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다. 눈이 너무 고요하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라, 비보다 눈이 좋았던 건 틀림없었다. 그래도 가끔 너무 고요하다.
흝뿌려지는 눈 안에 서있으면 정말 바람과 함께 사라질 수 있을 거 같다는 확신이 든다. 안도감과 함께 불어오는 극심한 불안은 내가 여전히 이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이유.
하얀 낮에 내리는 눈보다 초야에 내리는 눈이 좋았던 건, '눈은 포근하다'의 반증이 없어서, 어쩌면 잔혹한 아침해가 부조리해서 일 것이다.
나는 언제나 말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책임감 넘치는 사람일수도 있고, 작은 책임마저 지기 싫은 겁쟁이라서 그럴수도 있다. 그래서 난 언제나 말 끝을 얼버무린다. 믿음은 타인에게 걸어두고 미약하게 언어의 초반부를 잡고 있다.
내가 이 말을 꺼낸 이유는, 나의 확신은 자신이 살아온 영겁의 시간 동안 눈처럼 쌓아올려졌단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진심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필연의 태양을 기다리는 눈사람이 되고 싶단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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