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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375l 10
이 글은 6개월 전 (2024/4/19) 게시물이에요

아가씨 명대사 보고 뽕차서 도련님 이이즈나와 이이즈나의 하인 남닝이 보고 싶어서 끄적이는 글 (개연성 주의, 주의, 약간..살짝 돌아버린 이이즈나 주의)






#0

겨울이면 훔칠 가죽을 엮어
외투를 만들었다던 유명한 여도둑의 아들.
이것은, 나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1
, 날씨 한번 빌어먹게 좋다
이렇게 좋은 가시밭길로 걸어들어가다니.
인생도 거지 같구나.라고 생각한 오늘 아침이다.
가시밭길이냐고?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나데시코 아가씨, 개뿔 그냥 사기꾼이다
그날도 평화롭게 청소나 하면서 보내던 여자가 찾아왔다. 나랑 크게 한판 벌어보지 않겠냐고, 너에게도 손해는 없을 거라고. 오자마자 다짜고짜 하는 말이 이거였다
이게 무슨 개풀 뜯어 먹는 소리지. 인상을 찌푸리자
사기꾼은 사기꾼답게 유려하고 우아하게 세치 혀를 뽐냈다.

사기꾼이 말은 이러했다
이이즈나 후작가에 아주 귀하게 자라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이 계신다. 부모는 어릴 돌아가셨지만, 부모가 남기고 재산이 입이 벌어질 정도라고
사기꾼은 도련님을 꼬셔 결혼한 도련님을 정신병원에 넣고, 상속 재산을 꿀꺽하는 자신의 계획이랬다
나도 살면서 웬만한 물건들은 도둑질을 해봤지만, 멀쩡할 사람을 정신병원에 넣는다니
이건 커도 너무나도 판이 아닌가
- 열심히 하십쇼.라고 발을 빼려고 했더니만
상속 재산의 반을 나에게 준다고 말을 하더라.
젠장, 이건 도저히 넘어갈 없는 달콤한 제안이었다.
이래서 사기꾼은 무섭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나는 도둑놈이지만


#2
사기꾼은 나에게 도련님의 하인으로 들어가 그에게 바람을 넣어 자신과 결혼하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 결국은 사랑의 큐피드를 하라는 말이다
그것도 독이 사랑의 큐피드
거짓된 사랑을 이어지도록 하다니, 이게 제일 어려운데.
, 계약서에 지장까지 찍어버려서 수는 없지만.
그냥 투정 부려봤다
귀하게 자라서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이 벌써 불쌍해진다.
죄송해요. 피가 뼛속까지 도둑의 피라서 돈이라면 눈이 돌아가는 타입이라

그리고 말을 나는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3
그리고 이야기는 현재로 돌아온다
빌어먹게 화창한 , 바로 내가 도련님의 하인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사기꾼은 철저하게 이름도 가명으로 지어줬다.
스미토[堇人]. 이게 새로운 이름이었다.
내가 제비꽃을 닮아댔나 뭐라나. 와중에 이름 뜻은 쓸데없이 로맨틱하다. ‘나를 생각해 주세요라니, 지나가던 도둑놈이 뜨끔하겠다.
그동안 하인으로써 해야 일이나 명심해야 일을 뇌에 집어넣느라 얼마나 힘들었는가. 이제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외울 있을 같다
얼른 끝내고 멀리 떠나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도착했다
- 무슨 집이 이렇게 새까맣냐.
저택을 처음 나의 감상이었다.
그냥 그대로 새까맸다. 새까맸고, 크기는 더럽게 컸다
젠장, 청소하기 힘들겠는데.
저택 안에 들어가 도련님이 있는 방으로 가면서 느낌 점이다.
도련님도 저택 닮아서 새까마려나
뭐냐, 저택은 집안사람들의 분위기를 나타낸다고 어디선가 들은 같다
그리고 생각은 도련님을 만나는 순간 깨지고 만다.

염병, 이쁘면 이쁘다고 미리 말을 해줘야 아니야. 사람 당황스럽게시리.



추천  10


 
   
글쓴닝겐
#4
도련님에게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본 순간, 내 머릿속에 있던 잡생각이 파도에 밀려나듯 사라지고, 처음 본 도련님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예쁘다. 근데 한편으로는 잘생겼다. 잘생기고 예쁜 게 공존할 수 있나?
처음 본 도련님은 예쁜 얼굴에, 잘생긴 얼굴이 공존하는 사람이었다. 새까만 저택 속 유일하게 색채가 있는 마당의 풀을 따온 연녹색 머리색과, 그런 머리를 멀끔하게 정리한 모습, 부드럽고 하얀 피부에, 널널한 흰색 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 그리고 큰 키까지.
저택이 새까만 이유가 있었다.
내 앞에 계시는 도련님이 색을 다 가져갔네.
버퍼링이 걸린 나를 그냥 말없이 보고 계시는 도련님의 눈은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6개월 전
글쓴닝겐
#5
위장취업한지 두 달이 지났다.
그래도 나름 도련님 얼굴에 면역이 생긴 건지 뭔지, 이제는 얼굴 보면 심장만 벌렁거리게 되었다.
초반에는 얼굴도 벌게지고 눈도 못 마주치고 말도 더듬었던 걸 생각하면 나름 장족의 발전이다.
이이즈나 도련님은 순진해 보이면서 끈질긴 면이 있으셨는데, 눈도 못 마주쳤던 나를 보곤 이렇게 말하더라.
“스미토. 왜 내 눈 안 봐? 혹시 나 못생겼어? 나는 네 눈 보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첫날 빼고는 눈을 안 마주쳐주네. 내 눈도 봐줘. 응?”
못생겼다니. 지나가는 똥개가 말도 안 된다며 왈왈 짖어댈 것이다. 도련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가 자신의 눈을 마주칠 때까지 나를 벽으로 몰아두고는 아주 뚫어지게 쳐다보더라.
염병할, 이러면 안 볼 수가 없잖아.
도련님은 이 짓을 2주 동안 했다.
물론 덕분에 내성이 조금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타격감 있는 얼굴이다. 내 인생에 이렇게 잘생기고 예쁜 남자는 아마 도련님이 마지막일 것이다.

