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드림, 일종의 자각몽이라고 흔히 불리는 꿈이지만 현실 같은 꿈. 내가 자주 꾸는 꿈이다. 항상 시작은 우물로 들어간다, 그러곤.
우물 깊숙한 곳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한참을 떨어지면 한 남자 애가 날 반긴다.
왔어?
응, 나 왔어.
그러곤 꿈이 시작된다.
우물 밑의 세계는 신기했다. 난 항상 남자 애의 손을 잡고 발이 없는 채로 돌아 다녔다. 즉, 발목으로 다녔다, 이거다.
발목 밑으로는 발이 없다. 그냥 투명색의 무언가가 있다. 그러곤 발목으로 둥둥 떠 다녔다.
현실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여기선 가능했다. 여긴.
여긴 내 꿈 속이었으니까, 나랑 남자 애 둘만 아는 조심스럽고 비밀스러운 무감각의 숲.
여기선 안되는 일이 없었다. 생각한대로 다 이루어졌다.
하늘을 날고 싶으면, 하늘을 날고 있고. 지나가는 새를 떨어트릴 수 있었으며, 나무에 불을 지를 수 있었다.
사지 멀쩡한 동물을 갈기갈기 찢는 건 이미 심심한 일이 되었으며, 요새는 나무에 불을 지르면서 보냈다.
붉은 색으로 활활 타오르는 숲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웠다. 마치 내가 이 세상의 여왕이라도 되는 냥 굴었다.
그렇게 꿈에서 남자 애랑 놀다가 어느 순간 남자 애의 표정이 변하는 순간이 온다.
표정이 바뀌는 순간 남자 애는 나에게 다가와 배에 칼을 꽂는다. 그러곤 꿈에서 깬다.
일어나면 항상 땀 범벅에 손에는 라이터를 쥐고 있었다. 항상 있는 일이라서 그려러니 하고 화장실로 가서 씻는다.
어느때와 다름 없이 학교 갈 준비를 다 하고, 현관문을 열면.
왜 이리 늦게 나와?
김태형이 서있다.
미안, 미안. 많이 늦었지? 가자.
그리고 하루가 시작된다. 생각하면 할수록 숲의 그 아이와 너무도 닮았다.
다시 꿈을 꿨다. 배경은 숲이 아니라, 학교였다.
한밤의 교실은 지독시리 여유로웠다. 마치 포식자가 사냥감을 기다리는 것처럼.
난 그저 멍하니 칠판을 바라봤다.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렸다.
왔어?
꿈의 시작이다.
오늘의 꿈은 좀 달랐다, 배경도 숲이 아니라 학교였고 아이도 웃지 않았다.
이건 뭐, 꿈이 시작되자마자 깨어날 판이다. 내가 아무 표정 없이 아이를 바라보자,
아이는 픽, 웃으며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걸 보아 필히 칼이였으리라.
아이는 내게로 바짝 다가왔다. 내 옆 걸상에 앉고 날 끌어 앉았다. 내 귀 옆에는 아이의 입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곤, 아이는 내게 조곤조곤 말했다.
이게 아직도 꿈 같아?
그리곤 아이가 내 배 안으로 칼을 밀어 넣었다. 이제 꿈에서 깨어나겠지.
의자에서 떨어졌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오는 건 단 하나였다.
아이의 발, 그리고 나의 발.
그리고 실감했다. 아, 현실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