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을 다시금 축하한다. 시상식 영상을 다시 본 적이 있나.
"'왜 저 때 저렇게 할 말이 없었을까?' 싶더라. 되게 짧게 수상 소감을 말했던 것 같다. 물론 앞서 김성용 감독님이 많은 수상소감을 해줘서 짧게 한 것도 있지만 그 당시 연기를 하고 있지 않았을 때고 일상생활을 하고 있을 때이지 않나. 연기를 하고 있을 때 남궁민은 어떤 상황이 와도 긍정적으로 헤쳐나가고 항상 끌고 나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할 말도 많고 그랬을 텐데, 연기하지 않을 때 남궁민은 나약한 존재다. 쓸모도 없고 뭐 하나 잘하는 것도 없다.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게 뭐지? 누군가한테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지금 느껴지는 말이 뭐야?'라고 생각해 봤을 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고 그러다 '연인'을 창조해 내고 몇 년 동안 글을 썼던 분은 작가님인데 황진영 작가님이 후보에 못 오른 게 아쉬워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다."
-많은 축하를 받았을 텐데 기억에 남는 축하 메시지나 반응이 있나.
"황진영 작가님이 그날 생방송으로 시상식을 못 봤다고 하더라.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 메시지를 보냈다. 전체적인 내용을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연인'으로 인연을 맺은 후 슬프고, 힘들고, 중요한 순간마다 선배님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잊을 수 없는 시간을 따뜻하고 벅차게 채워줘 오래도록 간직하며 가끔 꺼내볼 것 같다'라고 하더라. 그 메시지에 큰 감동을 받았다."
-가족들의 반응은 없었나. 특히 아내 진아름의 반응이 궁금하다.
"부모님이나 동생이 봤지 않을까 싶다. 근데 우리 가족들은 일부러 티를 잘 내지 않는다. 속으로 응원은 많이 해도 '혹시 내 응원이 이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있는 듯 없는 듯 지켜주며 나보다 더 기뻐하는 스타일이다. 정말 최고의 가족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아내는 축하한다면서 '오빠 받아서 소리를 질렀다'라고 하더라.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기뻐했던 것 같다. 우리 스태프 친구들도 거의 10년 함께한 친구들인데 내가 받았을 때 엄청 소리를 질렀다고 하더라."
-시상식 이후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
"최근에 쉬면서 대본 쓰는 작업을 하고 있다. 대본 회의 하고 단점들 찾아서 얘기하고 고치고, 들어오는 책들 있으면 최대한 빨리 피드백을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리고 시간이 좀 남으면 돈가스를 먹고 그런다."
-1999년 데뷔 이후 첫 백상 수상이었다. 이 상이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나.
"유일하게 못 받은 상이었다. 그런데 '연인'은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스럽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내 연기나 개인적인 감정이 아닌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스토브리그' 때도 후보로 왔었는데 상은 못 받았지만 기분 좋게 돌아갔다.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있거나 스스로 자존감이 있으면 시상식장에 즐겁게 왔다가 즐겁게 갈 수 있는 것 같다. 멘털이 안 좋거나 연기적으로 자존감이 떨어질 때는 뭔가 상을 탈 것 같아도 자꾸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래도 배우란 직업 자체가 감정을 가지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때는 동굴 속에 들어가고 싶을 때도 있고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아도 다른 사람을 축하해주고 싶은 그런 굴곡이 있는 것 같다. 날 바라보는 사람들의 평가 기준이 있는데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걸 느낀다. 처음 주인공 한다고 했을 때 '절대 주인공 못한다'라고 했듯 하나가 잘 되면 '저거 하나 된다고 또 되겠어?' 계속 부정적인 생각으로 나란 사람의 그레이드를 정하는데 그걸 깨부수고 올라가는 게 너무 즐거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들의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바뀌어 있는 모습에 희열을 느꼈는데 배우로서 영향력이 그간 부족했기에 못 받았지 않았나 싶다."
-'연인'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 작품인가.
"진짜 작가, 연출, 모든 스태프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협업 작업이었다. 가장 이상적인 협업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에서 함께한 스태프들의 순수한 열정이 느껴져 자랑스러웠다. 내가 포기하고 싶을 때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느끼는 감동스러운 순간,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의 노력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내겐 두 번째 사극이었다. 첫 번째 사극 할 때 너무 못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처음에 못했던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시작할 때는 부족했지만 소위 사극 말투를 조금이라도 변형시키고 발전시키는 게 뭘까 고민하며 연기했다. 연기란 걸 너무 좋아하니 부족한 걸 잘 녹여내고자 노력해 조금은 늘은 것 같다."
-파트너 안은진은 어떤 배우였나.
"파트너와 호흡을 맞출 때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 안은진 씨와 함께해 너무 좋았다. 김성용 감독님이 안은진 씨를 섭외했고 난 전작을 마치고 곧장 촬영에 들어가는 거라 이 배우가 어떤 배우인지 파악할 여력이 없었다. 김성용 감독님과 '검은 태양'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호흡이었기 때문에 감독님의 선택을 믿었다. 그렇게 만났는데 장현과 길채의 드라마 전개처럼 천천히 친해져서 좋았다. 사실 작품으로 막 친해지는 편은 아닌데 안은진 씨가 선배에게 많이 다가와준 게 컸던 것 같다. 얼마나 고맙던지. 인성도 좋고 착하다. 사람에 대한 좋음이 있었기 때문에 연기 또한 잘 나왔던 것 같다."
