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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개월 전 (2023/10/24) 게시물이에요
 글을 쓰기에 앞서, 미리 이야기하자면, 도쿄대는 서울대와 같이 체육교육과가 없고, 따라서 체육특기자 전형이 없다.
그러니까, 모두 일반입시 으로 들어온 선수라는 것이다.
다만, 일본이 부활동이 워낙 잘 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고, 공부도 잘하고 야구부 실적도 좋은 학교 출신들도 꽤 있긴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서울대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고, 체육교육과가 없는 도쿄대 특성상
대학야구리그에 들어가 있는 팀 중에서 최약체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소속된 대학 리그에서 유일한 국립대학이고, 소속된 팀들 중 유일하게 우승 경력이 없다. 
이런 기록을 보유한 팀답게, 최다연패기록 94연패, 40시즌 연속 최하위기록 등 온갖 불명예기록은 다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불명예 기록을 끊기 위해 도쿄대 선배인 야구부 감독이 야구 잘하는 고등학생들에게 무료로 과외를 해주면서 도쿄대에 입학할 성적을 만들어주었고, 
이 학생들이 도쿄대 입학 후 야구부에 입부한 전적이 있다. 실화다.)
하지만, 이러한 약체 도쿄대 야구부에서도 꽃은 피었으니, 지금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프로로 지명되었거나, 활약한 경우가 6명이 있다.
오늘은 그래서 도쿄대생으로서 일본프로야구에 부름을 받은, 공부도 무지 잘하고 야구도 잘했던 선수들에 대해 글을 써보려고 한다.

1. 니이에리 신지 (1941~2004) 포지션 투수
도쿄도립 고이시카와 고등학교- 도쿄대학교 경제학부
프로 통산 4시즌 88경기 156.1이닝 9승6패 평균자책점 3.29

원래 고등학교 때 야구를 시작하려 했으나, 당시 재학 중인 고등학교에 경식 야구부가 없었던 관계로,
3년간 연식 야구부(고무나 스펀지로 된 야구공 크기의 공을 가지고 하는 야구)에 소속되어 활약했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그래도 남아 있었던지, 본래는 와세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했지만, 지인과의 상담에서 
"정식 야구 경험이 없으면 와세다 대학 야구부는 어렵다. 하지만 도쿄대라면, 와세다대학과 같은 도쿄6대학리그에, 연식야구 경험으로도 주전까지 노릴 수 있을 것."
이란 말을 듣고 더 열심히 공부해, 도쿄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한다.
이후 그 지인의 말대로 도쿄대학 야구부에선 에이스가 될 수 있었지만, 팀이 워낙 약체인 만큼 성적은 형편없었다.
통산 대학리그 성적은 68경기 8승 43패 149탈삼진 평균자책점 3.29. 43패는 현재까지도 리그 최다패 기록이다.4년의 재학기간동안 도쿄대가 올린 승리가 신지가 만들어낸 8승이 전부였다.

여하튼 이 고독한 에이스이자 도쿄대 출신 초엘리트를 노리는 회사는 많았다. 스미토모 금속(우리나라로 치면 고려아연), 삿포로 맥주(우리나라로 치면 OB맥주 혹은 하이트진로) 등등.
하지만 이 아저씨는 프로 야구팀을 당시에 운영하고 있었던 마루하 니치로(우리나라로 치면 동원그룹)에 입사한다. 
그리고 이 아저씨의 야구선수로서의 경력을 눈여겨 본 오너 일가는, 니이에리 신지에게 
"남태평양에 2~3년간 원양어선 타고 온다는 생각으로, 프로에서 던져 보는 게 어때?"라고 제안했고, 니이에리 신지는 이를 받아들여 마루하 니치로가 운영하는 다이요 훼일스(현재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에 입단하게 된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냐면, 이 아저씨가 입단한 1965년도에는, 지금 우리나라의 K리그가 하는 것처럼 자유계약 제도였다. 고로, 드래프트 제도가 생기게 된 지 2년 전의 일이었다.
그래서 자유계약 형식으로 입단이 가능했다. 계약금까지 받으면 그만 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없다고 판단해서 계약금을 안받고, 연봉을 더 받는 식으로 계약이 이루어졌다고.
그리하여 1965년 6월에 1군 콜업, 6월 12일 주니치 전에서 데뷔전을 치뤘고, 10월 18일에는 야쿠르트 전에서 첫 완투승을 기록한다. 같은 해에 40경기에 등판, 5승을 수확한 건 덤.
이듬해인 1966년에도 계투진의 한 자리를 꿰찬다. 다만 이 아저씨에겐 도쿄대에서 얻은 고질병이 있었는데......

바로,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만 잘 던지고,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흥분해서 흔들린다는 것이었다.
이게 왜 도쿄대에서 얻은 고질병이냐면, 도쿄대에서는 일반적으로 지고 있다는 것이 당연시되어있는 상황이 일반적이었고, 니이에리 신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즉, 지고 있는 상황이 평상시 상황이라 제 기량이 나오고, 이기고 있는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 제 기량이 역으로 나오지 않게 된 것이었다.
결국 이 아저씨는 줄곧 필승조가 아닌, 추격조나 패전조로 등판해야 하는 활용법상의 한계가 있었고, 결국 프로 3년차부터 기회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를 사용할 줄 알았던, 미하라 오사무 감독이 퇴임하자, 4년차인 1968년을 끝으로 프로야구에서 은퇴한다.
애당초 출장의 개념으로 이루어진 프로 입단이었기에, 은퇴후 일반 회사로 인사이동하듯이 마루하 니치로 로 복귀해 무역부에 배속되었다. 
이후 6년간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있으면서 메이저리그를 덤으로 공부했고, 해외사업본부장, 지사장을 거쳐 그룹 산하 리조트회사의 사장이 되었고,
그룹에서 운영하고 있던 프로야구단의 고문을 맡는 등 프런트 일도 하다가, 2004년에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2. 이데 타카시.(1944~ 현재 생존) 포지션 투수, 외야수
신주쿠 고등학교- 도쿄대학 농학부
1966년 2차 드래프트 3순위 주니치 드래곤즈 입단.
프로 통산 8시즌
투수 1시즌(17경기1승 4패 33.1이닝 평자 5.13)
타자(359경기 64타수 12안타 2루타 1개 홈런 1개 2타점 4도루)


