오가 입을 다물었다. 신비로운 두 눈이 조금 반짝거렸다. 은오가 말했다. 오빠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가야만 했어. 끝난 관계에서도 오빠를 기다렸어. 어쩔 수 없었어. 실낱 같은 희망이 날 자꾸 무너뜨렸어. 그 희망을 죽여야만 했어. 오빠는 아니라고 했지만 불완전한 나에게 제일 먼저 지쳐있던 사람이었거든 …

귀 뒤로 넘긴 은오의 머리칼이 오른뺨으로 흘러내렸다. 은오는 말을 끝낸 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칼이 입술 끝에 닿아 파르르 떨릴 뿐이었다. 따뜻한 전등 아래서도 은오는 창백했다. 은오의 시간처럼. 그리고 내 축적된 5년의 시간마저도.

온 공간이 다시 웅장해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은오도 아는 것 같았다. 더 많은 말,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 네 부재 … 죽음의 앞에서 모든 것이 초연하듯 지금 은오가 그렇다. 너 잘 살고 있는 거니. 이 관계에서 벗어나, 네 불안정에서 벗어난 거 맞는 거니. 그래서 잘 도망친 게 맞냐고.

- 은오야 …

-오빠 나 거짓말했어.

- …

- 나 이 카페 왔었어. 오빠가 전화받지 않았던 날, 여기서 커피가 다 식을 때까지 기다렸어.

그때 이 자리, 아무도 없어서 여기서 기다렸어. 오빠를 잃고 나서 제일 먼저 오빠를 찾았어.

전등이 어두워졌다. 그러다가 다시 밝아졌다. 나는 결국 참지 못했다. 눈에서 내 모든 물이 쏟아져 나왔다.

내 지나간 시간, 내 그리움, 내 은오 … 난 네 무전을 듣지 못했구나. 난 이렇게 기어코 너를 불렀는데.

-은오야 너 …

- …

- 죽었어?

전등의 불이 꺼졌다. 그 순간 보였던 은오의 입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 아니었다. 그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 장면에 잠깐 잠겨있다, 눈을 떴다. 서서히 서서히 꿈에서 깨어났다. 카페가 아닌, 의자가 아닌 내 침대의 새벽사이에 난 깨어났다. 푸른 빛이 힘없이 방안을 돌고 있었다. 눈 앞은 자욱했다. 온 몸이 떨렸다. 온 몸이 떨려서 그대로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아 ... 아. 거대한 것을 삼키지 못한듯 목이 막혀 신음했다. 가슴을 퍽퍽 주먹으로 내려쳤다. 난 이제 완전히 은오를 잃었다. 은오는 죽었을 것이다. 카페에서 나를 기다렸던 그 시간이 은오를 죽였을 것이다. 나는 정말 은오를 잃었다.



 
낭자1
글 너무 좋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제일 좋다고 느껴졌어 좋은 글 고마워
3년 전
글쓴낭자
읽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좋은 하루 보내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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