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기억이 시작하는 때부터 여자애를 좋아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제일 처음은 5-6살쯤으로 옆 집에 또래 자매가 있었는데 그 자매의 사촌이 가끔 놀러오곤 했었다. 반짝반짝, 예뻤다.
같은 나이에 같은 여자애인데 그 애는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 같았다.
어린 나이의 어휘력은 처참하니까 달리 예쁘다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고, 지금도 그렇게 추억할 수 밖에 없지만 말이다.
나는 부모님을 따라 도시로 갔고 거기서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요즘은 짧은 머리를 한 여자애가 많지만 그 당시는 정말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다들 나를 남자애로 착각했고 이름을 말하면 그제서야 여자였어? 라고 되묻고는 했다.
나는 그게 너무나도 창피해서 이름 말하는 걸 정말 싫어했다. 그리고 죄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기때부터 지금까지 머리가 긴 적이 거의 없는데(20대가 되어서 궁금함에 길러보려고 여러번 시도를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유를 꼽자면, 시골에 외할머니 손에 길러졌기 때문일까?
미용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지라 동네 할아버지가 대충 이발소~ 라고 운영하는 곳에서 머리를 깎았었다.
심지어 구렛나루를 면도칼로 밀기까지 했다. 나는 그게 너무 자연스러웠고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산으로 뛰어다니며 골목길에선 축구를 하는 내게는, 정말 이상할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도시로 온 나는 달라질 필요가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줄을 따로 서야했고 꼭 남녀가 짝을 지어 책상에 앉아야 했다.
처음 반 애들과 만난 날, 복도에 남자 여자 따로 줄을 서라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주춤했다.
나는 여자지만 내 외모는 (그 당시 시선으로)남자였기 때문에 여자줄에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싫어서 남자줄 끝에 슬쩍 섰다가 선생님께서 나를 여자줄로 보냈다. 근데 생각외로 나를 외모로 놀리는 아이들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다들 너무 어렸기 때문에 순수했던 것 같다.
아, 좋아했던 여자애 얘기로 돌아가자면, 초 2학년 때 피부가 유난히 하얗던 내 뒷자리의, 2학년이 끝나갈 무렵 전학을 간 그 아이.
2학년 때인지 5학년 때인지 헷갈리지만 전학을 왔던 눈이 큰 그 아이.. 등등.
나는 참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그 당시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나를 좋아하는? 여자애도 있었다.
물론 연애감정이라거나 그런 류의 것은 아니지만. 보통 어린애들의 친구감정이랑은 조금은 다른 느낌의. 또래 중에서도 조금은 조숙한 느낌의 애들이 그러했다.
키가 땅콩만 했던 나는 키가 큰 그 아이들이 멋있어 보였고 처음 느껴보는 그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자연스레 멀어지고
나는 언니가 다니던 여중으로 가게 되었다. 여중은 초등학교와는 확연히 달랐다. 무엇이 가장 달랐냐면, 일단 숏컷인 애들이 많았다.
학기 초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머리카락을 자르는 애들이 늘어났다. 나는 그 당시 좋아하는 가수가 따로 없어서 전혀 그 문화에 관심이 없었지만..
대부분 숏컷인 애들은 신화나 god를 좋아하는 애들이었다.(여기서 내 세대가 밝혀진다..) 그들은 당연히 내게 말을 걸어왔고 나는 얼레벌레 그들과 적당히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누구보다 레즈비언 같았던 내가 사실은 레즈비언이 뭔지 몰랐다면 믿겠는가.
나는 비록 어릴 적부터 줄곧 여자를 좋아했지만 내가 레즈비언, 즉 동성애자라는 자각이 없었다.
여자를 좋아하는게 되려 내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 인지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 에서 동성애를 다룬 적이 있는데 그때서야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중학교 1학년이 된 나는 뜻하지도 않은 첫사랑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