6개월 전
글쓴닝겐
#6
이 사기꾼은 빌어먹게 연기를 잘했다.
그 순진한 도련님은 굳이 내가 옆에서 바람 넣지 않아도 아마 금방 넘어갈 것이다.
정이 무섭다고, 고작 두 달. 두 달 같이 있었는데 내 마음속 깊이 숨어져 있던 양심이 빼꼼 고개를 든다.
젠장, 내가 이렇게 정이 많았나.
이게 다 도련님 탓이다.
순진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불쌍한 우리 도련님.
아무래도 떠나기 전까지는 잘해드려야겠다.

6개월 전
글쓴닝겐
#7
아- 내가 하루 중 가장 힘든 시간이 왔다.
바로 도련님의 목욕 시중이다.
체력적으로 힘든 건 아니다.
그냥, 응. 너무 자극적이라고 해야 하나.
정신적으로 힘들다.
같은 성별인데 이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지, 나도.
내가 따뜻한 물을 받고, 도련님의 옷을 벗기고 욕조로 들여보내면 그때부터 나의 참을 인(忍) 새기기는 시작된다.
부드럽지만 한편으로 단단한 도련님의 몸을 닦고, 머리를 씻긴 다음 양치를 해주고 몸이 건조하지 않게 향유를 바른다.
그러면 내 목욕 시중은 끝나는데,
어라? 내가 왜 도련님과 같은 욕조에 들어와있는 거지.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도련님의 몸을 닦아드리던 중, 입이 심심하시다고 하시길래 막대 사탕을 먹여드렸는데, 도련님이 사탕을 먹다 이가 아프다고 하셨고, 보니 이 하나가 뾰족하길래 이를 갈아주려고 했는데.
아. 이를 갈아주면서 본 도련님의 표정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참을 인을 한계까지 새긴 내가 급하게 일어나려다가 미끄러져서 빠졌다.
미쳤냐. 응? 나 미친 거야?
좁은 욕조 속에서 나는 도련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
염병 저택은 그렇게 넓으면서 욕조는 왜 이렇게 좁은 거야.
욕조에 돈 좀 쓰란 말이야. 돈도 많으면서.
도련님은 날 처음 본 그날처럼 아무 말 없이 나를 가만히 보고 계셨다. 아, 조금 놀라신 것 같기도. 눈이 조금 커지셨다.
젠장 이 정적 어쩔 거야. 뭐라고 말 좀 해봐라 닝아. 뭐든 좋으니까. 아니 근데 가까이서 보니까 도련님 진짜 잘생기셨네. 만져보고 싶.. 아니 미쳤나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러다가 침 삼키는 소리도 크게 들리겠..

꿀꺽.

아, 시‘발

6개월 전
글쓴닝겐
#8
“아, 도련님. 이야 누가 물을 맞췄는지 물이 참 따뜻, 아니 그, 그게 아니라, 그 뭐냐, 그, 어, 네, 바닥에 제가 향유를 흘렸었나 봐요.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미쳤냐. 미쳤냐. 미쳤냐. 미쳤냐고.
“응. 나는 괜찮아. 너는? 꽤 강하게 넘어진 것 같은데.”
“어우- 저는 몸이 튼튼한 게 장점이랍니다. 괜찮아요. 도련님이 괜찮으시다면 다행이에요.”
“너 몸이 튼튼하다고? 하하-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한 건데, 튼튼해 보이지는 않는데. 응, 오히려 말랑해 보였지.”
또 나왔다.
가끔 도련님은 짓궃은 면도 가지고 계시는데 이게 예상하지 못 한 순간에 찾아온다. 그게 지금이다.
도련님은 자기 품에 안긴 나를 말랑거린다며 만지작거리기 시작하셨다.
애착 인형? 나 지금 애착 인형인가? 아니 근데 도련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은.. 응?
“앗, 도련님. 잠, 잠시만요. 거기는 안 되는데..”
“안 돼? 나 사람이 이렇게 말랑한 경우는 처음 봐서 신기한데. 조금만 더 만지게 해줘. 응?”
젠장, 지금의 도련님은 못 말린다.
흥미 있는 건 흥미가 떨어질 때까지 해야 하는 도련님의 성정을 잘 알기에, 나는 결국 포기하고 만다.
그렇게 몇 분 동안 나는 도련님에게 반죽되었다.

이게 사람이야, 반죽이야.

6개월 전
글쓴닝겐

6개월 전
글쓴닝겐
#9
오늘 하루 참- 길었다.
작은 창고방에 누웠다.
가까이서 본 도련님 정말 잘생기셨지. 피부도 어떻게 그렇게 곱지. 나는 창백하기만 한데.
하긴 나랑은 다르게 귀하게 자라오셨으니까, 그럴 만도 하지, 응.
도련님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을 때, 작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어, 이 소리는 도련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다.
잠이 안 오시거나, 필요한 게 있으시면 이렇게 종을 울려서 나를 부르셨는데, 오늘은 뭘까.
도련님의 방을 노크하고 들어가니, 침대에 앉아계신 도련님이 보였다.
오늘은 잠이 안 오셔서 부르셨구나.
“도련님, 잠이 안 오세요? 따뜻한 우유라도 타서 가져올까요?”
“아니- 괜찮아. 오늘은 같이 자고 싶어서 불렀어.”
응?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니. 잘못 들은 거 아닌데?”
“어라... 혹시 제가 방금 입 밖으로 꺼냈나요.”
“응. 일단 이리 와.”
“네? 아, 네.”
응? 뭐지? 이래도 되는 건가? 일단 오시라고 하시니 가야지. 우리 도련님은 꽤나 고집이 있으셔서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성격이시다.
귀하게 자라셔서 그런가.
정신을 차리니 도련님 침대에 같이 누워있었다.
와- 침대 엄청 푹신거려.
좋은 냄새나. 아, 이거 도련님 냄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천장을 멍하니 보고 있었을까.
도련님이 나를 부르셨다.

