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그날 밤. 나는 파리의 한 골목 귀퉁이에 있었다. 한 손에는 샴페인을 들고서. 내 걸음따라 비틀대며 일렁이는 강물이 예뻤다. 그림자는 점점 길어져 나를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다시 내가 그림자를 앞서고, 몇 발자국 딛으면 그림자가 나를 앞서고. 우리는 서로를 끌어주었다. 그래서 외롭지 않았는데, 그게 문제였나보다. 아니면 내 손에 들린 싸구려 샴페인이 문제였던가. 사방이 온통 물결이었다. 그 물결같은 어둠 속에 나는 혼자였다. 이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다만 여기는 파리였다. 냄새나는 집 앞 골목에서 한 손에 소주나 들고 나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여기는 파리였다. 나에겐 그게 제일 중요했다. 내 좁아터진 방이 아니라, 에펠탑과, 에펠탑이 있는 파리다. 나는 그 어둠 속을 좀 더 헤매기로 했다. 그건 낭만이었다. 축축한 이슬 냄새가 배어들고, 불어소리가 완벽한 구분을 말하는. 나는 이 길 위에 온전히 나로서 존재했다. 아는 것이라곤 에펠탑과 파리 이름 뿐인 이곳에,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기에. 그러나 나는 이내 관두고 말았다. 나는 혼자였다. 날 끌어줄 그림자는 사라졌다. 같은 어둠 같은 골목 같은 정취. 그 속에 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내 그림자는 저 어둠에 파묻힌 건지. 그림자 하나 비출 빛 조차 없었다. 그저 끝없는 어둠이 물결 치는 소리만 들렸을 뿐이다. 여기는 파리다. 내 그림자가 집어삼킨 고요한 파리다. 그게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여기는 파리니까. 용서가 되었다. 이슬 냄새가 더욱 스미었다. 축축해진 옷깃 사이로 느껴진 온기가 나의 것이라기엔 너무 미적지근해서. 샴페인을 더 들이켰다. 나는 싸구려 샴페인을 마시다 내 그림자에 끌려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흘러왔다. 그렇지만 여기는 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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