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너무 싫고 집구석에서 컴퓨터 게임하면서 담배 피면서 이래라 저래라 가부장적인 모습만 보이고 싫은 소리 좀 하면 손부터 올리고 욕은 기본인 꼴이 너무 싫어서 18살 때 걍 집 나와서 자퇴하고 쉼터 들어가서 검고 따서 알바 하다가 좋은 분 만나서 직장 다니고 있음
이 직장 7년째임. 4년째 다닐 때 너무 힘들고 외로운 거야.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고 어디 기댈 곳이 너무 필요해서 집에 연락하니 코로나 때여서 유일한 수입인 할머니 일자리가 없어져서 돈이 아예 없대. 관리비도 못 내고 있고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다고 해서 300만원 보내 드리고 다시 연락 끊었어.
그러다가 6년째 다닐 때 또 힘들고 외롭고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집으로 갔어. 이때는 아빠가 일을 하고 계시더라고. 그 모습이 신기했어. 몇개월 안 됐다는 말에 조만간 그만 두겠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딱 1년 채우더라.
1년 채우고 족저근막염이라서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다. 자기가 준비하는 사업 내년에 잘 될 거니까 1년만 딱 달에 100만원씩 주면 사업 되자마자 바로 갚겠다. 이 소리 하는 거야. 못 받을 거 알고 줬어. 불쌍했거든. 나이 60 가까이 먹고 타이어 던지고 나르고 배달하고 온 몸은 상처 투성이에 매일 힘들어하고 너무 힘들어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 모습이 불쌍했었어.
한 두 달 동안은 사람처럼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자고 산책도 하고 여느 다를 거 없는 사람처럼 굴더니 점점 다시 괴물이 되어가는 거야. 안 씻고 안 나가고 폐인처럼 게임만 하고. 그러다가 9개월째 됐을 때 내가 생활비 명목으로 드리는 100만원이 온전히 대출금과 카드값을 내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
(신용카드가 있는데 아빠 막내 동생 카드야. 막내 동생 신용이 박살이 아니라 개박살이 났어. 리볼빙으로 매달 20~40만원씩만 내고 있었고 대출금은 집담보라 꾸역꾸역 내고 있더라.)
밤 11시에 막 잠들었을 때 전화해서 게임 아이디 좀 찾아달라고 난리였어. 그 게임 아이디를 내가 어떻게 찾냐니까 고객센터에 연락 좀 해달라고 욕 하고 난리도 아니였거든. 파블로프의 개는 종소리에 반응하잖아? 나는 아빠의 ㅆ@@발 소리에 반응하더라. 그 소리에 겁먹어서 머저리처럼 시키는대로 해줬지. 그리고 집으로 오라고 해서 퇴근하고 집으로 갔어.
나 그날 진짜 죽어야 하나. 내가 죽어야 끝나나 싶더라.
안 사고 안 먹고 안 놀고 안 쓰고 꾸역꾸역 100만원 드린 건데. 나 20대 중후반인데. 한창 예쁘고 꾸밀 나인데. 놀러 다닐 나인데. 내 청춘이나 다름 없는 돈으로 게임에 현질하고 게임 아이디를 샀던 거였어. 나중에 안 사실인데 아빠가 막내 동생 신용카드로 게임에 현질 종종 했었는데 내가 100만원 드리기 시작한 뒤로부터는 그런 적 없었대. 고로 내가 드리는 돈으로 그러고 있던 거야. 내야 하는 카드값은 편법으로 안 내면서.
말이 100만원이지 어느 달에는 150, 어느 달에는 120 어느 달에는 160 이렇게 드렸어. 1년 동안 1600나갔더라. 1600.. 참.. 그 돈이면 뭘 할 수 있었을까.
매일 아침 사람들에게 치이는 지하철과 버스를 타지 않을 수 있었을 거고, 후줄근한 옷이 아닌 나도 예쁘고 좋은 옷을 입을 수 있을 거고, 싸구려 화장품 아끼지 않아도 됐을 거고, 해외 여행 또는 국내 여행을 갔을 수도 있을 거고, 너무 힘들고 괴로운 날에는 걷는 게 아니라 택시를 탔을 수도 있을 거고, 편의점 삼각김밥이 아니라 흔히들 시켜 먹는 마라탕 치킨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나를 갈아내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딱 1년 채우고 손 뗐어. 내가 돈 드릴 때는 내 말에 욕은 했어도 덜 했고, 할머니에게 폭언 또한 많이 줄었었어. 근데 돈 안 드리니까 다시 시작된 욕과 폭언에 허탈하더라 그래서 할머니만 밖에서 만나는 걸 택했어. 작은 아버지도 신용카드를 없앴고. 그러니 이제 일을 하시더라. 힘들어서 못 하겠다던 타이어 회사 일을.
할머니한테 전화 왔는데 7월 1일부터 다시 일을 한대. 끝나고 오면 휘청휘청거리고 아프다고 난리래. 죽을려고 한대. 그 말에 지금 되게 심란해서 잠이 안와. 이걸 외면하자니 마음이 너무 불편해. 내가 다른 아버지들은 어떤지 몰라서, 다른 딸들은 아버지가 육체적으로 힘들 때 무엇을 해주는지 몰라서 그런 거 같아. 왜냐면 내가 어렷을 때 우리 아빠는 폐인처럼 집에서 게임하면서 담배나 펴댔거든. 이걸 외면해야 하는 게 맞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자꾸만.. 나만 희생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싶어.
나 욕 좀 해주라 착한 아이 콤플렉스인가 싶어 진짜 미친 것 같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