6개월 전
글쓴닝겐
#10
“스미토, 일은 어때?”
“이제 적응돼서 괜찮아요. 무엇보다 도련님을 모시게 되어서 영광이고요.”
“응. 다행이다.”
“네. 그, 나데시코 아가씨께서 도련님을 많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셨잖아요. 아가씨 덕분에 도련님께서 편해 보이시더라고요. 도련님은 어떠세요?”
“응, 같이 있으면 편하긴 해.”
쿡쿡. 내 양심이 찔리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정말요? 마음이 맞는 분을 찾으셔서 다행이에요. 두 분, 잘 어울리세요.”
“..넌 내가, 천지간에 아무것도 없는 내가, 꼭 그분하고 결혼했으면 좋겠어?”
말문이 막혔다.
젠장 여기서 막히면 안 되는데, 왜 내 입은 풀칠 한 것처럼 떨어지질 않는지. 떨어져라, 내 입. 여기서 막히면 안 돼.
“네. 혼자는 외롭잖아요. 내 옆에 누군가 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하고 든든할 것 같아요. 전 늘 혼자였거든요.”
“하지만, 난 아직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하게.... 되실 거예요.”

이 말을 하는 나의 표정은 어땠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나의 말을 들은 도련님의 표정은 어딘가 슬퍼보였다.

6개월 전
글쓴닝겐
#11
왜지. 왜 도련님이 슬퍼하시는 것 같지?
나는 왜 도련님 표정을 보고 같이 슬퍼지는 것 같지?
이게 무슨 감정이지?
도대체 왜.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을까.
도련님이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서 말했다.
“나, 알다시피 모르는 게 많아. 이쪽도 몰라. 그분과 사랑을 하게 되면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몸을 맞출 텐데. 난 아무것도 몰라. 네가 알려주면 안 돼?”
이게 무슨 소리지. 지금 나에게 뭐,뭘 알려달라는 거지?
하지만 도련님의 눈빛은 한없이 고요하고 진지했다.
마치 진심이라는 것처럼.
알려줘야 하나? 나도 물론 많이 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그나마 경험이 있는 내가 알려줘야 하나? 근데 나로도 괜찮으신 건가? 아니 잠깐만 진짜 괜찮은 건가? 응?
이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도련님의 눈빛 공격에 내가 당해버린 것이다.

젠장, 줏대 없는 나란 인간.

6개월 전
글쓴닝겐
#12
에라 모르겠다. 딱 하나만 가르쳐 주고 재우자.
가련하잖아. 이 큰집에서 혼자. 쓸데없는 책만 읽고, 정말 쓸모 있는 건 아무것도 못 배우고.
이 생각을 하며 이불 속에 있는 도련님의 손을 살짝 잡았다.
“손을 잡을 때는, 강하게 잡으시면 안 돼요. 확 잡으셔도 안 되고요. 처음에는 부드럽게, 구름을 잡는 것처럼 잡으시면 돼요. 이렇게요.”
“응.”
처음으로 제대로 잡아본 도련님의 손은 나의 예상과 다르게 차가워서 놀랐다. 얼굴은 세상 따뜻하시면서.
손의 온기가 얼굴로 옮겨갔나 보다.
나도 나름 평균인데, 도련님의 손은 평균인 나의 손보다 훨씬 길쭉하고 컸다. 뭐가 이렇게 커.
거친 나의 손과는 달리 도련님의 손은 정말 귀하게 자라온 도련님처럼 부드럽고, 매끈했다.
염병 손까지 예쁘다. 우리 도련님은.
“스미토, 손이 엄청 작고 따뜻하네.”
“에이- 저는 평균인 걸요. 도련님이 엄청 무지막지하게 크신 거예요.”
“그래? 나 누구 손을 이렇게 잡아본 게 처음이야. 신기하다. 사람의 손은 이런 감촉이구나.”
쿡쿡쿡. 내 양심을 찌르는 소리가 더 커져온다.
“앞으로 많이 잡게 되실 거예요. 이 따뜻함을 도련님께서 많이 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응. 그랬으면 좋겠네. 그래서, 그다음은?”
젠장. 결국 여기까지 물어보시는구나, 우리 도련님은.
어떡하지. 알려드려야겠지? 근데 정말 첫 키스를 나 따위에게 넘겨도 되는 건가? 이렇게 말하니 내가 도련님 첫 키스를 빼앗을 도둑놈이 된 것 같다.
아니 물론 도둑놈은 맞지만, 이런 도둑놈은 원하지 않았다고.
“그,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첫 입맞춤은 소중한 사람과 하는 게 좋..다고 그랬는데.”
“괜찮아, 너라면. 너도 나에게 소중한 사람인 걸.”

아- 큰일 났다. 나, 도련님에게 약하다는 걸 깨달아버렸어.

6개월 전
글쓴닝겐
#13
이렇게 된 이상, 도련님에게 최고의 첫 키스를 안겨 드려야겠다.
도련님 침대 옆 협탁에는 도련님이 자기 전 책을 읽으실 때 입이 심심하실까 봐 내가 가져다 둔 막대 사탕이 가득 쌓여있다.
응, 역시 첫 키스는 달달해야겠지.
막대 사탕을 하나 가져와서 껍질을 깐다.
도련님은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쳐다본다. 껍질을 까다 눈이 마주쳤다.
사탕이 아니라 내가 벗겨지는 기분.
괜스레 얼굴이 붉어진다.
앞으로 해야 할 건 더욱 얼굴이 붉어질 일인데.
껍질을 깐 사탕을 조금 빤다.
입안이 달콤한 향으로 가득 찰 수 있도록.
빨던 사탕을 입술에 문지른다.
입술이 달콤한 맛으로 가득 찰 수 있도록.
내가 빨던 사탕을 도련님의 입술에도 문지른다.
곧 우리가 이렇게 입을 맞출 거라는 걸 예고하듯이.

도련님은 나를 그저 고요하게 쳐다볼 뿐이다.
마치 배고픈 한 마리의 짐승처럼.
우리 순진하신 도련님께서 그럴 리가 없는데.
내 머리가 어떻게 됐나 보다.

