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요? 내가 싶게 미워요, 선배?"
검정의 머리칼, 새하얀 눈꽃을 녹인 듯한 셔츠의 차림새. 달큰한 웃음을 눈가에 걸친 아카아시가 닝에게 천천히 다가왔어. 닝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인지하기조차 힘들어 입술만 덜덜 떨었지. 그런 닝의 반응이 여전히 재밌다는 듯이, 아카아시는 닝의 뺨을 살살 쓸어주며 귓가를 지분거렸고 말이야.
"케이, 지...?"
닝은 텅빈 눈으로 아카아시를 올려다 보았고, 아카아시는 한참을 말이 없었어. 입을 달싹이던 닝의 얼굴이 어그러져 있었거니와, 절망에 빠진 사람의 눈빛이 차라리 달다 싶을 정도로 애절했거든. 그도 그럴 것이, 닝의 손에 구속구를 채우고, 센티넬로서의 능력을 억제하는 억제제를 주사한 것이 바로 제 눈 앞에 있는 아카아시였거니와. 그런 아카아시는 닝의,
"....대체, 왜."
잃어버린 친구이자 옛 동료였거든. 반정부군과의 사투 중, ......전사했다고 알려진. 그, 옛 동료가 닝의 앞에 '반정부군'의 형태로 제 앞에 나타나 있고, 자신을 이리로, 반정부군의 주둔지로 데려왔다는 것을 과연 믿을 수나 있을까. 닝은 하얀 셔츠 차림의 아카아시를 눈에 담자마자 입술을 꽉 깨물고 그를 올려다 봐.
- 아니, ...아니잖아. 그치.
부정하려 드는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퍼졌어. 아니지, 그치. 아니잖아. 분명, 그때 죽었다고 했었는데. 아카아시의 장례식에 참석해 국화를 올려두고 자리를 떴던 것이 벌써 1년 전의 이야기인데.
"아니잖아. 케이지. 그치...?"
날 데려온 것도, 지금 날 '선배'라 부르는 것도. 왜, 왜... 어째서, 날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구는 거야?
닝은 이해되지 않는 형상에 눈가를 설핏 찌푸렸다가 다시 그를 올려다 보았지. 제발, 대답 좀-
그런 닝의 모습이,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꼬리를 들어올린 채 툭 말을 내뱉는 것도 그래. 우리가 언제는, '아는 사이'였던가요? 닝의 가슴을 후벼파는 말을, 툭. 애초에 우리가 언제 '같은 편'이라고, 난 말한 적 없는 것 같은데. 또다시,
툭.
"아카아시. 그러다 또 폭주라도 하면 어떡하려 그래?"
"그래. 자극하지 마~. 억제제, 그것도 비싼 거야. 적당히 해."
나른한 어조의 여성과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닝은 쉬이 말을 뱉을 수가 없었어.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고, 거친 숨만 내뱉다가 점점 속 안에 있던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 몇 번씩이나 느낀 거였지만, 이건 누가 봐도 폭주 전조 증상이었어. 입 안에는 벌써 비릿한 피맛이 느껴졌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닝의 귓볼만 만지작거리는 아카아시는 어디 한 번 뿌리쳐 보라는 듯이 닝의 목덜미에 입을 짧게 맞추지.
그 순간 흘러들어온 가이딩은, .....지독하게도 달아서. 1년 전, 정부군 소속으로 활동하던 아카아시가 닝에게 가끔 가이딩을 흘려보내 주었던 그, 가이딩과 독하게 닮아 있어서. 더욱이 닝은, 결코 쉽게 그를 뿌리칠 수도 미친'놈이라며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지.
"......손 떼."
"왜요?"
"손, 떼라고. 떼라고. 떼라고...!"
