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N년 어느날, 가히 돌판의 대주주라고 불릴만큼 이미 입지가 탄탄했던 엔터테인먼트 'sm'의 수장 이수만 이사는 한통의 전화를 받게된다
"...여보세요?"
"이수만 대표님? 대표님 맞으십니까?"
"..네 맞는데 누구신가요?"
"대표님. 일을 배우고싶습니다. 꼭 배우고싶습니다"
수화기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엔 오랜 기다림과 열망이 묻어있었다.
일을 배우고싶다며 떨리는 음성으로 부탁을 하던 그 남자를, 덜컥 불러들인 이수만 대표는 당황한다.
당시 이수만대표는 오랜시간 심혈을 기울인 아티스트인 보아의 케어를 맡길 매니저를 찾고있었고,
박봉에 일도 많은데다, 체력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을 두루 고되게 하는 노동인 매니저 일을 맡길 20대 초반의 젊은 인력을 원했었다
그러나 이수만대표의 눈앞에 나타난 남자는 본인을 30살이라고 말하며
국립무용단에서 한국무용을 하던 무용수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한성수라는 남자..
고용에 난색을 표하던 에스엠엔터의 노골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일을 배우겠다며 열의를 표했고
그리고 그는 당시 보아의 백댄서로 있던 가희와 만나게 되고
sm을 퇴사하며 그녀와 함께 새 엔터를 기획한다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플레이아데스 성단에서 따온 이름인 플레디스는 '별들의 무리' 라는 뜻으로
설립된 후 첫번째로 데뷔한 '손담비' 이후에 현재 40여명의 아티스트와 함께하고있다
하지만...엔터의 임원직이 아닌 매니저직에만 몸담고있던 그가 운영하는 회사는 실무에는 강할지언정 업무에 유달리 취약했고,
자본이라곤 그의 경험밖에 없었던 그의 엔터테인먼트는 운영에 난조를 맞게된다
당시 플레디스에 있던 연습생은 가희와 손담비, 메이비 그리고
여덟살이었던 시연이.
한성수 대표는 2008년, 손담비를 데뷔시킨 후 가희와 함께 직접 '애프터스쿨' 멤버들을 모으러 다니며 열악한 회사 사정을 여실히 드러내게 된다.
그러던 2008년 9월, 손담비의 두번째 미니앨범이었던
"미쳤어" 의 이례적인 전국적 흥행으로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는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tmi: 미쳤어의 주요 안무인 의자춤은 한성수대표가 직접 기획한것으로, 손담비양은 당시 그 춤을 매우 추기싫어했다고 알려진다)
이에 힘입어
2009년 1월 애프터스쿨이 정식데뷔를 하게되었고
그해 3월 손담비는 '토요일밤에' 라는 곡으로 연속 고공흥행을 거두게 된다
사업의 새국면을 맞게 된 한대표는 멈추지 않고
그해 4월, '스친소' 출신 유이를 애프터스쿨의 새 멤버로 영입하며
온갖 매체에서 보도자료를 쏟아내 '언플' 의 신들린 컨트롤을 보여주었다
유이는 이에 당시 꿀벅지 신드롬을 일으키며 캐릭터를 확보했고,
이를두고 사람들은 한성수의 백투백 홈런이라며 그를 '신의 한수' 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2009년 4월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를 자리매기게끔 한 결정적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유이를 영입한 'diva' 활동 후
오캬의 멤버인 나나, 리지, 레이나가 2009년 새 연습생으로 입사하게 되어
나나와 레이나가 '너때문에' 활동부터 애프터 스쿨에 새로 입학했고
리지는 후에 'bang' 활동부터 함께 하게된다
그렇게 바쁜 변화를 겪고있던 2009년의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는
어느날 강릉에서 방과후수업이 싫어 땡땡이를 치던 한 남자 중학생을 발견하게 되는데
당시 그의 나이 15세
당시 연습생 시스템도, 남자아이돌 적극 런칭 계획도 전무했던 플레디스의 첫번째 남자 연습생이자
훗날 뉴이스트의 리더 jr로 데뷔하는 김종현이다
출처는 보도자료와 나무위키, 한성수대표님의 인터뷰에서 발췌해왔습니다
5편정도로 예상중인데 더보고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