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스팅 : 엄기준/가희/김법래/주아/손준호
1. 엄기준 클라이드는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은행에 농장과 집을 빼앗기고 천막촌에서 짐승만도 못하게 자랐던 클라이드는 세상을 증오하고 범죄의 길로 들어서지. 일반 서민이 아닌 부자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러 서민들에게는 영웅과도 같은 존재가 되는데 엄기준이 연기하는 클라이드는 아무리 봐도 그냥 나이 헛으로 먹은 철부지 범죄자일 뿐이었어. 형을 잃고 피식피식 웃으면서 연기하는게 허탈함과 허무함을 표현하려는 의도는 파악할 수 있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 자꾸만 절망의 순간에서 웃는 모습이 거슬렸어. 저기서 저렇게 웃으면 보니가 부르는 넘버와 너무 어울리지 않는데. 대체 왜 웃는 걸까. 은행을 털고 있었어, 하면서 웃는 모습 그 어디에서 보니는 클라이드가 사람을 죽였다고 연상할 수 있었을까. 원래 보니앤클을 봤던 사람이 아니라면 대체 보니가 뜬금없이 "나 떠날래." 하면서 울부짖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연기였어.
엄기준 클라이드는 대체로 아주 가벼워. 농담 따먹기식의 애드립도 많지. 공연을 보는 관객을 즐겁게 만들 수 있어. 하지만 그게 보니앤클라이드라는 작품에서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생각해. 아무리 재미와 소통이 늘고 여운이 줄어든식으로 재편집 된 공연이라도 삼총사때처럼 너무 방방 뛰는 건 어울리지 않았어. 적어도 총을 들고 살인을 시작한 2부에서는 자제했었어야 했어. 어쩌다보니 혹평인데 중간중간에 웃거나 농담던지기 외에는 뭐 다 완벽했음. 워낙 연기는 검증된 배우니까..
2. 너는 보니니 가희니?
대체 왜 보니가 거기서 흐느적거리면서 춤을 춰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대체 왜 보니가 거기서 몸매 자랑을 해야 하는 지도 모르겠어. 부담스럽게 흐느적대는 양 팔을 묶어놓고 싶다는 생각으로 온 머리가 가득차서 도저히 극에 집중할 수 없었어. 근데 또 생각했던 것 만큼 끔찍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노래가 버겁게 느껴지긴 했지만 깽판을 치거나 하진 않았어. 연기도 그렇게까지 어색하진 않았고. 다만 엄기준도 가희도 노래가 받쳐주는 배우는 아닌지라 둘이 듀엣할때 속이 좀 갑갑하더라. 아, '죽는 건 괜찮아'를 부르는 가보니는 좀 때리고 싶었어. 리보니를 불러줘. 안보니를 불러줘 제발. 그 명곡이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거야. 초연때 내가 개처럼 울었던 부분인데 가희가 부르는 그 넘버는 나를 화나게 했어. 가창력 없는 배우의 솔로 넘버란..
무대 그 어디에도 사랑스러운 헐리웃스타를 꿈꾸던 보니는 없었어. 그저 클라이드에게 낚여 아무 목표없이 따르는 철부지 여자 하나만 있을 뿐. 오보니는 오히려 감정과잉이라고 느꼈는데 가보니는 감정이 없는 목각인형 같았어. 클라이드와 테드 앞에서 다리와 가슴을 노출하는 것 말고는 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다.
3.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
일단 주아블은 사랑이야. 힘 쭉쭉 빠지고 처지는 극을 주아블이 다 살렸어. 분명 잔잔한 넘버를 부르는데도 속이 시원하더라. 가희와의 듀엣에선 정말.. 심폐소생술..bb 다 받쳐주면서 노래하는데 갓주아를 외치고 싶었어. 초연때도 정말 좋았는데 재연때도 역시 좋더라. 한번 해봐서 그런지 더욱 블렌치 그 자체의 느낌도 살고.
