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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년 전 글... 하도 바빠서 인티조차 못 들어오다 우연히 궁금해져서 들어왔는데 어떻게 됐냐는 댓글이 달려서 어떻게 설명하지... 하다가 글 써볼게 ㅎㅎ 마침 잠도 안 오겠다!
일단 내 친구랑 나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만난 사이였고, 다른 지역으로 대학 가서도 매일 전화하고 주말마다 만날 정도로 친하게 지냈어. 대학교도 다르고, 과도 다르지만 (난 문과, 친구는 이과) 매일 새벽까지 통화하면서 고민 상담도 하고, 주말마다 본가 내려가서 같이 만나고, 시험 기간에 집에 있을 때마다 같이 영상통화 하면서 공부하고, 가족들끼리 서로 다 알 정도로 친한 사이였어.
난 양성애자여서 고등학교 때부터 여자친구를 만나고 있었고, 친구는 이성애자여서 고등학교 때부터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어. 그러다 내가 먼저 헤어졌고, 친구는 나보다 1년 정도 더 사귀었지. 결국은 우리 둘 다 전여친 전남친 청산하고 내가 친구한테 얘기할까 말까 고민하다 내가 사실은 양성애자라고 고백했어. 전에 만났던 사람도 여자였다고 얘기했어. 진짜 날 안 좋게 생각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고백한 거였는데, 친구의 반응은 솔직히 좀 놀라웠다? 부정적이지도 않고, 애써 긍정적인 척도 아닌, 지극히 평범하게 생각해주더라고. 고마운 마음에 더 마음이 갔어.
그렇게 대학교 생활을 하다 졸업하기 1년 전부터 내가 많이 힘들었던 적이 있었어. 정말 많이. 긍정왕에다 낙관주의의 대명사였던 내가 매일 울고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많이 힘들었었어. 그 와중에 공부 욕심은 있어서 학과 공부는 꾸역꾸역했지만, 솔직히 진짜 매일 밤마다 죽고 싶어서 베개에 얼굴 파묻고 이불 안에서 엄청 울었었어. 근데 그럴 때마다 항상 내 친구가 전화로 얘기 들어주고, 걱정될 때마다 내 집 앞에 찾아와서 같이 산책하자고 하고, 억지로라도 약속 잡아서 밖에서 맛있는 거 사주고 그러더라고. 그 당시에 거식증 때문에 삐쩍 말라가면서 강박증도 심해서 매일 공부랑 운동을 손에서 놓지를 못하는 내가 안쓰러웠나봐. 전에 한 번 물어봤는데 내가 우는 거 처음 보고 자기는 결심했대. 내 완벽주의적인 사고를 바꿔서 좀 더 여유롭고 행복하게 지내게 해주고 싶었다더라.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대. 그 때였나봐, 내가 친구를 친구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좋아하게 된 건.
그래서 친구와 가족의 도움으로 거식증이랑 강박증을 이겨내고 좀 더 포동포동해진 상태로 다행히 학교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졸업을 했어. ㅎㅎ 내가 남들보다 일찍 졸업한 거라 솔직히 시간 여유가 많아서 이제는 내가 친구를 챙겨주고 싶더라고. 친구는 의료계 쪽이어서 내가 졸업할 때쯤 친구는 매일 공부하느라 힘들게 버티는 중이었고... 그래서 매일 차 끌고 친구 수업 끝나는 시간 맞춰서 데리러 가서 같이 카페 가서 공부하고 저녁 사주고 드라이브하다 집 데려다주는 일상을 반복했어. 졸업하니까 이젠 매일 얼굴 볼 수 있어서 좋더라고. 그래서 이 때 쯤 저 사건이 일어난 거야. 힘든 시기에 내 옆에 있어준 이 친구랑 관계가 깊어지다 보니까 결국 끝까지 가더라고. 친구도 그 땐 한평생 남자만 만났던 자기가 이렇게까지 마음이 깊어질 줄은 몰랐대.