6개월 전
글쓴닝겐
#14
사탕을 껍질 위에 얹어두고, 조심스럽게 도련님의 얼굴을 잡는다.
그리고 도련님에게 다가간다.
아, 닿았다. 뭐야 미친 부드러워.
입을 한 번 맞추고 떨어진다.
그리고 한 번 더 입을 맞춘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사탕을 입에 바른 건 성공적이었다.
빌어먹게 달았고, 황홀했다.
정신 놓고 빨고 싶을 정도로.
도련님도 그랬던 것일까.
조금 더 길게 입을 맞추고 떨어지려는 나의 손목을 잡더니 한 손으로 나의 얼굴을 감싸고는 그대로 내 입술을 집어삼켰다.
와- 시‘발 도련님 천재신가?
아니 키스 처음이라면서 이렇게 잘하시다니.
나보다 잘하시는 것 같다.
이게 재능인가. 재능이냐고.
이거 오히려 내가 배워야 할 것 같다.
도련님은 키스를 진짜 미치게 잘하셨다. 혀를 이렇게 잘 쓰는 사람은 처음 봤다.
평소에도 사탕을 빨아먹더니 이때를 위한 빌드업이었나.
내 입술과 혀를 무슨 사탕 빨듯이 빠는데 미치는 줄 알았다.
도련님은 처음에 윗입술을 먼저 빠신다. 윗입술을 빨고서는 아랫입술을 빠신다. 이때쯤 숨이 살짝 찬 나는 입을 벌리고, 도련님은 그 틈을 놓치시지 않는다.
그 사이를 들어온 도련님의 혀는 나의 혀를 한번 훑고는 치열을 훑으신다. 마치 내 치열 하나하나를 다 정복할 것처럼.
치열을 다 훑으면 다음은 혀다.
내 혀를 뱀처럼 옭아맨다.
우리 도련님 손가락은 얇고 길쭉한데 혀는 두껍고 길다.
때문에 도련님의 혀가 내 입안에 있으면 입안이 꽉 차는 것 같다. 그게 버거워서 도련님의 가슴팍을 살짝 치자, 그런 나의 손목을 잡으시더니 자기 목뒤로 두르게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젠장, 그게 아닌데요. 도련님. 멈춰달라는 뜻인데요.

6개월 전
글쓴닝겐
#15
숨이 찬 내가 고개를 뒤로 빼자 한순간도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듯 따라온다.
이걸 반복하자 결국 내가 침대 끝으로 밀렸고, 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나를 다시 가운데로 들어서 제 밑에 놓으신다.
그러고는 껍질 위에 있던 사탕을 가져와 빨며 말한다.
“응, 입 맞추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맛있네, 한 번 더 하자.”
아니 도련님, 맛있는 건 저희가 사탕을 빨아서라고 말하려는 것도 도련님의 입에 의해 막힌다.
그렇게 사탕 3개가 녹아 없어질 때까지, 도련님과의 입맞춤은 계속됐다.
다음날 내 입술은 벌에 쏘인 것처럼 부어있었지.
아, 물론 도련님도.
근데 도련님은 그것도 야했, 아니 잘 어울리셨다.
.....젠장.

6개월 전
글쓴닝겐
#16
요즘 내 양심의 소리가 쿡쿡 쑤셔오는 바람에 일상생활이 잘 안된다.
그 사기꾼이 시간만 나면 도련님을 찾아와 같이 시간을 보내기에 내가 끼어들 틈은 없다.
무슨 일인지, 둘이서만 있는 시간이 많다.
그게 뭐라고 해야 하나. 조금, 그래 조금 마음에 안 들었다.
저 사기꾼 속은 시꺼먼데, 그거 가짠데.
어라, 나도 가짠데. 그럼 나는 뭐지. 나도 도련님을 속이려고 들어온 건데. 내가 여기 왜 왔지? 아, 응. 돈 때문이지.
돈, 돈, 돈, 돈.
뭐지, 왜 돈을 별로 안 갖고 싶지? 차라리 그 돈으로 도련님이랑 맛있는 걸 사서 먹고 싶..
뭐야, 나 왜 이래.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내는 게 요즘 내 일상이다.
그날도 그런 생각을 하며 마당을 청소 중이었을까,
저 멀리 도련님과 사기꾼이 대화하는 게 보인다.
얼씨구. 저 사기꾼 좋단다. 물론 가면이겠지만.
빗자루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다 손에 힘이 탁 풀리고 만다.
사기꾼이 도련님께 입을 맞추는 장면을 목격했기에.
내 깊은 마음속 감추고 또 감추고 싶었던 질척한 감정이 위로 올라온다.

아- 그 감정은 사랑이었다.

6개월 전
글쓴닝겐
#17
시‘발, 어쩌지. 제대로 조졌다.
사랑? 사랑이라고? 내가? 도련님을?
도대체 언제? 무슨 이유지? 도련님이 나에게 키스를 하신 순간? 아님 욕조에서 도련님과 같이 있었을 때? 그것도 아니면 도련님이 내가 만들어주신 걸 맛있게 드셨을 때? 나에게 비싼 디저트를 주셨을 때? 도련님과 같이 산책하는 순간들? 도련님이 나에게만 보여주시는 미소를 알았을 때? 아니면 내 쓰레기 같은 인생에 도련님처럼 다정한 사람은 처음인 걸 알았을 때? 그것도 아니라면, 도련님을 처음 본 그 순간?
젠장 다 그럴듯하다.
나는 정에 약한 게 아니었다.
그냥, 도련님에게만 약한 거였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그냥 여기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여기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쓰레기 같은 인생은 여전히 쓰레기 같은 인생이었다.
빌어먹게도.