이 아저씨가 야구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초등학교 2,3학년 즈음 요미우리- 한신 라이벌전을 경기장에서 직관한 것에서 시작된다.
거기서 무언가 뜨거움을 느꼈다고, 이후 그 뜨거움을 간직만 하다가, 고등학교 때 어머니 몰래 야구부에 입부한 것으로 야구인생을 시작한다.
공부 자체는 이데 타카시 본인 말을 빌리면 "어머니가 깔아 놓은 레일 그대로 진행했지만, 야구만큼은 자기 나름대로의 탈선"이었다고.
그래서인지, 1년 재수를 한다. 하지만 그때조차 재수학원 동료들과 야구를 하면서 놀았다. 
그래도 공부머리는 어디가지 않았는지. 본인의 성적은 (도쿄대에서 농학부 말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었어서 농학부에 진학했다고 하지만) 도쿄대에 진학할 만 했고.
농학부에 진학했다. 농학부에서는 임산학부(산림과학부)를 선택했는데, 목재, 펄프의 재사용 관련 연구 도중에 야구선수의 배트를 입수, 현미경 사진을 찍어 나무의 강도를 체크하는 일도 있었다고.

여튼 야구에서는 처음에는 내야수였지만, 이후 투수로 전향해서 3학년 때 대학야구의 강호인 게이오 대학교를 상대로 완봉승, 그 다음날 구원등판해서 팀의 연승을 이끄는 대활약을 펼쳤다.
같은 해 제 6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도 출전했고, 일본의 우승에 공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약체 도쿄대 야구부 출신답게 초라했다. 4승 21패 평자 3.28. 하지만 변화구 중심의 두뇌파 투구 스타일과, 주무기인 커브가 주니치 드래곤즈 스카우트 눈에 들었고.
일본 최대의 상사인 미쓰비시 상사의 입사 권유도 뿌리치고 결국 도쿄대 출신으로선 2번째로, 드래프트 시대 이후로는 첫 번째로 프로야구 선수가 된다.

입단 첫 해, 첫 승을 거두고, 경기 MVP가 되어 인터뷰 세례도 받았지만. 이후 2년을 어깨 수술로 재활에 몰두한다.
이후 위에서 얘기했듯이 대학교 1학년 때까진 내야수였고, 100m를 11초대에 끊는 속도에 주목한 코치진들에 의해  투수가 아닌 대타/대수비/전문 대주자의 커리어를 보내게 된다.
그렇게 8시즌을 뛰다가, 선수 생활 마지막 해에 플레잉 코치로 코치를 보좌하게 되고, 그 해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친척이 경영하는 패키지 회사에 근무도 하고, 라디오에서 야구 해설도 하다가, 자기를 받아주었던 주니치 드래곤즈의 코치로 부임한다.
주로 대주자나 대수비로 나온 경력을 살려 수비/주루 코치, 작전코치, 2군 수석코치, 감독 등을 오갔고, 
나중에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이사까지 맡는 등, 선수, 코치, 프런트 경력까지 합치면 거의 50년을 주니치에서 일하게 되었다. (1966~2015)
50년 가까이의 세월을 뒤로 하고 이사에서 퇴임한 이후에는, 학생야구 지도 자격을 회복, 자신의 모교인 신주쿠 고등학교와 도쿄대학의 감독을 맡고 있다.




3. 고바야시 타카시(1968~ 현재 생존) 포지션 투수
가나가와 현립 타마 고등학교- 도쿄대학 경제학부 경영학과
1991년 2차 8라운드 지명
1군 출장 기록 없음, 2군 통산 26경기 0승 2패 평자 6.17


사실 이 아저씨는 대학생이 되기 전 행적에 대한 기록이 없기도 하고, 도쿄대 출신 프로야구선수 6명 중에서 유일하게 1군 데뷔 경력이 없는 선수이다.
자신이 도쿄대 에이스로 있을 때에도 팀이 70연패 중이었고, 개인 통산 성적도 0승 12패이다. 
다만 25년만에 나온 3번째 도쿄대 출신 지명자로 화제가 되었을 뿐. 그 이상은 없었다.

이후 아이비리그 소속으로 잘 알려진 컬럼비아 대학 경영대학원에 진학, MBA를 따고 해외에서 살다가.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인종차별을 고발하는 칼럼을 써서 해고된 이후에는, 정치도 도전해보고, 조교수로 취임해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2005년 소프트뱅크의 프런트로 취임, 업계의 상식을 깨는 여러 가지 시도를 했고, 그 결과는 지금까지도 줄곧 이어져 오고 있는 소프트뱅크의 전성기였다.
수많은 외국인 용병의 영입을 성공으로 이끌었으며, (그 중에는 이대호, 벤덴헐크, 페타지니 등 KBO에서 검증된 선수들도 있었다.)
데라하라 하야토, 우치카와 세이이치, 호소카와 토오루 등 팀의 기둥이 되는 선수들을 발굴, 영입해왔다. 
그 외에도 연봉 산정을 성과급제로 한다든지, 3군체제를 최초로 만들어낸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의 혁신을 가져왔다.
그러다 2016년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완전히 나간 이후에는 교수, 학교법인 상무이사 등으로 재직하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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