그래도 난 이렇게 관계가 깊어졌으니까, 우리 진도도 끝까지 갔고, 자주 하니까 이제는 친구가 결정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믿었던 친구는 예상 밖의 대답을 하더라. 우리는 사귀면 안 된대. 어차피 헤어질 운명이니까 사귀면 다시는 서로 얼굴도 못 볼 게 뻔하니까 절대 안 된대. 그 안건으로 한 달 내내 서로 입장 표명하고 설득시키느라 힘들었지... ㅋㅋㅋ 그러다 내가 결국 항복하고 그렇다면 친구로라도 지내도 좋다고 하고 그냥 평소랑 똑같이 지냈어. 매일 친구 보러 가는 일상은 반복됐고, 친구는 그게 너무 부담스러워서 피하고 싶었는데, 내가 상처받을까봐 참았대. 눈치 없는 나는 해맑게 짜잔! 하면서 친구 보러 가고 그랬지...
그러다 내가 졸업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냥 우연히 본 입사 시험에 붙어서 회사를 다니게 됐어.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입사하기 전에 친구가 같이 놀러가자고 해서 여행을 갔지. 은근히 긴 여행이었는데, 이번엔 친구가 나한테 먼저 키스하더라. 그렇게 또 끝까지 갔지만 눈치 없는 나는 그 때 친구가 우리는 사귀면 안 된다고 했던 말을 가슴 속에 새긴 채 그냥 없던 일로 하고 기억에서 지웠어. 그냥 술김에 실수한 거겠지, 어차피 우리면 사귀면 안 돼, 라는 생각만 되뇌이면서 애써 없었던 일로 하고 그렇게 난 결국 회사로 가고, 친구는 학교를 다니면서 다시 멀어지게 됐어. 나중에 친구한테 그 때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까 사실 실수가 아니라 진심이었대. 나한테 우리는 사귀면 안 된다고 말 할 때 마음이 너무 아팠다더라. 자기도 너무 좋아하는데, 자기가 나랑 사귀게 되면 내가 또 나중에 힘들어질까봐 애써 부정하고 있었대. 친구한테서 이 말 들을 때 나 진짜 많이 울었다...
그래도 친구 덕분에 다시 긍정적인 모습을 되찾아서 그런지 회사 생활이 참 재밌더라고. 애초에 사회생활을 즐기는 편이라 다른 사람들이랑도 빠르게 친해지고, 완벽하게 적응해서 잘 다니고 있었어. 사실 친구는 그 때가 제일 힘들었대. 그 때는 내가 매일 자기를 보러 오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막상 강아지같이 쫄래쫄래 쫓아와서 항상 자기 곁에 머무르던 내가 한 순간에 사라지니까 허무하고 속상해서 매일 밤마다 울었다더라. 내가 좋은 곳에서 잘 지내는 건 보기 좋고 대견하고 기특한데, 점점 더 멀어지는 내가 야속하기만 했대.
그러다 희대의 사건이 터졌어. ㅋㅋ 내가 같은 회사 직원분께 고백을 받은 거지. 안 그래도 그 분이랑 친해진 얘기를 친구한테 자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친구는 너무 힘들었대. 자기도 좋아했는데 그 분도 날 좋아할 게 뻔하고, 둘이 잘 될 게 뻔하니까 미칠 거 같았다고 하더라. 나중에는 둘이 스킨십 할 생각까지 하니까 진짜 너무 심적으로 힘들어서 죽고 싶었대. 그런데도 내가 그 분한테 호감이 있는 거 같으니까, 나랑 자기는 사귈 수 없는 게 맞으니까 그냥 자기 혼자 화 삭히면서 참고 잘 해보라고 응원해줬대. 그러고는 밤마다 울고... 눈치 없는 나는 친구는 나한테 아예 마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결국 그 분이랑 사귀게 됐어.
우리 사귄다고 얘기했던 그 날, 친구가 폭발하더라. 난 이유를 몰라서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멍하니 친구만 봤고, 친구는 나한테 간식거리 주려고 내 집 앞까지 왔다가 그 얘기 듣고 그냥 바로 가더라. 내가 왜 그러냐고, 얘기 좀 하자고 울면서 막 쫓아가니까 친구가 따라오지 말라고, 앞으로 너 못 볼 거 같다면서 진짜 매몰차게 가더라... 친구한테 나중에 물어보니까 그 때 자기가 왜 그랬는지 자기도 모르겠대. 그냥 무슨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처럼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지는 느낌이었대. 내 얼굴 보는 순간 자기도 울 거 같아서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갔다고 하더라고.