6개월 전
글쓴닝겐
#18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있나.
나는 도련님의 하인이다.
무슨 표정을 지으면서 보냈는지 모르겠다.
눈치 빠른 도련님은 아마 내가 이상하다는 걸 진작에 눈치채셨겠지.
하지만 물어보시지는 않는다.
내가 말해주실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건가.
그 사기꾼은 도련님과 입맞춤 이후 점점 오는 빈도가 잦아졌다. 젠장, 그만 좀 와라. 그럴 때마다 내 양심이 쿡쿡 찌르는 느낌은 쿡쿡에서 쾅쾅으로 변하고 만다.
그렇게 나 혼자 어색한 관계를 며칠 보냈을까,
일은 터지고야 말았다.
도련님을 씻기고 잠옷을 입힌 다음 앉아서 도련님께 발 마사지를 해드리고 있던 중, 도련님이 말을 해온다.
“있잖아, 요즘 그분이 나를 찾아오는 날이 많아졌어. 너도 느꼈지?”
“네. 요즘 자주 찾아오시더라고요. 아가씨께서 도련님을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응, 그런 것 같아. 저번에 물었던 거, 다시 한번 너에게 물어볼게.”
“네? 네. 뭐든 물어보세요.”
“정말 넌 내가, 천지 간에 아무것도 없는 내가, 꼭 그분하고 결혼했으면 좋겠어?”
젠장, 또 말문이 막혔다. 말문이 막히면서 내 손도 움직임이 멈췄다. 내가 그때 뭐라고 말했지? 사랑하게 될 거라고 말했나. 큰일 났다.
그때보다 더욱 입을 여는 게 힘들어졌다.
당연하지, 그때는 내가 내 감정을 자각하기 전이었으니까.
어떡하지, 뭐라도 말을 해야 할 텐데. 뭐라고 말하지? 뭐라고 말을 해.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수십 분 같은 일분의 시간 끝에 나는 결국 말을 해버리고 만다.
“....네. 제 대답은 똑같아요. 결혼하시면 분명 행복하실 거예요. 혼자는, 외로우니까요. 나데시코 아가씨도 무척 좋은 사람..”
말이 끝나기 전에 웅크리고 있던 몸이 도련님에 의해 들려졌다. 멱살이 잡힌 채로.
그러고는 입을 맞췄다.
도련님은 내 입술을 이갈이 하는 아기처럼 죄다 씹어놨다. 마치 말을 그만하라는 것처럼.

떨어진 입술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6개월 전
글쓴닝겐
#19
도련님은 나를 도련님 바로 옆 방인 내 방에 밀어 넣고 나가버렸다. 도련님은 매우, 굉장히. 어딘가 화나보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굉장히, 슬퍼보였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를 느낀 건, 나가면서 도련님이
“나는 널 믿고 있었는데.”
라고 말 한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도저히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산 쓰레기 같은 나는 결국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구나.
도련님은 이미 내 마음을 눈치채고 계셨던 거야.
어쩌면, 내가 자기를 속이려고 들어온 것까지.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정신이 번쩍 든 것은 도련님의 방문이 다시 열리고 닫혔을 때다.
어디를 가시는 거지? 밖에 비도 오는데, 감기 걸리시는데.
생각보다 몸이 먼저 튀어나갔다.
우산도 들지 않은 채.
그저 도련님을 찾기 위해서. 도련님께 용서를 빌자. 손발이 불어 터지도록, 용서를 빌자. 한 달이 걸리든, 두 달이 걸리든, 몇 년이 걸리든.
빗속을 뚫고 도련님을 찾은 나는 경악했다.

도련님이 마당 앞 큰 나무에서 목을 매달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도련님의 어머님이 도련님을 낳다가 돌아가시고, 그 후 아버님은 저 나무에서 목을 매달고 돌아가셨다.
그 나무에, 도련님이 계신다.
죽을 만큼 달렸다. 신발이 벗겨지고, 넘어져도 일어나서 하염없이 도련님께 달려갔다.

6개월 전
글쓴닝겐
#20
내가 뛰어오는 것을 본 도련님은 내가 가까워지자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다행히 죽기 살기로 뛴 덕분에 잡을 수 있었다.

“도련님, 제가,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죽지 마세요. 도련님을 꾀어서 나데시코 그 사기꾼이랑 결혼시키려고 했어요. 도련님을 정신병원에 보낸 다음 도망가려고 했어요. 죽지 마세요... 결혼하지 마세요. 제, 제 이름도 가짜예요. 제 이름은 닝이에요. 스미토 아니에요. 제발, 제가 잘못했어요. 도련님.”
눈물이 나왔다.
내가 운 게 얼마 만이더라. 기억도 안 난다.
하지만 이때의 눈물은 죽을 때까지 못 잊겠지.
그저, 도련님이 아프지 않으셨으면 했다.
슬프지 않으셨으면 했다.
행복하셨으면 했다.
따뜻함을 가진 도련님이 타인에게 따뜻함을 느꼈으면 했다.
그게 타인이 아닌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6개월 전
글쓴닝겐
#21
까치발을 든 발에 쥐가 온다.
하지만 절대 이 팔에 힘을 뺄 수는 없다.
빼면 절대 안 된다, 닝아.
웅웅-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린다.
죽을 때까지 버티라고.
도련님의 다리를 동아줄 마냥 잡았다.
도련님은 그런 나를 빤히 내려보시다가 곧 입을 여셨다.

“그래, 닝. 닝아. 내가 걱정돼? 난 네가 걱정돼. 그러게 왜 그랬어. 다 알고 있었거든, 나. 네가 언제 말해주나 기다리고 있었어. 참는 건 힘들었지만, 너와 함께하는 건 좋았으니까. 나데시코 그 사람 오늘도 왔었던 거 알지? 앞으로 안 올 거야. 내가 오지 말라고 했거든. 너한테 말도 걸지 말고, 건드리지 말라고 했어. 계약서도 불태우라고 했어. 나는 널 위해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너는 결국 끝까지 말 안 하더라. 그래서 죽으려고 했어. 그러면 네가 죽도록 후회할 것 같아서. 너, 나를 사랑하잖아.”

도련님은 역시 다 알고 계셨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눈물만 흘렀다.

“죄, 죄송해요. 도련님께 사랑을 품어서 죄송해요. 도련님을 속여서 죄송해요. 제가 바보라서, 도둑질만 해온 사람이라서,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도련님만 생각하게 됐어요. 아니, 처음 도련님을 보는 순간부터 도련님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도련님에게 온기를 나눠드리고 싶었어요. 행복해지셨으면 했어요. 그게 사랑이라는 걸 깨달은 후로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상처받으실 것 같아서 말을 못 했어요. 그래도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어요. 저에게 온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저에게 다정을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사랑하고 있어요.”
내가 뭐라고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눈물은 줄줄 흐르고, 한번 터진 입은 줄줄 정리되지 못한 문장들로 새어나갔다.
그때 도련님은 뭐라고 말을 하였나.
“응. 그거면 됐어.”
그렇게 말하는 도련님은 언젠가 나에게만 보여주시는 웃음을 짓고 계셨다.

