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최연소 간부조임. 지하도시 출신이지만 능력이 뛰어나고 성격도 좋아서, 조사병단에 들어와 쭉쭉 올라감. 결국 분대장까지 맡게 됨. 오늘은 다름이 아닌, 분대를 맡고 난 다음 처음으로 나가는 벽외조사의 전날이었음.
장장 수십 번을 참여한 벽외조사지만,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내 지시를 따르는 직속 분대가 생긴다는 건 사실 엄청난 압박이었음.
중요한 날 전날에 술을 마실 수도 없고.
새벽이 다 되어 가는데도 잠을 설친 너는, 결국 지하도시 시절 몰래 꿍쳐놨던 담배를 가지고 옥상으로 올라갔음.
훈련하는 병단 내에서 피는 건 규율 위반인 건 알지만, 답답하고 불안해서 충동적으로 행동한 거.
1. 에렌
너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음. 오랜만이라 그런가 불이 잘 붙지 않았음.
약간 인상을 찡그린 채로 라이터를 재차 손으로 만지고 있는데,
옥상 계단에서 얼굴 하나가 빼꼼 하고 보였음.
".. 분대장님?"
에렌이었음. 가끔 급발진 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104기 중에서 가장 싹싹해서 예쁨을 받았음. 너희 반은 아니었지만 너도 잘 따랐고.
얼굴을 확인한 너는 안심해 한숨을 짧게 쉬었음. 너에게 뭐라 할 짬은 안되니까.
에렌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네게 다가왔음.
"왜 안 주무시고..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없어. 에렌, 넌 이 시간에 안 자고 뭐 해?"
"..저도 그냥 잠이 안 와서요. 하하."
넌 이왕 들킨 거 마저 피고 내려가려고 여전히 담배는 입에 문 채로 라이터를 만지작거렸음.
에렌은 너의 눈치를 보더니 말했음.
"도와드릴까요?"
"어?"
너가 제대로 대답할 새도 없이, 에렌은 너의 손에서 라이터를 가져갔음.
그리고 한쪽 손으로 바람을 막고, 나머지 한쪽 손으로는 불을 붙여주었음.
니가 계속 만져도 구식이라 잘 안 되던 라이터엔 한번에 불이 붙었음.
"아, 고마워. 후배 앞에서 잘하는 짓은 아닌데.. 그냥, 좀 심난해서."
에렌은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너를 말없이 무표정으로 빤히 내려다봄.
".. 그럴 수도 있죠."
"응?"
에렌의 청록빛 도는 회안이 달빛을 받아 반짝 빛났음.
"선배님도 사람인데, 힘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있잖아요. 고민도 되고 힘든데,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그런 때."
"으흠~"
어설픈 위로보다 담담하고 솔직한 에렌의 말이 더 와닿았음.
그나저나 아직 애 같은 에렌에게도, 아 애 맞지. 아무튼.
무언가의 고뇌가 있구나 싶었음.
아무튼 너는 그런 에렌이 고마워 싱긋 웃어보였음. 고마워, 하면서 손을 올려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었고.
"내려가자."
너의 뒤를 따라가는 에렌의 귀끝이 살짝 붉은 건 못 본채로.
2.리바이
대충 잘 때 입는 옷만 걸치고 나온 너는 생각보다 추운 새벽 공기에 덜덜 떨면서 담배곽에서 한 개비를 꺼내 물어 불을 붙였음.
딱 한 번 흡입하고 연기를 내뿜는 찰나였음.
"어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스산한 기운과 서늘한 목소리에, 너는 소스라치게 놀람.
리바이 병장이었음.
분단장을 맡기 전까지 널 전담해서 가르쳐준, 사실상 너의 맞선임.
사복에 망토만 가볍게 걸친 차림의 리바이는 팔짱을 끼고 헛웃음을 지으며 널 보고 있었음. 리바이의 머리카락과 망토가 새벽 바람에 살랑였음. 그리고 그의 눈썹도 함께 꿈틀거렸음.
"뭐하냐? 지금."
"벼, 병장님. 이건..."
너는 서둘러 담뱃불을 비벼 껐지만, 이미 크게 내뿜어버린 연기는 뭉게뭉게 퍼져 바람을 타곤 리바이 쪽까지 가버렸음.
리바이의 미간에 구김이 가는 게 육안으로 보였음.
"....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이런 게 뭐가 좋다고, 대체."
리바이는 뭔가 심경이 복잡해 보였음.
병장님도 지하 도시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그 시절을 생각하시는 건가? 너는 유추할 뿐이었음.
"어이. 계속 그러고 있을거냐."
"아.. 아니요!"
팔짱을 낀 리바이의 눈치를 보며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던 너가 화들짝 놀라 후다닥 움직였음. 그런 너를 보며 혀를 차던 리바이가 이내 급하게 옥상을 내려가려는 네 뒤에 나직히 내뱉었음.
"앞으로 이게 피고 싶을 땐."
"네, 네넵?"
"나한테 말해라."
너는 뒤를 돌아 리바이를 바라봤음. 리바이는 그저 너를 응시하고 있었음.
