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망해가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됐고 그 혼란을 틈타 무기를 든 사람들이 민간인들을 약탈했다. 사람 많은 수도는 물론이요, 노인과 젊은이들의 비율이 극명한 깡시골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라부 가의 장녀이자 4남매의 맏이인 시라부 닝이 이제는 막내가 되어버린 둘째를 품에 안고는 손을 뻗어 입을 틀어막았다.
좁은 다락 안에서 제 것인지 아니면 제 동생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땀방울을 흘려댔다. 품에 안은 작은 몸은 잘게 떨려오고 있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이러다 들키는 건 시간 문제겠네. 시라부 닝은 빨리 도망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쉬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에겐 지켜야 할 가족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저 혼자라면 모를까 지켜야 할 사람이 있는 지금으로써는 섣불리 행동하기가 꺼려지는 법이었다.
”이야, 아무리 깡촌 귀족이라도 귀족은 귀족인 모양이다. 안 그러냐?“
움찔, 품 안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시라부 닝은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 꽉 주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들이 이곳까지 오지 않기를 바라며.
“그런데 뭐 가지고 갈 건 없는뎁쇼? 누가 귀족 나리들 아니랄까봐 우리 올 거 알고 다 챙겨서 튄 것 같은데...“
”그럼 넌 여기 남아라. 도망쳤다 해도 얼마 못 갔을 거고, 이 집 안에 숨었을 수도 있어.“
정답이었다. 그나마 인원이 반으로 나뉘어져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시라부 닝이 어깨에 걸쳤던 패물 보따리를 풀어 몸 이곳 저곳에 나눠 보관했다. 마지막으로 열 손가락에 알이 큰 반지를 두 개씩 낀 그녀가 제 품안의 동생, 시라부 켄지로의 몸에도 값비싼 보석들을 쑤셔 넣었다. 켄지로가 몸을 들썩이며 눈을 커다랗게 홉뜨며 쳐다보았지만 이내 그녀가 뭘 하는지 알아차리고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삐걱, 삐걱. 누군가가 다락이 있는 곳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올라오는 발소리는 분명 한 명의 것. 그녀가 손에 쥔 단도에 힘을 꽉 주며 속삭였다.
“켄지로. 우리 이제 나가야 해. 여기로 올라오는 건 한 명인 것 같으니까 내가 금방 처리할게. 너는 조용히 창문으로 빠져나가서 뒷산까지 뛰어가. 마을 사람들이 모이기로 했던 곳 알지? 거기까지 뛰어가는 거야. 나도 뒤따라서 갈 테니까 무사히,“
”미쳤어? 검은 커녕 싸움 한 번 해본적 없는 사람이 처리는 무슨 처리. 됐으니까 그거 나 주고 도망가기나 해.“
그렇게 말하며 제 손에 들린 단도를 가져가려는 켄지로의 손을 그녀가 쳐냈다. 시라부 켄지로가 황당하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갈색인 저와는 다른 색의 머리칼, 시라부의 성을 단 이들과는 전혀 다른 색의 눈동자, 이 집안의 사람들과는 다른 유약한 미소. 부드럽게 올라간 입매가 벌어졌다.
“너가 날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
“......”
“괜찮아 켄지로. 난 시라부라는 성을 달기 전에 길거리에서 살았잖아.“
덜컥, 다락의 문을 연 시라부 닝이 곧바로 보이는 동그란 정수리에 손에 쥔 단도를 역수로 쥐었다. 그리곤 그대로 남자의 어깨에 올라 타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주먹 쥔 손을 입 안에 쑤셔넣고는 목을 칼로 베었다. 푹,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서 피가 울컥 울컥 튀어나왔다. 그 순간 입에 물린 주먹에 가해지던 힘이 빠지고, 남자가 그대로 쓰러졌다. 남자를 깔고 앉은 그녀의 치마에 붉은 물이 들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웃는 얼굴이 지나치게 다정했다. 마치 그 여자가 진짜로 내 가족이라도 되는 양. 시라부 켄지로는 저에게 고맙다 말하며 손을 뻗는 여자의 손을 잡았다. 가느다란 손은 피에 젖어 축축했고 볼품없이 떨려오고 있었지만 맞잡은 손의 힘은 단단했다. 자신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간절할 정도로.
시라부 켄지로는 그 손을 빤히 쳐다보다 여자와 함께 달렸다. 계속 그걸 쳐다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렸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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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노모럴
*의붓동생 시라부
*연하남 후타쿠치
*구르는 닝
*가상의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