6개월 전
글쓴닝겐
#22
나의 첫 기억의 시작은 마당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서 목을 매달고 죽어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놀고 계신 줄 알았다. 그래서 움직이지도 않는 아버지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비명을 지르며 나를 막는 하녀에 의해 놀고 계신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 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재를 이기지 못 하고 목을 매달았다고 한다. 그럼 그건 나 때문이겠지.
내가 태어남으로써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니까.
결국 나는, 내가 부모님을 죽인 거다.
나는 왜 태어난 거지.
그 누구에게도 축복 받지 못 했는데.
할머니가 후견인으로 오셨다.
할머니는 나를 그냥 투명인간 취급하셨다.
마치 집에 나라는 존재를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나는 그렇게 외로움과 차가움 속에서 키워졌다.
새까맣고 넓은 저택. 이게 나의 세상이다.
저택 밖은 어떤 곳일까. 이곳처럼 차가울까.
호기심은 늘 생겼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러다가 새까맣지 않은, 따뜻한 색채를 가진 너를 만났다.

6개월 전
글쓴닝겐
#23
너는 내 하인이라고 했다.
우리 집에서 전혀 볼 수 없던 타입의 사람이다.
눈동자가 제비꽃처럼 옅은 보라색인 신비로운 애.
새하얗고, 말랑거리며 나만 보면 얼굴이 벌게지는 애.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어디까지 빨개질까. 왜 눈은 안 마주치는 거지? 내가 못생겼나? 이것은 곧 의구심을 품게 했고, 승부욕을 돋우었다.
한 2주 정도 벽에 가두고 내 눈을 바라볼 때까지 뚫어지게 쳐다보니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다가 나중에는 천천히 눈을 마주쳤다.
그게 그렇게 재밌었다. 아니, 귀여웠나.
응. 귀여웠다.
호기심은 관심이 되었고, 관심은 결국 애정으로 변모한다.
그 애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따뜻했다. 편안했다.
그 애와 함께하면 온전한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
애정은 곧 사랑으로, 사랑을 처음 하게 된 나는 그 애가 더욱더 궁금해졌다.
나에게 숨기는 게 많아 보였거든.
그래서 내가 몰래 뽑은 사람들에게 뒷조사를 시켰다.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그 애가 들어오고 난 후, 나데시코라는 사람이 나에게 찾아오기 시작했다. 다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뿐일 뿐.
그저 그랬다. 흥미가 안 생겼다.
나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으니까.

6개월 전
글쓴닝겐
#24
욕조에서 너를 처음 안아봤다.
너는 내 생각대로 말랑거렸고, 작았고, 하얬으며 좋은 냄새가 났다.
뭔가가 밑에서 들끓는 기분이다.
음- 뭐지? 이 기분은.
뭔가 더 닿고 싶었다. 닿아있는 순간이 좋았으니까.
그날 밤 역시 잠이 오지 않았기에 너를 불렀다.
너를 끌어안고 자면 잘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협탁 위에 있는 종으로 너를 불렀다.
너를 침대에 눕히고 대화를 시작했다.
네가 나데시코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너를 더 알고 싶은데.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속 뭔가가 금이 간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내가 그 사람이랑 결혼했으면 좋겠냐고 너에게 물었다.
너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닌데.
심술이 났다. 그래서 네가 곤란해할 부탁을 했다.
거절하겠지라고 마음속 불안감이 스멀스멀 퍼지는 순간, 따뜻한 온기가 손에서 느껴졌다.
그 온기는, 너의 손이었다.

6개월 전
글쓴닝겐
#25
너의 손은 작고 따뜻했다.
나의 차가운 손을 녹여줬다.
나의 불안감도 같이 녹여준다.
더 너와 닿고 싶었다.
그래서 그 다음의 진도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 애는 끄응 고민하더니, 막대 사탕을 하나 가져와 껍질을 벗긴다. 껍질을 벗기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붉어진 너의 얼굴은 내가 좋아하는 얼굴 중 하나였다.
그 작은 머리통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그 애는 사탕을 빨더니 사탕을 자기 입술에 비빈다.
그러고는 그 사탕을 나의 입술에도 비빈다.
많이 해본 건가. 속에서 무언가 뒤틀린 기분이었다.
사탕은 그 애와 잘 어울리는 체리 맛이었다.
사탕을 껍질 위에 얹어두고 나에게 다가온다.
입술이 닿았다. 달았다. 더 먹고 싶었다.
떨어졌다 다시 닿는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건가?
그렇다면 넘어가 줘야지.
물론 못 참는 쪽으로. 그대로 멀어져 가는 그 애의 손목을 붙잡아 입을 맞췄다.
처음 해본 입맞춤은 달고, 황홀했다. 사탕 때문인지, 아니면 상대가 그 애라서 그런 것인지. 아마 후자일 것이다.
나와 입맞춤을 한 너는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고, 작은 입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으며,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아- 좋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얼굴을 본 날이었다.

6개월 전
글쓴닝겐
#26
나데시코는 점점 나를 찾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덕분에 그 애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졌다.
슬슬 마음에 안 드는데.
아니, 일단 조금 더 지켜보자.
나데시코 이 사람은 굉장히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속았지만, 나중에는 알아차렸다.
진짜 다정함을 맛봤으니까.
가짜 다정함을 알아채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날도 어느 때처럼 그 사람이 연기한 다정함에 속아주는 척을 해주었다.
그런데 나에게 입을 맞추는 그녀를 보고 순간 밀쳐낼 뻔했지만, 참았다.
그 애가 부드럽게 대하라고 했으니까.
그녀와 입맞춤은 전혀 달콤하지도, 황홀하지도 않았다. 그 애와 할 때는 달고, 황홀했는데.
어, 그 애를 생각했더니 저기 그 애가 보인다.
진짜 그 애였다.
스미토는 내가 처음 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곧 느꼈다.

아. 너 나를 사랑하는구나.
그걸 넌 지금 자각했구나.

