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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 째, 옷코츠 유타가 내 뒤를 밟는다. 딱히 숨으려는 노력도 안 하는 것 같다. 그냥 멀찍이 떨어져 걷는 정도다. 스토킹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익숙하게 따라오는 걸 보니, 이전에도 전적이 있는 듯한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다만 그때는 안 들키게 철저히 미행했으리라. 이 거짓말쟁이. -옷코츠. -...어? -그럴거면, 그냥 이리와. 새삼 곁에 있으니 덩치가 있는게 느껴졌다. -앞으로 이렇게 데려다 줘. -응. -아침에도 데리러오고. -알았어. 학교에서 평소처럼 수업을 듣고 나오는데 전공관 앞이 와글거렸다. 자세히 보니 유타가 학생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 참, 쟤 인기남이었지. -새삼 믿기지가 않네... -어, 닝아! 미츠코가 나를 발견한듯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응, 수업끝났지? -어, 근데... 내가 슬쩍 눈짓하니 미츠코가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저번에 네가 물어봤던거 있잖아. 유타 애인! -...아. -지금 그 소문 퍼져서 여자 애들이 난리다 난리. 난 멋쩍게 웃었다. 유타와의 관계는 절대 비밀로 해야겠다. -닝아. 눈이 마주치자 그가 손을 흔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난 대충 인사하고 곧장 그곳을 빠져나왔다. 어차피 갈 곳은 집 뿐이니까, 천천히 걸었다. -다른 애들한테는 말 안해? -응. -왜? -귀찮아. 어느새 그의 보폭에 따라잡힌 나는 나란히 옆을 걷고 있는 유타에게 당부했다. -티 내지마.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티내지 말라고 미친'놈아. 당부가 아니라 다짐을 받아냈어야 했는데. -도와줄게. -... -어디가? -... -응? -...아르바이트. -아아. 조심히 다녀와. 인공적인 햇살같은 행위들에 남아있던 신뢰가 증발된다. 눈치가 없을 리 없는데. 내가 째려보자, 그가 말갛게 웃었다. 옷코츠 유타에 대해 새롭게 안 사실 한가지. 말 잘 듣는 척 하지만, 고집이 세다. 결국엔 제멋대로 한다는 얘기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별 일은 없었고, 신기하게 우리 둘의 관계도 들키지 않았다. 자의식 과잉이었나, 나같은게 유타와 사귈리 없단 뜻인가. 조금 머쓱했지만 할 건 해야지. -유타. -... -왜 대답이 없어? -아... 이름, 불러준거 처음이라. -그랬나? 생각할 땐 늘 유타라고 지칭해서 몰랐다. 막상 부를 땐 별 생각없이 옷코츠라고 했더니, 의식하고 있었나보다. -근데 왜? -아. 나도 나에 대해 새롭게 알려줄게 있어서.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나의 방은 늘 깨끗한 편이다. 미세한 결벽증도 있는 것 같은데, 남 앞에서 티내지는 않는다. 이를 테면 외출복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고 해도 딱히, 화내지는 않는다는 느낌. -부끄러워하네? -일단은 나도 남자니까. -무슨 상관이야. -...그러게 상관없나. 오묘한 분위기에 내가 그를 덮치는 꼴이 되었지만,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뭘 해 볼 새도 없이 그의 품에 갇혀버렸기 때문에 그저 열심히 입술 세례나 받았다. 유타의 상체 아래서 늘어지는 목걸이를 바라본다. 머리카락에 닿는 금속성 물질. 귓속말을 할 때면 닿는 차가운 온도. 기분이 이상했다. 리카도 이걸 보고 있을까? -너는 죄책감 같은 거 안 들어? -무슨 죄책감? -나랑 이러는거, 리카한테. 그는 잠시 곰곰히 생각하는듯 하더니 멀뚱하게 반문했다. -...왜 죄책감이 들지? -...됐다. 우리는 그 후로도 몇 차례의 난잡함을 드러내다 잠에 들었다. 나는 점점 유타에 대한 마음을 정의하는데 골똘해졌다. 몇 달쯤 지나자 결론적으로, 학과에 모든 사실이 밝혀졌다. 다만 변질된 부분은 있었다. -닝쨩, 유타랑 진짜 사귀는 사이야? -응. 이건 사실, -소문의 리카쨩이 너라면서? -응, 맞아. 이건 거짓. 하지만 해명하기 귀찮은 걸. 마음에 안들면 유타가 알아서 정정할 것이다. * -생일축하해. 나는 스물 두번째 생일에 나의 연애관을 새롭게 정의하기로 했다. 나란 인간은 생각보다 관대한 사람인가보다. -목걸이네. 옷코츠 유타가 일부러 이러는게 아닌 이상 대단히 미친'새끼인게 분명했다. 자기는 전여친 목걸이를 차고서 현여친한테 목걸이를 선물로 줘? 다만 슬픈 사실은 유타가 결코 일부러 이럴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난 미친'새끼와 사귀고 있는 것이 확정되었다. -내가 이걸 차면 넌 그 목걸이에서 벗어날까? 미리 대답을 들은 기분이었다. 사실 그의 표정은 언제나 똑같았다. 