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인이 나그네에게 물었다. " 자네는 어디로 가는가? " 나그네는 멍하니 바닥을 보다 입을 열었다. "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누구를 만나야할지. 그 무엇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습니다. " " 그렇구만. 마침 여기 벤치도 있는데 앉아 내 얘기를 듣지 않겠나? " 노인과 나그네는 가운데 자리를 띄어놓고 나란히 앉았다. " 내 어렸을 적에 그대와 같은 고민을 한적 있었지. " 나그네는 노인에게 시선을 두었다. 잔주름과 손에 들린 지팡이. 세월의 흔적이 노인을 뒤덮고 있었지만, 그의 눈. 그의 눈만큼은 분명 본인보다도 빛나고 있었다. " 인생이라는 것이 어찌 이렇게 많은 시련을 두던지. 하나하면 포기하고 싶고, 두어갤해도 같았지. " " ... . " " 그런데도 참았다네. 그 방법이 궁금하지 않나? " 나그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허탕하게 웃으며 하늘을 보았다. " 내 아비는 전쟁에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고, 내 어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네. 내 곁엔 나를 위로해줄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남지 않았었지. " " ... . " " 그래도 날 잡아준건 다름 아닌, 저 하늘. 하늘이라네. " " 하늘이요? " 후후, 하며 웃은 노인은 뻗뻗이 앉아있던 등을 살짝 굽혀 등받이에 댔다. " 저 하늘은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했을때도, 어미를 잃을때도, 대학을 포기하고 막노동을 시작했을때도 늘, 늘 같았다네. 푸르르고, 하얀 솜사탕들을 데리고 다니며 가끔은 울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지. " 노인은 눈을 감았다. 바람이 살랑이며 둘 사이를 통과했다. " 나는 매순간 감정이 바뀌고, 그에 지배 될 때가 많았는데 저 하늘은 매순간 똑같더라니! 순간 열이 받았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달라져야 하는지. 난 그냥 나일수는 없던걸까. 밝고, 열심히 행복을 찾던 나를 다시 찾고 싶은 순간이었지. " " ... . " " 세상은 쉼없이 변화하고 우리 인간들은 그 속도를 따라가기엔, 아니, 나는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내 한계치보다 더 뛰고 대는 심장을 무턱대고 잡곤 다시 뛰었다네. 과부하가 오고, 살려달라는 마음의 소리는 무시했다네. 나에겐 돈이 필요했으니. " 노인의 표정은 어찌 편안했다. 나그네는 자신의 불편했던 표정이 싹 가라앉은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바보였지. 나를 굳이 그렇게 가동했어야 했나 싶어. 가끔은 여행도 떠나보고, 이 식물의 이름은 뭔지 조사해보고 맞선도 나가보고 할 걸 그랬다고 아직까지 후회를 한다네. 그래서 요즘은 그저 하늘과 구름을 따라 걷는다네. 잘 된 일이지. 이렇게 좋은 인연도 가끔 만들어낸다네. " " ...그렇군요. " " 그대, 여기까지 걸어오며 무슨 생각을 했나? " 나그네는 조용히 눈을 감아 제 감정을 쫒았다. " 그저, 불안했지요. " " 그렇군. " 동시에 노인과 나그네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떼지은 구름이 하하호호 날아다니는 듯 보였다. 푸르른 바다같은 하늘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 내 그대에게 해줄 말은 별로 없을테지만. 이거만은 말해주고 싶구만. " " 무엇이죠? " " 앞으로 걸어갈때는, 저 하늘과 구름을 가끔 보는 것이 어떤가? " " 네? " " 그러면서 앉아서 좀 쉬고, 콜라 한잔 마시고 숨을 돌리고. 다른 이에게 할 수 없는 말을 속삭이고. 그렇게 변하지 않을 친구를 만들어 보란 말이다. " 노인은 잔잔한 미소를 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그네는 성급히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 감사합니다, 어르신. 덕에 많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 " 그런가? 허허. " 노인은 그대로 한걸음 한걸음 멀어졌다. 나그네는 노인의 모습이 점이 될때까지 그대로 서있다, 벤치에 털썩, 하고 앉았다. 그러곤 목을 쭉 뻗어 시선을 올렸다. 하늘은 평소처럼 푸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