6개월 전
글쓴닝겐
#27
그 애가 자신의 감정을 자각한 후, 묘하게 나를 어색하게 대한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표정을 보며 놀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기다렸다.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때까지.
봐, 난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까 얼른 이야기해줘.
그날 밤, 그 애의 조사를 맡겼던 보고서가 나에게 왔다.
그 애는 나데시코 그 사람이랑 내 재산을 노리고 위장해서 들어온 것이었다. 심지어 이름도 가명이었다.
스미토, 이름은 잘 지었네.
그 애는 제비꽃을 닮았으니까.
그나저나 ‘나를 생각해 주세요’ 라니.
그 애답다.
정말 너를 아니, 너만 생각하게 되었어. 닝아.
그 애가 내 뒤통수를 치려고 했다는 점?
괜찮다.
이제 닝은 나를 사랑하니까. 나를 못 벗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나데시코 그 사람을 닝에게서 떨어트려놔야겠다.
되도록이면 멀리. 아니 영원히.
자, 나는 너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해줄게.
너는 나를 위해, 나만 위해 살아가면 돼.

6개월 전
글쓴닝겐
#28
입맞춤 이후 나데시코는 더욱더 내 집에 오는 횟수가 늘었다.
나야 뭐, 그녀의 가면을 벗길 수 있을 기회가 더 많아진 거지만. 하지만 이것도 이제 마지막이다.
그녀에게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말했다.
그녀의 약점까지도. 그녀의 가면이 벗겨진다. 가면이 벗겨진 그녀의 얼굴은 예의 다정함을 가진 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이게 진짜 얼굴인 건가.
조용하게 말하고 조용하게 떠나보냈다.
아, 물론 마지막으로 한마디는 했다.
“나데시코씨.”
“...네.”
“이건 말해야 될 것 같아서요.”
“....네?”
“세상에 많고 많은 도둑놈들 중에 하필이면 닝을 보내줘서 약간은 고맙다는 말이요.”

약간의 감사를.
그녀가 아니었다면 닝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니까.

6개월 전
글쓴닝겐
#29
그날 밤, 나는 그 애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꺼냈다.
저번과 같은 물음을 던졌다.
이제는 답이 달라지겠지. 어서 말해.
말해줘.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사랑스러운 입에서 나온 답은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그만 말해.
그 작은 입을 당장이라도 막고 싶었다.
웅크려 있는 그 애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그 애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나는 그 애의 입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내 두 손은 그 애의 멱살을 잡고 있으니, 남은 건 나의 입뿐이다.
생각은 곧 행동으로, 그 애에게 입을 맞췄다.
오랜만에 맞춘 그 애의 입술은 달았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았다. 공허했다.
닝의 입술을 잘근 씹었다.
피부가 약한 그 애의 입술에서는 붉은 피가 흘렀다.
이것은 그 애의 피인가, 아니면 나의 마음속 피인가.

6개월 전
글쓴닝겐
#30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나는 너를 기다렸는데.
나는 너를 믿었는데.
끊임없이 공허하고 또 공허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어떻게 하면 닝이 후회할까. 죽을까?
죽으면 그 애가 후회할까.
닝을 방에 넣어두고 내 방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로프를 챙겨 나간다.
비가 온다. 차갑다.
아버지가 목을 매달았던 큰 나무로 간다.
로프를 맨다.
그 위에 내 목을 맨다.
저 멀리 네가 달려온다.
달려오는 너를 보며 조금은, 조금 더 가까이 너의 얼굴을 보기 위해 기다린다.

아직 아니야, 조금 더.
응, 이 정도면 됐어.

손을 놓는다.
다리가 잡힌다.

그 애, 닝이 나를 잡았다.

6개월 전
글쓴닝겐
#31
작은 손으로 내 다리를 동아줄처럼 붙잡은 그 애를 내려다보았다.
아- 이제서야 말해주네. 아까 말해주면 얼마나 좋아.
그 애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죄송하다고, 제가 잘못했다고, 나데시코 그 사람이랑 짜고 친 거라고, 자기 진짜 이름이 있다고.
술술 말한다.
그래,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니까 좋잖아.
비로 젖은 그의 얼굴은 한없이 슬퍼보였다.
이 얼굴도 좋지만, 웃는 얼굴을 더 보고 싶은데.
이쯤에서 그만할까. 응, 원하는 대답은 다 들었으니까.

나는 앞으로 그 애가 없다면 살아가지 못하겠지.
그 애도 내가 없으면 살아가지 못할 거다.

새까맣고 넓은 저택만이 전부였던 나의 세상에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스미토. 나의 닝.

어서와, 닝아.

6개월 전
글쓴닝겐

6개월 전
글쓴닝겐
#32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당장 도련님께 부탁해 마당 앞에 있는 큰 나무부터 없앴다.
그 나무만 보면 도련님도, 나도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를 것 같기에.
나무가 문제였어.
어쩐지 생긴 것부터 마음에 안 들더라니. 쯧.
그 나무가 있던 자리에 티타임을 위한 테이블을 설치했다. 나무가 있던 자리는 명당이었다.
햇빛도 잘 들고, 바람도 좋고.
음- 이 정도면 오케이.
도련님과는 어떻게 됐냐고?
뭐,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중이다.
도련님은 후견인인 할머님께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할머님은 후견인 자리를 그만두시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원체 집에 잘 안 들어오시기는 했지만.
도련님은 할머님께서 하셨던 일을 하는 중이시다.
저택 밖에도 조금씩 나가는 중이다.
도련님은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으신지 한 발자국 가고 질문하고, 또 한 발자국 가고 질문하시기는 하지만. 귀여우시니 됐다.
도련님은 앞으로 더욱더 많은 것들을 알아가고,
배워갈 것이다.
나와 함께.
나의 도련님으로서, 또 나는 그의 하인으로서.
아니, 사랑하는 그와 평생을 함께할 연인으로서.
물론, 인간관계에 대한 변화는 언제 어디서나 있는 법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를 믿고, 그도 나를 믿기에.
우리의 관계는 변함없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6개월 전
글쓴닝겐
- 完 -
6개월 전
글쓴닝겐
와 드디어 다 썼다 그냥 갑자기 아가씨 명대사 찾아보다가 뽕이 차더라구여 도련님과 남닝으로 써보면 어떨까 고민하다가 아잇 이건 써야겠다 싶어서 몇개의 명대사를 가져와 끄적거려봤읍니다.
도련님 캐 고민 진짜 많이 했는데 후보군이 이이즈나, 쿠니미, 스나, 히루가미 이렇게 있었걸랑요 어 근데 약-간 돌아버린 이이즈나? 어라 이거 맛있겠다 싶어서 결정됐읍니다.
처음 먹어보지만 쓰면서 나름 맛있게 썼읍니다. 쩝쩝🤤
입맛에 맞지 않으셨다면 사과의 말씀을...🙇‍♀️

