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첫 만남은 병원이면 좋겠다 교통사고로 다리 다친 운동 선수 연준이 간혹 오던 친구들도 점점 발길 끊길 때쯤 언제까지 병실에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산책이라도 가보자 싶어서 병원 내 공원 둘러 보다가 벤치에 앉을 듯
연준이 다친 이후로 말도 안 하고 굳이 병실조차도 안 나오다가 나오니까 여러 사람 구경할 듯 쉬다가도 바쁘게 뛰어가는 의사들 휠체어 신세 지고 공원 산책을 하는 환자 어린 애가 어디가 아픈지 하얀 병원복 입고 낙엽 하나에 꺄르르 웃는 소아과 병동 입원 환자도 보고 보호자와 함께 산책 나온 환자들 구경하다가 맞은편 벤치에서 아무 표정 없이 앉은 범규 볼 듯
가을볕이 눈부시지도 않은지 고개 든 채로 병원 건물 가만히 바라보는 범규 얼굴로 볕이 쏟아지면 그 노랗고도 주황빛의 볕이 범규랑 어울려서 그 머리카락이 빛을 받아서 갈색으로 빛나는 걸 보자마자 그 많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연준이 눈엔 범규만 보였으면
그날 이후로 연준이는 늘 그곳으로 산책 나가면 좋겠다 날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범규 흘깃흘깃 바라볼 것 같다 길게 난 속눈썹이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범규 하나 보자고 산책 간 지도 꽤 지났을 쯤 어느 날부터 범규가 갑자기 안 보이면 좋겠다 그래도 덕분에 산책까지도 나가게 된 연준이 범규가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있는데 옆에 털썩하고 범규가 앉았으면
놀라긴 했는데 딱히 할 말은 없어서 그냥 범규 시선이 닿는 곳 바라보면 좋겠다 수많은 병실 창문 중 하나를 보는 것 같은데 어디인지는 모르겠고 다시 고개 돌린 연준이 눈에 보인 건 그렇게 예쁘다고 생각한 속눈썹 밑으로 눈물 떨어지는 장면일 듯
연준이 놀라서 범규가 자기 모르는 거 뻔히 알면서도 손부터 나가서 범규 등 토닥이면서 괜찮으세요? 하고 물으면 범규 놀라서 연준이 바라보다가 괜찮냐는 음성이 다정해서 그대로 눈물 쏟아냈으면
범규가 병원에서 발길 끊은 그 날이 범규 하나뿐인 가족인 할머니가 늘 계시던 병상이 차갑게 비어진 날이었고 범규는 그 사실을 눈물 터트리면서 처음 본 연준이한테 말하게 될 듯 감정이 벅차고 늘 아무한테도 말 못 했는데 처음 본 사람이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그랬으면
범규 한참을 울다가 연준이가 물 마실래요? 물으면 좋겠다 범규 고개 흔들면서 다 쉬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니요... 하면 연준이 그냥 마저 범규 토닥여 줬으면 좋겠다
그러다 범규가 죄송하다고 하면서 감사하다고 자리 뜨려는데 연준이 붙잡고 울고 싶어지면 또 와요 여기 있을게요 하면 좋겠다
그날 범규는 살면서 처음으로 다정함을 맛봤고 하필 그날이 겨울의 첫 날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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