온몸을 움찔거리면서도 내뱉는 말이라고는 손을 떼라는 말뿐. 제발, 떼. 떼라고, 제발... 닝의 얼굴이 눈물로 얼룩질 때가 되어서야 아카아시는 픽 웃으며 닝의 어깨를 그러쥔 손과, 목덜미 부근에 맞춘 입을 떼지. 그래놓곤 작게 속삭여. 여전히, 거짓말 못 하시네요. 닝은 그 말에 입술을 꽉 깨물고 아카아시를 향해 말해.
"차라리 죽여. 반정부군이 정부군 뭐 예쁘다고 살려두고 있어? 죽이라고. 죽여."
"설마-. 그냥 죽여버리겠어요? 그렇게 쉽게 죽일 거였으면 데려 오지도 않았지."
그렇게 말하며, 닝이 이제껏 보지도 못했던... 동료로서 지어보였던 희미한 미소가 다였던 아카아시의 입가에 걸린 환한 미소에 닝은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거야. 어떤 게 진짜인지, 대체 어떤 게 진짜였는지. 닝은 추측조차 하지 못한 채, 점점 독하게 올라오는 폭주 전조 증상에 입술을 꾹 깨물 뿐이야. 물론, 그마저 아카아시의 손길 한 번으로 끝나버린 발악이 되어버렸지만.
"...후회할 거야."
"제가요."
"후회할 거야. 죽을 만큼, 후회할 거야. 죽을 만큼..."
닝은 여전히 제 입술을 꾹 누르며 쥐고 있는 아카아시의 손끝을 바라보며 말했어. 이에 아카아시는 그저 우습다는 듯 웃음을 흘리고, 닝의 셔츠 단추 위로 손을 놀리기 시작하지. 뭐야, 하, 하지 마...! 아카아시에겐 그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건지, 그저 낮은 조소만 들릴 뿐이야.
- 여기서 폭주하는 걸 그냥 내버려 두라고요? ...제 대'가리에 누구 하나 총알이라도 박지 않는 한, 그런 꼴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닝의 셔츠를 벗겨내며 여린 살결 위로 입을 맞춘 아카아시가 그렇게 말을 흘리며 제 청록색 눈동자로 닝의 눈을 흘겼어. 차라리 처음부터 정부군 스파이짓이나 하지 말고, 당신을 데리고 오는 건데. 일이 귀찮게 됐네요, 말하며. 닝의 하의 쪽으로 손을 내렸지. 이미, 닝의 머릿속은 암전.
아카아시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본 남자와 여자는 조금 눈을 크게 뜨다가 적당히 하라며 문을 닫고 나가버렸어. 닝은 1년 만에 만난, 살아돌아온, 아니 살아있던 제 후배와 재회하게 되었지만. 눈 앞에 있는 사람은 분명 제 후배가 맞는데, 영 다른 사람의 형상이어서. 닝은 덜덜 떨리는 입꼬리를 들킬까 또다시 입술을 꾹 깨물며 아카아시의 시선을 피했어. 이또한 마지막 발악이었지.
그제서야 닝은 깨닫게 돼. 아, 내가... 아카아시를, 케이지를... 많이 좋아했었구나.
그래서, 부고가 들려왔던 순간부터 단 한 순간도 너를 잊을 수가 없었구나.
근데 이런 식의 재회로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닝은, 하... 더운 숨을 뱉으며 저를 차가운 눈으로 훑는 아카아시의 손길에 그저 자신을 맡긴 채 눈을 감았어. 최악의 재회. 최악의 만남. 빌어먹게도 다 최악만이 존재하는 이곳에, 감정적으로 구는 것은 오로지 닝 뿐이었지.
'네가... 네가, 죽을 만큼 후회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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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작가가 보증합니다. 얘 죽을 만큼 구릅니다. 센가로 임신튀, 후회, 캐가 죽을 만큼 구르는 후회물 먹고 싶어서 팠습니다. 소재 주의...❤️ 급전개 주의...❤️
댓글로 이어갑니다~!!
반응 없으면 쓰다 탈주합니다. 아무나 좋으니 걍 떠들어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