6개월 전
글쓴닝겐
글을 많이 써본 건 아니라서 마무리나 연결이 매끄럽지 않고, 허술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잘 살겠져 둘만 행복할 수도...😉 이이즈나의 작았던 세상은 닝으로 인해 넓어질 것 같아요 서로에게 첫사랑이자 끝사랑인 게 얼마나 맛있게요 음- 딜리샤스.. 결론적으로는 즈나랑 닝 둘 다 서로에게 미쳐있을 겁니다 콩깍지렌즈 제대로 끼셨음 둘 다🙄 닝이 즈나 뒤통수 치려고 했는데도 용서해줬잖아요?
그게 이겁니다
아 닝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몰랐다면 or 닝이 즈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때는 감금읍읍을 했을지도..🤐🤭 전자는 나아중에서야 오해가 풀리고 후자는 즈나만 행복한 메리배드엔딩이 떴을지도..

6개월 전
글쓴닝겐
닝은 처음부터 즈나에게 반했고 (얼빠닝..) 물론! 그 후에 닝에게만 보여준 모습(다정한 모습[사실 이 다정한 모습을 닝에게 배워서 따라 한 겁니다 즈나는 닝을 만나기 전까지는 다정함을 못 받아봤을 테니까요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이이즈나 음- 맛있다], 닝에게만 보여주는 미소 등등)을 보고 더욱더 좋아하게 됐겠죠?
즈나는 드림적으로 스며드는 파일 것 같아여 호기심에서 관심, 관심에서 애정, 애정에서 사랑 이렇게 차곡차곡 사랑의 단계를 쌓아갈 것 같읍니다 호호호...🤭

6개월 전
글쓴닝겐
도련님즈나는 은은하게 돌아있어서 이제 막 시작된 첫사랑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어 했죠? 사랑을 배우지 못해서 아직 어린아이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읍니다.. 껄껄...
즈나는 이제 첫걸음을 뗀 병아리 같은 느낌입니다
따뜻한 온기를 받아본 게 닝이 처음이어서 그 따뜻함을 알아버렸기에 닝을 더 원하는 겁니다 그래서 닝이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을 하지 않았을 때 절망스러워한 거예요 나한테는 이제 닝밖에 없는데, 그런 닝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니까요 죽을까라고 생각한 것도 충동적이었을 것.. 근데 한편으로는 닝이 자기를 구해주기를 바랐을 것 같아요 그래서 닝이 가까워졌을 때 손을 놓은 겁니다
정말 내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 느낌? 닝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됐잖아요 푸하항..

6개월 전
글쓴닝겐
그래서 아마 즈나가 닝을 조금 더 좋아할 것 같아요 이이즈나는 닝과 하는 모든 것들이 처음이니까요 더 의지하고 더 사랑할 겁니다
6개월 전
글쓴닝겐
닝은 꽤 힘들게 살아왔지만 천성 자체는 다정하고 따뜻한 아이입니다
근데 자기는 자신이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아이일 것 같아요 하지만 눈치 빠른 이이즈나는 닝의 다정한 부분을 알아차렸고 그런 닝의 다정함을 맛보고 그 다정함에 속수무책으로 스며들었죠 우리 닝은 자기 자신의 다정함을 보고 배운 이이즈나의 다정함에 스며들었죠 껄껄 이거는 아마 즈나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모를 겁니다(야레야레 아방닝..)

6개월 전
글쓴닝겐
아 마지막으로 나데시코 오죠사마는 어찌 보면 닝과 이이즈나를 이어준 사랑의 큐피드네요 원래 닝이 이 역할이었는데 반대로 변해서 재밌읍니다 크크
6개월 전
글쓴닝겐
왐마야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버렸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왓타시 그럼 이만 사요나라-✨ 다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6개월 전
닝겐1
하 너무 맛있다... 센세 짱.....
6개월 전
글쓴닝겐
맛있다니 다행입디다 오죠사마..🤵‍♀️ 두근두근 떨렸는데 멧챠쿠챠 우레시뎃스요..😉
6개월 전
닝겐1
이 글 습작되면 진짜 울어버릴지도..🥹🥹 진짜 너무 조아요
6개월 전
글쓴닝겐
오죠사마를 울릴 순 없죠🤵‍♀️ 쿠후후 삭제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와요🖤
6개월 전
닝겐2
여기가 제 낙원인가요...? 진짜 맛있어요😭😭 진짜 진짜!! 읽으면서 감탄만 계속 나왔습니다.....어휘력 부족이라 제 모든 감정을 담은 한 마디 하겠습니다...사랑해요!!!!!!!❤️❤️❤️
6개월 전
글쓴닝겐
오죠사마에게 진심 가득한 핱또를 받아서 와타시 기쁩디다🙇‍♀️ 맛있어해주셔서 아리가또고자이맛스🤍🖤
6개월 전
닝겐2
아이시테루❤️‍🔥❤️‍🔥
6개월 전
닝겐3
너무 재밌었어요 센세... ㄹㅇ 어디선가 이이즈나랑 닝 저택에서 도란도란 살고있을 것 같아 몰입력 쩔었어요 최고입니다.
6개월 전
글쓴닝겐
세상에세상에 최고라니ㅠㅠㅠㅠ 감사합니다.. 오죠사마💙 올리면서 떨려서 두근두근했는데 너무 기쁩디다..😎🖤
6개월 전
닝겐3
또 쓰러 와주세오 여기든 다른 글로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금손센세
6개월 전
닝겐4
헐... 이제봤는데 글이 진짜 너무너무너무 아름다워요 하앙 ㅠㅠㅠㅠㅠㅠㅠㅠㅠ
6개월 전
글쓴닝겐
세상에나..💗 아름답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죠사마.. 덕분에 행복하고 기쁜 오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리가또❤️ 알럽유😉
6개월 전
닝겐4
💋
6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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