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한강의 수상 소식에 "감사하다는 말 뿐, 할 말이 없네요"라며 "세상에, 4·3과 5·18을 세계적으로 알리시고, 이렇게 큰 상을 받으시고 그런 것이 너무나 참말로 감사혀요"라고 전했다.
그는 아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김씨는 "우리 재학이의 죽음도 '헛된 죽음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믄 마음이 즐거웁지만은, 보고 싶은 마음은 날마다 들어요"라며 "하루도 잊어븐 날이 없어요. '니가 고등학생 때 이렇게 세상을 버리고 가는데 인자 키가 얼마나 컸냐. 나이는 몇 살 먹었냐' 그런 생각을 하루도 안 쉬고 해요"라고 되뇌었다
▲ 시신 속 아들 모습 가리키는 김길자씨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에 의해 전남도청에서 사망한 '고등학생 시민군' 고 문재학(당시 16세, 광주상고 1)씨 어머니 김길자씨가 시신들 사진 속에서 아들의 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2019.5.13. |
ⓒ 권우성 |
"참말로 우리 재학이 데리러 도청을 두 번이나 갔는디 지가 뭣인가 하겠다고 집에를 안 오고 그때 당시에는 내가 집에 못 데꼬 온 것이 너무나 죄책감이 들고 후회했는디,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 우리 재학이가 훌륭하게 했다는 생각 밖에 안 들어요. 재학이가 내 자식이지만은 친구를 위해서 싸우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고 그랬다는 것이 너무나 대견하다고 생각해요.
많이 보고 싶지. 많이 보고 싶고. 우리 나이로 육십하나, 환갑인디. 보고 싶다는 것은 어따 대고 말할 수가 없죠잉. 그러지마는 '니가 이렇게 훌륭한 일을 했으니 엄마는 그걸로 위안 삼고 너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를 엄마가 또 투쟁할란다'고 생각만 해요.
자식이 아니었드라믄 이렇게까지 생각이 안 나지요잉. 내가 친정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그랬지만은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이 안 나대요. 그란디 우리 재학이는 날마다 생각이 나고 꿈에라도 한 번 봤으면 쓰겄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그런데 꿈에도 안 보여."
김씨는 〈소년이 온다>를 각국의 언어로 읽을 전세계 독자들에게 "우리 재학이, 재학이 뿐만 아니라 5·18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거 아니여. 그랑께 그 소설책을 잘 읽어서 한국에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거를 와서 좀 보시믄 좋겄네요"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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