다만 내 마음의 깊이가 달라져서 미묘한 반응에 서운하고 혼자 실망하고 마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미 처음부터 다 알았음에도. 너는 그 목걸이를 버리지도 않을거고 내게 목걸이를 걸어주지도 않을거야. 스스로 채우게 할거야. 분명 목줄처럼. 그런건 처음 채워준 사람이 아니면 끊지 못하니까. -고마워, 유타. 나는 당장이라도 그의 목줄을 잡아당겨 입 맞추고 싶었다. 끊어지면 더 좋고. 그러나 난 그저 그에게 받은 것을 목에 걸고 웃었다. -예쁘네. -응... 널 사랑해. 여전히 그의 사랑 고백에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처음처럼 고민한다. 도망가도 될까? 그의 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내 근처를 지키겠지. 내게 새로운 남자가 생겨도 날 붙잡지 않을거고, 딱히 위해를 가하진 않을거야. 다만 그 사람이 내가 싫다는 행동을 한다면 그때 어디선가 나타나서 죽여버릴지도 모르지. 우울한 건 아니었지만, 그다지 기분이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심술궂은 생각을 했다. 장난 좀 쳐볼까. -유타. -응? -근데 나 질투나. 내가 첫 번째가 아닌게. -... 그는 미소짓지만 눈은 웃지 않는다. -야, 장난이야. 표정 풀지? -...장난? -그래. -거짓말. 어떻게 알았지. -네가 처음에 그랬잖아. 너처럼 알기 쉬운 사람은 없다고. -그랬지. -나보고 바보라며? -그걸 담아뒀어? 내가 장난스레 웃어보이자 그가 음울한 목소리로 답했다. -리카는... 그냥... 그런 순위 같은게 아니야. 미안. * 어느덧 한 여름이 되었다. 쨍하고 빛나는 햇볕에 온 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오히려 햇살이라 불리는 남자, 옷코츠 유타는 시원한 몸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손을 잡으면 언제나 서늘했다. 우리는 방학을 맞아 짧은 동거를 시작했다. 사실 그 전에도 반쯤 같이 살고있었기에 그저 그의 짐이 조금 더 늘었을 뿐이다. 놀랍게도 유타는 모범생쪽에 속해서 늘 기숙사에 살았으니까. -유타, 만약에 놀이 알아? -그게 뭐야? -말 그대로. 내가 가정하면, 넌 답하는거야. -아아. -예를 들면, 만약에 지금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면 무슨맛?이런 거. -먹고싶어? -응. 우리는 집 근처 벤치에 앉아 그가 사온 하드를 먹으며 열기를 식혔다. 머리 위에서 나무 그늘이 늘어져 내렸다. 여름은 부는 바람마저 뜨거워서 방심할 수가 없었다. 전부 녹겠어. -어때, 해볼래? -좋아. -그럼 시작한다.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가볍게 발장난을 쳤다. 사실 질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너의 정답도 정해져있으면 좋겠다. -만약에, 내가 죽으면, -그럴 일 없어. 아, 빠른 반응. 트라우마인가? 조금 미안. -아니, 좀 들어봐. 그냥 가정이잖아. -예시랑 너무 다르잖아. -알았어. 그럼 다른거. 만약에, -... 그가 살짝 굳은 얼굴로 나의 손을 잡는다. 불안해하기는. 유타는 속을 알 수 없다가도 알기 쉬운 남자였다. 나보다 네가 훨씬 어려우니까 그의 답을 예상할 수 조차 없어서, 나는 자꾸 확인받고 싶었다. 미정인 답이 싫어서, 오래전부터 물어온 의문에 이제는, 정답을 말해주었으면해서. -너는 또, 리카처럼 나를 걸고 다닐거니? 그래, 단지 그 뿐이었는데. -아니. -... 아직도 리카랑 동급은 아니다 이건가. 나는 조금 비참해졌다. 그의 얼굴을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그렇구나. 내가 가볍게 웃자 그가 답했다. -그땐 너를 따라 죽을거야. 새로운 오답이었다. 손목을 타고 뜨거운 것이 주륵 흘러내렸다. 분명 차가웠던 아이스크림은, 본분을 잊고 사정없이 물러지고, 더운 여름이 부는 입김에 그대로 형체를 잃어갔다. 내가 네 순정이 얼마나 글러먹었는지 잊고 있었네. -근데 유타. -응. -나 아이스크림 녹았다. -...바꿔줘? 끈적임은 오래도록 질척이는 습성을 지녔지, 너처럼. -아니, 핥아줘. * 방 안에 누워 불도 켜지 않고 하루종일 붙어있던 날이 있었다. 아침인지, 낮인지, 밤인지조차 모르게 어두운 암막커튼을 치고 무덤 속에 파묻힌듯, 가만히 누워서 온기나 나누던 날이. -이제 덥다. -그러게. -이제 그만할까. 내가 그의 뺨을 문지르며 히히, 웃을 때 그는 가만히 내 목걸이에 입맞췄다. -영원한게 좋아, 난. -지금은 재미없어? -아니. -... -즐거워서, 이 세상에 우리 둘 뿐이면 좋겠어. 사실은, 다 죽고 네 세상에 나뿐이면 좋겠어. 가끔 이런 섬뜩함이 사랑을 잠식할 때, 나는 자주 가라앉았다. 그럼 너는 내 숨통을 틔워주는 척 더 깊이 끌어내린다. 아마도 자주 속삭였을 것이다. 내가 잠든 사이, 숨 따위 내가 불어넣어주면 돼. 그러니 수면 위로는 가지마. * 이전 글 : https://www.instiz.net/name/54012370?category=3
그 녀석의 순애가 이상하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