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달 째였다. 그대로 멈춘 커서는 제자리에서 깜빡이며 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 한 자도 써내리고 있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이깟 원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큰돈도 되지 않을 어찌 보면 질척한 취미였다. 다만 그게 유일한 생계수단이란 게 심각할 뿐. 300페이지 이상을 썼고 장장 3년을 쏟아부었다. 대단원의 마무리만 남은 상황에서, 온갖 핍박과 계약 해지의 위험 속에서도 허승은 단 한자도 써내리지 못했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그 원인이 창작의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허승은 사랑을 했다. 그게 그의 원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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