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초중반을 구급차 의료진으로 보냈어.
응급구조사 라는 직업인데, 대학 졸업 후 바로 일했었어.
코로나때는 우주복 입고 환자들 옮기다가 코로나 감염되서 격리도 해보고, 1년동안 친구들 가족들 못만나고 혼자 고립되서 살았었던 기억.
생후 2달된 아이가 결국 숨을 거두었을때, 카트에 싣고 이동해야하는데 혹여 다칠까 내가 안고 차 까지 이동했을때 그 10분. 팔이 떨어져 나갈정도로 무거웠는데 그 온기가 따듯해서 그냥 안고 이동했어... 피가 다 아래로 가라앉아 얼굴과 몸이 창백한 아이를 보는데 세상에 너무 이쁘게생겼더라. 그래서 너무 슬펐어.산모님 눈이 많이 부으셨는데 어떠한 위로도 건내지 못한채 울음을 참으려 허벅지를 꼬집던 기억. 강인해야 하거든.
희귀병 환자로 요양병원에 오래계시다가 악화되어 우리 차를 타고 따님이랑 새벽에 대학병원으로 가다가 차에서 사망직전이 되었을때, 따님이 연명치료 원하지않는다 하여 호흡장치 추가로 하지않고 운명하는 순간을 지켜봤을때. 무기력함과 따님의 포기한듯한 눈빛.
대학병원에 암투병환자로 계시다가 아주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환자시체를 옮긴일. 표정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가슴이 먹먹했던 일.
가족이 아무도 없는 무연고자분들, 종로 쪽방촌에 다리도 못뻗는 공간에서 지내시던 80대 노인분. 다리를 사용하지못하고 소변도 방에다 보시는데 주인분의 욕설과 돌아오지말고 제발 나가라는 성화를 들으시며 소변냄새 가득한 방안에 다시 데려다 드렸던 기억 .
인생은 왜 이리 슬픈지. 벌써 3년전 일인데 생생해서 써봐. 지금은 그 두려움에 이직했지만, 내손을 거쳐간 환자분들 다 행복하시길 바라. 정신이 아프셔서 일상생활 불가능한 그분들도 하루빨리 쾌차하시어 웃고계시길. !
- 그 모든 두려움에 의료직 포기한 나쁜 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