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낯설다고 생각했는데 어색하게 웃는 너를 보니 여전히 다정하구나 싶었다. "나 없이 어떻게 살았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장난스레 물어오는 네게, 나도 짓궂게 대답했다. "나야 뭐, 땅치고 후회했지. 네가 보고 싶었거든." 그제야 입을 다무는 후타쿠치를 보며, 우리가 헤어진 5년 전 그 날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너는 미안하면 말이 없어지지. 마음이 약해서 바보같이. "장난인데." "...알아."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흐트러진 목도리를 정리해주었다. "머리, 많이 길었네." "응. 계속 길렀어."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집요하게 눈을 맞췄다. 물론 그는 열심히 눈을 피했지만. "보통은 실연당하면 머리 자르지 않냐?" "난 보통이 아니니까." 당당한 나의 대답에 말문이 막힌듯 그가 실소했다. "그렇지." 그제야 후타쿠치는 나의 눈을 제대로 바라봐주었다. "그때처럼 여유있는 연애는 못 해." "괜찮아. 마찬가지니까." 내가 그의 손을 붙잡자, 뜨거운 온기가 느껴졌다. 후타쿠치가 차가워진 나의 손을 자신의 코트 주머니 속으로 끌어당겼다. "핫팩있네." "어, 네 거야." "애초에 놔줄 생각도 없었구만, 뭘." 작게 코웃음치자, 그가 삐딱하게 선 나를 꽉 껴안는다. "당연한거잖아. 어떻게 다시 만났는데."
2. 쿠니미
새로 이사한 날, 옆집 남자가 구남친인 확률. "솔직히 뻔하다, 이 전개." 눈 하나 깜짝 않고 나를 열받게 만드는 목소리, 지루해보이는 저 눈빛.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다. 100%. 태초부터 신보다는 확률을 믿었다. "아키라." 아주 오랜만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때는 지겹도록 달고 살던 세 글자인데. "어색한 사이에 이름은 좀 그렇지 않아?" 그는 불편한 듯 현관에 기대어 투덜댔다. "아, 미안. 쿠니미..." 그는 왠지 더 못마땅해 보이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왜 하필 여기야?" 그의 질문에는 가시가 있다. 모든 게 지겹다며 그와, 모든 추억이 담긴 이 마을을 떠나버릴 땐 언제고. 왜 다시 돌아왔냐고 묻는거다. "아무래도, 익숙한 곳이 좋지." "그게 다야?" "미안해..?" "설마." 쿠니미가 자신의 왼손을 들어보이자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보였다. "억울해서 사과로는 보상이 안되거든." 그러니까 나는 들어야겠어. 여기로 왜 돌아왔는지. 쿠니미가 되려 눈빛을 부드럽게 바꾼 채 나를 바라본다. 네가 내 곁으로 온 이유를 말해봐. 나는 별 다른 변명도 하지 못한 채 그의 미움과 사랑을 동시에 목도한다. 죽일듯한 원망과 간절한 애정을 담아 뻔뻔스레 너는 내게 대답을 종용한다. 티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손끝이 떨리는 너를 보며 나는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속죄하듯 고백했다. "그리웠어." "그리고?" 염치없는 나 자신이 미칠듯이 부끄러워졌다. "..." 내가 머뭇거리자 그가 나의 뺨을 가볍게 문지른다. "말해." 왜인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보고싶었어." "..." "미안해." 한참 말이 없던 쿠니미가 제 손의 반지를 빼 내 손에 끼우며 말했다. " 두 번은 없어." 용서해주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라, 놓아주지 않겠다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