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엉 일어나 봐
어엉...
내 말 듣고 있어?
듣고 있지
어디까지 말했는데?
마을 회관 가서 뉴스 본 얘기
듣고 있었네?
당연하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응 그러니까 뉴스에서 그러는데 서울에서 이상한 바이러스 같은 게 퍼진대
그래?
응 큰일이지
그거 소도 걸려?
소?
어 소
소가 걸린다는 말은 없었는데
그럼 큰일 아니야
왜?
여기서 10분 내내 뛰어 봤자 영태네 외양간밖에 더 되겠어 여기까지 안 와 그러니까 얼른 더 자
그때 좀 더 깊은 시골이라도 가자고 할걸 범규라면 같이 갔을 텐데 연준이는 후회해 봤자 지금 당장은 넋 빠진 범규 손 잡고 뛰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을 것 같다 연준은 배달 일을 하던 중에 주변에서 퍼지는 비명 소리를 찾아서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다 죽어가는 피부로 사람 물어 뜯는 좀비가 있었겠지 그 모습을 보고 연준에게 처음 든 감정은 공포도 두려움도 아닌 보고 싶음이었을 것 같다 배달지로 가던 오토바이를 집으로 향하면서 뒤에서 다 죽은 다리로 쫓아오는 좀비들에게 배달 물품을 던져댈 듯
뒷좌석에 뒀던 물품들까지 다 던져대다가 당산나무 앞에서 연준이는 멈출 것 같다 당산나무 옆에 있는 초록 지붕을 올려다 보다가 영순 할머니를 데려가야겠다 생각했을 듯 오토바이를 고정시키고 들어가려는데 대문이 열린 걸 보고 꺼림칙했지만 어떻게든 모시고 가야지 하는 생각이었을 것 같다 넓은 마당에 들어가고 주위를 살피면서 할매 저 왔어요 하면서 영순 할머니를 찾다가 뒷마당까지 갔는데 거기서 오늘 읍내에 다녀간다던 마을 이장이 다 죽은 피부로 영순 할머니를 물어 뜯고 있었을 듯 구하려고 다가갈 땐 이미 영순 할머니 눈이 희게 변해가고 있을 것 같다
연준이 오토바이 시동을 걸 정신도 없이 냅다 뛰어서 집에 도착했을 때 범규는 당연히 영순 할머니를 찾을 것 같다 연준이도 그랬으니까 대신 연준이는 영순 할머니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고 범규에게 그 모습을 보여 줄 순 없다 그게 결론이었을 듯 불구하고 범규는 영순 할머니를 찾으러 갔고 지금 이렇게 뛰고 있겠지 연준이가 범규를 데리고 뛰어간 곳은 마을 이장 집일 것 같다 좁디 좁은 시골 촌구석에 자동차가 있는 집이라고는 몇 없었고 그 중 마을 이장 집이 제일 가까웠으니까
몇 번이나 들렀던 마을 이장 집에 도착하고 전에 이장님 부탁으로 운전했던 게 기억난 연준이 이장님이 매일 열쇠를 두는 위치에서 열쇠를 가지고 나올 것 같다 여전히 넋이 나간 범규를 조수석에 앉히고 차 시동을 걸면서 머릿속으로 계산할 것 같다 자신이 배달 일을 하는 대형 마트는 시골치고 번화가니까 당연히 퍼질 만큼 퍼졌을 테지만 창고는 아직 손이 안 닿았겠지 머리 한참 굴리는 동안 범규가 처음으로 입을 열 것 같다 미안 그 사과의 의미가 연준이는 무슨 뜻인지 단박에 알아챘을 듯 사과하지 마 그런 사람이라서 좋아했던 거야 범규 그 말 듣고 연준이 쳐다 보던 시선 뚝 떨구고 응... 하고 대답할 듯
연준이 시동을 걸고 대형 마트가 있는 곳으로 도착했을 때는 의외로 조용했을 것 같다 차로 치여버려서라도 도착하려고 했는데 죽은 시체들로 깔린 도로가 을씨년스럽기만 한 게 오히려 더 걱정됐을 듯 연준이는 범규 데려가려고 했던 계획 곧장 접을 듯 여기서 기다려 트렁크에서 삽이라도 챙겨야겠다 하면서 나가려는데 범규가 연준이 팔 꽉 붙잡을 듯 같이 가 연준이 바로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는데 범규는 막무가내일 것 같다 이런 사람이라서 좋아했다며 사랑까지 하니까 나 그냥 데려가
하는 수없이 연준이 먼저 내리고 범규가 내리기로 한 다음 연준이 먼저 내릴 것 같다 먼저 트렁크를 열고 뭐라도 찾으려고 할 듯 다행스럽게도 농기구 몇 들어 있어서 연준이는 삽 하나 긴 도끼 하나 양손에 쥐고 살피다가 범규 문 열어 주면서 삽 쥐어줄 듯 범규 삽 두 손으로 꽉 쥐고 있을 듯 무거워? 나도 시골 총각이거든? 방금까지 넋 놓고 있더니 자기도 할 수 있다고 하는 범규를 연준이 빤히 보다가 그래 하고 마트로 들어갈 것 같다 마트 창고는 외부인 출입금지였고 일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젊은 만큼 일 꽤나 했던 연준이한테는 열쇠가 있었을 것 같다
창고 문을 열고 연준이 먼저 들어가고 범규가 후에 들어가서 식량과 물을 챙겼을 듯 챙기다가 창고 내 직원 휴게실에 손전등 달린 수동 라디오 있던 게 생각났을 것 같다 연준이 범규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후에 휴게실 문을 여는데 이상할 정도로 뻑뻑하고 안 열릴 듯 힘 줘서 강하게 확 열어제끼자 겨우 열렸으나 그 안에는 담당자 하나가 피를 쏟고 있고 문틈까지 피가 흐른 거일 듯 연준이 일단 라디오부터 챙기는데 순간 등골이 오싹할 듯 여기까지 왔다는 소리나 다름 없었으니까
연준이 바로 휴게실에서 나와서 범규 있는 쪽으로 가는데 좀비 하나가 쓰러져 있고 범규는 그 앞에 주저 앉아서 삽 들고 벌벌 떨고 있을 것 같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좀비는 방금 전 그 담당자와 함께 근무하는 다른 담당자였고 하루에 둘이 최대니까 다른 사람은 더 없겠지 싶었던 연준이 일단 범규부터 안아 줄 듯 형 여기 있어 그 말 듣자마자 범규 연준이한테 안겨서 엉엉 울 것 같다 잘했어 잘한 거야 그리 말해도 범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흐를 것 같다 괜찮은 척 해도 하나도 안 괜찮았다는 거 연준이는 다 알고 있었으니까
범규 겨우 달래고 식량이며 물이며 다 챙겨서 나와서 트렁크, 뒷좌석이 꽉 찰 때까지 밀어넣을 것 같다 범규 먼저 좌석에 태우고 자신이 옆자리에 타려다 옆 도로에 시골 경찰 둘이 쓰러진 게 눈에 뜨인 연준이 가서 경찰 허리춤에서 권총 하나씩 챙길 것 같다 이 썩어 빠지고 죽어가는 시골에서 최범규만은 살리리라 그리 다짐하고 죽은 시체 앞에서 연준은 가볍게 기도를 할 것 같다 차로 돌아왔을 때 범규가 뭐 하고 왔냐고 물으면 너랑 살 궁리라고 대답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