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쪽 학과가 취업이 잘 된다는 건 무사히 4년 동안의 커리큘럼을 따라가면서 기본 스펙을 잘 쌓아올렸을 때의 이야기야... 물리, 수학 못하는 머리면 수업자료 하나 이해하는 데에도 시간 무지하게 때려넣어야 하는데 다음 수업까지 내용 숙지 못하면 당연히 그 뒷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고 나 혼자만 진도 계속 뒤쳐짐... 그 와중에 과제는 매주 출제되고 시험공부는 또 따로 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나질 않아...
중고등학교랑 다르게 내가 이해할 때까지 붙잡고 설명해주는 과외쌤, 학원쌤도 없지 공부 잘하는 친구한테 풀이 물어볼 수야 있지만 친구도 친구의 할 일이 있는지라 무한대로 시간 뺏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은 외국인(주로 인도인)이 올려놓은 한글자막 없는 강의 찾아가면서 어찌어찌 혼자 해결해야 하고
수업도 제대로 못 따라가는데 공모전이나 프로젝트같은 대외활동은 준비할 시간은 당연히 내기 어렵지... 근데 와중에 또 잘 하는 애들은 학점 다 챙기면서 이것까지 참여하고 있어서 내가 이 길을 제대로 온 게 맞나 싶은 심리적 압박도 엄청나게 들고
다른 길로 틀기에는 지금까지 버텨온 시간이 아깝고 이 전공을 버렸을 때의 디메리트에 겁이 나서 결국 꾸역꾸역 졸업까지 버티면 남는 건 애매하거나 좋지 못한 학점과 졸업장 뿐... 언급했다시피 수업 내용만 쫓기에도 급급한데 대외활동에 힘 쓸 여력 없었기 때문에 딱히 다른 스펙도 없음
물론 적성 안 맞고 머리 안 따라가도 이 악물고 남들만큼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해. 근데 남들 자는 시간보다 훨씬 적게 눈 붙이고 남들 몇배씩 공부하는 데에 현타를 느끼지 않을 딴딴한 멘탈이 필요한 데다가 적성 안 맞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데도 졸업 후에 평생 이 일을 이어서 하겠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 정말 흔치 않아...
게다가 전망? 바뀌는 거 진짜 한순간임. 내가 입학할 때는 초신성이었던 분야가 어느순간 차갑게 식은 돌덩이가 되어서 땅바닥에 뒹굴고 있고 취업자리 조금 남아 있더라도 4년 내내 스펙, 학점 다 챙긴 친구들을 위한 자리지 내가 넘볼 게 아니게 될 수도 있어
내가 공대를 생각하면서 쓴 글이긴 하지만 다른 취업 잘 되는 학과도 적성 많이 타고 현타 오기 쉽고 공부 어려운 건 다 같다고 봐서 제발 자기 적성 무시하는 일은 안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