법벅은 빵빵 터뜨려주기도 하고 벅의 이미지와도 참 잘 맞는데 그 특유의 저음이 조금 안맞는 것 같았어. 엄기준이랑 듀엣할때는 누구 한명이 크게 터뜨려줘야 그 넘버가 사는데 엄도 법도 그게 안되니까 속이 꽉 막힌 느낌. 하지만 깨알같은 연기는 참 좋았어. 주아블이랑 너무 잘어울려서 진짜 부부같기도 했고. 혼자 부르는 넘버는 또 잘 살고. 영주벅을 아직 못봐서 비교는 힘들지만 법벅도 일단은 대체로 만족.
손테드. 그래 내가 이 공연을 보는 이유야. 솔직히 손준호 배우라고 하면 노래는 정말 믿고 듣지만 연기는 참 답없다는 평가를 받는 배우잖아. 근데 아라미스때부터 점점 괜찮아지더니 테드는 와우 너무 잘 어울리던데. 원래 성격이 그런건지 약간 바보같으면서 순진한 행동들이 참 자연스럽더라고. 다만 일관된 표정과 일관된 제스처는 좀 거슬렸어. 왜 자꾸 대사를 칠때마다 손가락으로 허공을 푹푹 찌르는 건지. 아라미스인 줄 알았네. 공연 내내 꽉 막힌 속을 주아블이 시원하게 해준다면 손테드는 뻥 뚫어줘. 진짜 감사하다고 절을 하고 싶을 정도. 테드 비중이 적고 솔로 넘버가 하나도 없다는 게 너무 슬프더라. 박성환도 손준호도 테드급에는 안맞는데.. 캐스팅을 오버해서 했으면 비중 좀 늘려라 엠뮤..부들부들..
4. 터지는 애드립
- 관객에게서 물건을 훔치는 엄클. 관객이 가방을 내밀자 너무 무겁다고 거절. 이번엔 핸드폰 내밀자 이 시대에 핸드폰이 어딨냐며 또 거절. 결국 지갑 받아감.
- 두번째 관객이 내민 백원에 분노하고 두번째로 내민 손목시계에 '그래 팔아서 돈 되는거라도 줘!' 그리고 다음엔 니 입술도 훔칠거라며 조신하게(?) 말하고 도망.
- 이후 감옥씩에서 손텓 열창 도중 가보니 손목에 훔친 시계 매주며 저 관객이 준거야 드립. 덕분에 하나있는 비중 큰 넘버에서 짜게 식어야 했던 손텓..애도...
5. 종합
보니앤클라이드. 분명 보니와 클라이드가 주인공인데 어째서 조연에게 주연들이 묻히는 걸까. 아니, 엄기준이 이정도라면 대체 다른 클라이드는 얼마나 묻히는 걸까. 난 박형식 클라이드가 안좋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그냥 클라이드 자체가 너무 별로야. 보니가 테드를 버리는 이유가 정말 납득이 안가. 계속 하는 말이지만 테드 캐스팅을 그렇게 하고 매력있는 모습을 보이도록 조정했으면 비중을 늘렸어야 할 것 아냐...엠뮤...! 엠뮤극은 초연이 진리다 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 초연 보니 열번 본 나 셀프쓰담.. 개연성을 넣는다더니 개연성 넣고 클라이드의 나쁜남자같은 매력을 다 없애버렸네. 보니도 그냥 가벼운 여자로 만들고.. 대체 넘버 가사를 왜 멕시코 멕시코로 바꿨는지 이해가 안가. 1부 마지막 넘버가 줬던 그 쾌감이 다 사라지고 쟤네 왜 갑자기 멕시코성애자가 된 거지? 하는 의문만 남기며 끝나.
결론은 그거야. 초연 생각하고 가지 말라. 초연의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캐스팅이 누구건 어떻게 소화를 하건 실망하게 되어있어. 하지만 초연을 안봤다면 볼만 할 거야. 밝은 분위기도 재밌고 괜찮아. 초연에서 지루하단 평을 들었던걸 만회하고 싶었는지 참 재밌는 디테일이 많이 늘었어. 여운이나 감동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면 볼 가치 있어. 고민하고 있다면 한번쯤은 봐도 괜찮을 듯.
참고로 어제 공연 보고 내 결론은 엄가희를 피하고 녹소리를 잡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