그러고 나서 친구한테 카톡으로 긴 장문이 하나 왔어. 앞으로 보지 말자는 내용이었어. 그 카톡 보자마자 처음에는 화가 났어. 그 때 내가 고백할 때 안 받아준 건 너였으면서 왜 이제 와서 나한테 질척대는 건가, 싶어서 오히려 더 연락하기가 싫어서 읽고 씹었어. 근데 또 손절하자는 내용의 카톡이 하나 더 오더라고. 너무 화가 나서 그냥 또 읽은 채로 무시했어. 근데 자꾸 눈물이 나는 거야. 내가 지금 이렇게 웃으면서 지낼 수 있는 건 그 친구 덕분이었는데, 이렇게 쉽게 잃는 게 너무 싫은 거야. 그래서 용기 내서 밤 늦은 시간에 친구 집 앞에 가서 친구한테 나오라고 했는데 순순히 나오더라? 나중에 물어보니까 사실 내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대 ㅋㅋ 웃기는 사람일세...
그래서 밤 늦게 서로 맥주 마시면서 울고 불고 서로 다 털어놓고 얘기해서 우리의 오해를 어느 정도 풀고, 이제는 서로의 삶을 존중해주면서 진짜 둘도 없는 친한 친구로서 지내고 있어. 그 때 사귀었던 전남친 얘기도 하면서 연애 상담도 하고, 서로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 얘기하면서 고민 상담도 하고... 다시 원래 우리의 관계로 돌아온 지 정말 오래 됐네. ㅎㅎ 내가 전남친이랑 헤어지면서 이제는 우리 둘 다 솔로여서 매일 밤 전화하면서 지내.
이제는 서로를 가지겠다는 욕심도, 섹슈얼한 욕망도, 어리숙한 감정도 다 버린 채로 정말 순수하고 담백하게 친한 친구처럼 지내고 있어. 가끔 서로 워낙 잘 아니까 야한 농담도 하곤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정말 서로의 행복을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어. 둘 다 서로에게 맞는 좋은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살자고, 각자 서로의 길에서 성공하자고, 나중에 애 낳으면 애들 유치원 보내고 만나자고, 우리 꼭 잘 살자고 다짐하곤 해. 그래서 그런지 힘들 때마다 친구랑 전화하면서 둘 다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있는 거 같네.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기는 해... 나랑 내 친구가 같은 여자가 아니라 다른 성별로 태어났다면 참 좋았을 텐데라고. 그렇지만 어쩌면 친구를 같은 여자로 만나서 더 좋은 거 같기도 해. 평생 리스크 없이 볼 수 있는 거니까. 물론 난 친구같은 남자랑 결혼할 거지만 ㅎㅎ
뭐 어쨌든, 저 글을 쓴 지 2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어. 매일 야자 수업 째고 떡볶이 하나 먹으러 가는 것만으로도 설렜던 우리가 서로 감정에 휘말려서 이리저리 흔들리다 이제는 어엿한 어른으로서 직장도 다니고, 서로의 길을 응원해주는 평생 갈 좋은 인연으로 바뀌었네. 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인연도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너무 두려워 하지마. 설령 그 인연을 잃어버리더라도 후회하지는 마. 그리고 사랑에는 하나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유형이 있는 거 같아. 나랑 내 친구처럼. 서로 사랑한다면, 내 친구처럼 내 미래를 위해 사귀는 걸 포기할 수 있는 거고, 나처럼 고백해서 차여도 친구 얼굴만 봐도 좋아서 매일 찾아갈 수도 있는 거 같아. 사랑하니까, 갈등이 발생해도 서로 풀어나갈 수 있는 거고, 지금처럼 새로운 관계로 정립될 수도 있는 거 같아. 음... 그러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잘 됐으면 좋겠다. 힘들어도 분명 네게 맞는 좋은 사람이 다가올 거야. 장담할게. 다들 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