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초록글 01.파리2 l 감성
l조회 456l
이 글은 3년 전 (2021/11/03) 게시물이에요
01. 

그날 밤. 나는 파리의 한 골목 귀퉁이에 있었다.  

한 손에는 샴페인을 들고서. 내 걸음따라 비틀대며 일렁이는 강물이 예뻤다. 

그림자는 점점 길어져 나를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다시 내가 그림자를 앞서고, 몇 발자국 딛으면 그림자가 나를 앞서고. 

우리는 서로를 끌어주었다. 그래서 외롭지 않았는데, 그게 문제였나보다. 아니면 내 손에 들린 싸구려 샴페인이 문제였던가. 

사방이 온통 물결이었다. 그 물결같은 어둠 속에 나는 혼자였다. 이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다만 여기는 파리였다. 

냄새나는 집 앞 골목에서 한 손에 소주나 들고 나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여기는 파리였다. 나에겐 그게 제일 중요했다. 

내 좁아터진 방이 아니라, 에펠탑과, 에펠탑이 있는 파리다. 나는 그 어둠 속을 좀 더 헤매기로 했다. 

그건 낭만이었다. 축축한 이슬 냄새가 배어들고, 불어소리가 완벽한 구분을 말하는. 나는 이 길 위에 온전히 나로서 존재했다. 

아는 것이라곤 에펠탑과 파리 이름 뿐인 이곳에,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기에.  

그러나 나는 이내 관두고 말았다. 나는 혼자였다. 날 끌어줄 그림자는 사라졌다. 같은 어둠 같은 골목 같은 정취. 

그 속에 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내 그림자는 저 어둠에 파묻힌 건지. 그림자 하나 비출 빛 조차 없었다. 그저 끝없는 어둠이 물결 치는 소리만 들렸을 뿐이다. 여기는 파리다. 내 그림자가 집어삼킨 고요한 파리다. 그게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여기는 파리니까. 용서가 되었다. 이슬 냄새가 더욱 스미었다. 축축해진 옷깃 사이로 느껴진 온기가 나의 것이라기엔 너무 미적지근해서. 샴페인을 더 들이켰다.  

나는 싸구려 샴페인을 마시다 내 그림자에 끌려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흘러왔다. 그렇지만 여기는 파리였다.
추천


 
낭자1
굿
3년 전
글쓴낭자
💓
3년 전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혹시 지금 한국이 아니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카테고리
  1 / 3   키보드
날짜조회
감성수미상관 10.29 11:1161 0
        
        
        
        
짐노페디 1번1 01.21 05:30 349 0
짝사랑에게1 01.15 04:24 575 1
얘들아 2 01.04 12:06 288 1
가끔 생각을 고치고 싶을 때 필사를 한다 01.03 23:31 793 5
2022년에 보기 좋은 내가 좋아하는 구절들 5 01.02 02:49 1241 7
연애하기 전 사랑에 대한 내 생각 12.26 10:29 1000 0
돈 모으려고 휴학하는 거 어때5 12.23 02:11 589 0
5% 12.23 01:37 192 0
외로움을 배고픔이라고 착각한 적이 있다 1 12.10 22:14 839 3
진짜 오랜만에 글 쓰고싶다 댓글 남겨줄래?4 12.08 13:45 645 0
전시회 다녀왔다1 12.08 08:21 885 0
본인표출 이상주의자의 무의식 Ⅸ 9 12.06 23:01 1803 4
나 카톡테마 샀는데 오때16 12.05 03:01 3902 6
나 오늘 생일인데 축하좀 해주랑6 11.29 21:12 454 0
형 이름행시 장인이다 3명만 와라!11 11.14 13:07 1320 0
심리적으로 지쳤을 때 11.10 10:47 761 1
불완전한 에덴 11.09 10:57 538 0
아빠의 등 11.03 22:08 405 1
01.파리2 11.03 01:27 456 0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1 11.03 01:06 86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