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꿈을 꾸는 줄 알았다. 꽉 말아 쥔 손에서는 축축한 땀이 흘렀고, 수치심에 푹 숙인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이 달아올랐지만 그럼에도 난 이게 꿈인 줄 알았다. 아니 꿈이라고 믿고 싶었다.
“내가 미안타…”
큰 덩치가 우습게 몸을 구겨가며 무릎을 꿇고 나를 올려다보는 이 남자를 꿈이라고 믿고 싶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이 올망거리는 눈이 부담스러웠다. 정말 나한테 미안하다면 그냥 좀 꺼져줘… 신종 괴롭힘인지 뭔지 몰라도 미야 아츠무가 하고 있는 이 기행이 나에게 있어서는 스트레스였다. 내가 슬쩍 고개를 돌려 아츠무의 시선을 피하자, 그가 다급하게 내 옷 소매를 붙잡았다.
“내 얼굴 보기도 싫은기가?”
“이거 놔줘…”
우습지도 않은 이 쪽팔린 상황이 뭐가 그리 웃긴지… 올라간 입가를 가리며 사진을 찍어대는 스나 린타로 덕분에 난 더 부끄러워졌다. 찰칵, 찰칵, 숨 막히는 정적 틈에 울려대는 셔터음은 요란했다.
어머, 저거 미야 아츠무 아니야? 그런데 왜 무릎을 꿇고 있담. 어쩌구 저쩌구. 빌어먹게도 미식 축구부에서 그 들어가기 어렵다는 쿼터백 자리를 차지한 미야 아츠무는 꽤나 유명인이었고, 얼굴 또한 훤칠해서 주변 시선을 죄다 끌어 모았다. 그와 반대로, 난 학교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한 그야말로 길가의 돌멩이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미야 아츠무가 무릎을 꿇고 있는 상대방은 누구인가?> 에 대해 궁금증은 커져갔다.
도대체 쟤가 누군데.
”대’가리에 빵꾸가 뚫렸었나 보다... 차라리 니 맘이 풀릴 때까지 내를 때려도.”
미야 아츠무가 저렇게 쩔쩔매는 쟤는 누군데.
“아이다, 니는 손목이 가늘어가 때리는 니가 더 힘들다. 차라리 사무 금마한테 때리라칼까?“
옆에서 인상을 찌푸리는 오사무는 보이지도 않는지, 애처롭게 고개를 떨구는 모양새는 여전했다. 솔직히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어째서? 왜? 이제와서 뭘 바라는데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데? 미야 아츠무가 심심풀이로 갖고 논 상대는 나였고, 그것에 심취해 간이고 쓸개고 다 떼줄 듯이 군 것도 나였다. 내 모든 것을 내주었는데 상대는 당연한 듯 굴었고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이제 그 짓거리가 지쳐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니, 이제와서.
”내가 바보 둔치라 그렇다. 한번 말 하믄 잘 알아먹으니까… 그니까 이번 한번만 내 쫌 봐주믄 안되나? 전부터 그랬다 아이가…”
뻔뻔하게 구는 이 남자가 내게는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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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는 천천히 이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