".. 대신에 홍차라던가, 타 줄테니."
"....!"
너는 놀라서 리바이를 바라봤음.
"아니면 잡생각 나지 않게 청소도 좋지."
"..윽...."
리바이의 눈이 무섭게 반짝였음. 아무래도 규율을 어긴 것에 대한 벌은, 무자비한 개인 청소가 될 것 같았음. 몇 년동안 교육받은 자의 육감이랄까.. 너는 울상을 지었음.
펄럭.
너의 어깨엔 어느새 리바이의 망토가 둘러졌음. 찬 새벽 공기 사이로 병장님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았음. 오이비누 향.
볼과 손끝이 추워서 어느샌가 빨개졌던 너였음.
"얼른 들어가라. 내일 또 늦게 나오지 말고."
"옙...."
차가운 손이 뒤에서 머리를 아프지 않게 쿡 눌렀음. 틱틱거리는 말투와는 달리 병장님은 전혀 화가 나 보이진 않았음. 오히려 뭔가 안쓰러워하는 표정이었음.
기분 탓이겠지, 생각한 너는 서둘러 옥상을 내려갔음.
그리고 그런 너의 뒷모습을 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리바이가 있었음.
"성가신 바보 같으니."
너는 듣지 못한 그의 말은 새벽 공기에 흩어졌음.
3.엘빈
너는 텅 빈 눈으로 밤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음.
죽은 동료들의 얼굴도 하나 둘 스쳐 지나갔고,
혹여나 자신의 반 동료들이 죽게 되는 것은 더욱 상상하기 싫었음.
너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냈음.
그 때, 뒤에 큰 그림자가 검게 드리웠음.
깜짝 놀란 너는 뒤를 돌아봤음.
".... ()?"
엘빈 단장이었음.
까칠한 리바이 병장보다 네가 평소에 더 무서워하는.
뭔가, 틈이 없다고 해야 하나. 너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음. 손에 든 담배를 숨기지도 못한 채.
"다, 단장님."
엘빈의 시선이 점점 내려가 너의 손에 닿았음.
"이, 이건. 엇..."
엘빈은 말 없이 너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니가 들고 있던 담배를 가져가 그대로 입에 물었음.
그리고 네 쪽으로 고개를 숙였음.
너는 잠시 주저하다 엘빈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음.
엘빈과 너는 키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라, 네게 맞춰 고개를 숙인 엘빈 얼굴이 가까워졌다 다시 멀어졌음.
엘빈의 입에서 연기가 빠져나왔음. 너는 엘빈의 눈치를 봤음.
"아, 괜찮다. ()."
의외의 말이었음.
".. 가끔은 이런 게 도움이 될 때도 있으니까."
"하하..."
단장님도 원래 담배를 피셨던가? 너는 물어보려다 이내 입을 다뭄. 평소에 자기의 속을 잘 털어놓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그저 너도 조용히 옆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음. 연기를 내뿜으며 슬쩍 옆을 바라보다 엘빈과 시선이 마주쳤음.
"그래도 이건 규율 위반이니, 다음부턴 자제해 주겠나?"
"콜록, 넵. 당연하죠! 콜록."
눈은 무표정에 입만 웃고 있는 엘빈을 보고 넌 기침을 했음. 엘빈은 그런 너에게 바로 손수건을 내밈. 너는 민망한 얼굴로 손수건을 받아들음.
"이번엔 봐주겠네. 나도 어겼으니.^^"
"하...하 감사합니다."
단장님이 하는 농담은 농담 같지가 않다.
너는 애써 웃으며 연기가 갈까봐 반대쪽으로 등을 돌렸음.
그래서 엘빈이 시선을 돌려 너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몰랐음.
"날이 추워. 얼른 들어가도록."
널 향해 싱긋 웃은 엘빈이 먼저 옥상을 내려갔음.
너는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의 넓은 등을 바라봤음.
오늘따라 원래도 큰 그의 등판이 유독 커 보였음. 조사병단을 이끄는 자의 등.
크고 넓지만, 오늘따라 쓸쓸해 보이는 그 뒷모습을.
-
tmi 모음.
1. 에렌은 자신이 아직 성인이 아니라 같이 피지 못해 내심 아쉬워 했음. 너의 붉은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담배 연기를 보다, 혼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음.
2. 리바이가 떠올린 건 지하도시 시절 골초였던 케니와, 종종 피던 팔런이었음. 물론 리바이도 펴 본 적이 있으나, 냄새부터가 취향에 맞지 않았음.
- '이런 걸 왜 피는 거냐, 팔런?'
'후훗, 남자의 고뇌랄까.. '
'집어 치워라. 그럴 시간에 청소를 -' - ..
3. 엘빈은 병단 밖에서 피울 일이 생기거나, 상관에게 권유받는다면 망설임 없이 피는 정도. 병단 내에선 피울 일도, 시간도 없어 피우지 않는 것.
엘빈은 눈치를 보는 ()의 모습이 조금 귀엽다고 생각함. 그래서 이번엔 봐주기로 마음먹으며 같이 피운 것.
추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