-'연인' 종영 이후 작품 활동을 잠시 쉬고 있다.
"특별한 취미는 없고 친한 형들이나 아내 친구들을 초대해 격식 있게 차려입고 다이닝 하는 걸 즐긴다. 그런 걸 가끔 하긴 하지만 평소 스케줄이 있으면 먹고 싶은 걸 다 먹지는 못하지 않나. 처음으로 5, 6개월 정도 쉬었다. 핀잔을 줬던 음식들을 나도 모르게 시켜 먹고 있더라. 옛날엔 먹으면 죄책감이 들고 기분이 안 좋았는데 이번에 쉴 땐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합리화가 됐고 그런 음식들을 많이 먹었다. 먹고 싶은 게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드라마 촬영할 때는 계속 촬영하니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되는데 '세상에 맛있는 게 너무 많구나!'란 걸 새삼 깨닫고 있다.(웃음)"
-쉬는 동안 특별하게 한 것은 없나. 쉬는 방법을 잊은 것 같다.
"그간 하나의 작품이 끝나면 곧바로 다른 작품 촬영에 들어갔다. 작품에만 몰입했다면 이번엔 쉬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온전히 쉬는 게 또 안 되더라. 연기 자체가 예술 활동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뭔가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열정이 많기 때문에 '그동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사람들을 모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열심히 글을 쓰고 한계에 부딪치고 그러고 있는 와중이다. 예술 활동에 관련된 일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엑스트라부터 주인공까지 왔지만 언제까지 주인공만 할 수 있을 것인지도 모르지 않나. 연기적인 활동 외에도 글, 제작, 감독 등을 하며 이쪽과 관련된 바운더리를 넓히지 않으면 앞으로의 입지가 좁아질 것 같다. 근데 예술 활동 자체를 좋아한다. 가장 행복한 때를 돌이켜 보면 열심히 일하다 중간에 시간이 남아서 맥주 한 캔 먹고 살짝 취기가 올라왔을 때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흥겨워하는 날 보면서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과 사랑하는 일이 이거구나!'란 걸 느낀다."
-슬럼프가 온 적이 있나.
"항상 온다. 소위 말하는 예술 활동이란 게 내가 방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슬럼프가 오기 마련이다. 애증의 관계인 것 같다. 연기가 아무리 좋아도 어느 순간 마음대로 안 될 때가 있고, 마음을 비운 상태로 멀리서 바라볼 때 좋은 게 올 때가 있다. 다만 슬럼프가 와도 오래 안 가는 것 같다. 드라마가 끝날 때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할까?' '행복이 뭐지?' '모든 게 잘 됐음에도 불행함을 느끼는 이유는 뭐지?' 등을 생각한다. 그럴 때 원론적으로 돌아가서 '내가 사랑하는 연기를 하고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이런 활동을 할 때 행복했었지!'를 다시 느끼면서 슬럼프를 극복하는 것 같다. 슬럼프 없이 계속해나갈 수는 없는 것 같다. '연인' 시작할 때 후배 윤우가 이전보다 큰 배역을 맡아서 너무 불안해하더라. '선배님의 연기 인생 중 위기는 언제였냐?'라고 묻는데 처음엔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어 당황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난 단 한 번도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더라. 항상 위기라고 생각해서 절박하게 연기했다는 걸, 그래서 그나마 작품들이 잘 될 수 있었다는 걸 느꼈다."
-첫 주인공으로 나섰던 드라마 '김과장'부터 '닥터 프리즈너' '스토브리그' '검은 태양' '천원짜리 변호사' '연인'까지 주연작의 승률이 꽤나 좋다. 작품을 선택할 때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면.
"사실 초반에 주인공을 할 땐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초반엔 좋은 감독님, 작가님을 만나 연기를 했고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게 됐을 때는 주변 말보다는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을 중시하는 편이다. 재밌어야 한다. 지루하지 않아야 하고 짜임새가 좋은, 조화로운 면을 보는 것 같다. 단순한 재미보다 나 자신을 돌아보거나 생각하게 만드는 게 한 스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인 것 같다."
-배우로서 가장 중요시하는 덕목은.
"배우에게 인성과 열정이 중요한 것 같다. 잘하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 함정에 빠지고 괴롭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순간 발전이 없는 날도 오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력과 열정 자체를 포기하는 건 사형선고를 내리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다음 작품을 할 때 괴로움이 다가오면 또 두렵겠지만 그걸 해냈을 때 성취감이 있는 것 같다."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지금 막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다. 행복을 찾아가는 단계인 것 같다. 지금까지는 배우로서 어떤 작품을 시청자분들께 보여드리고 그분들이 즐거워하고 감명받는 걸 중요시했다. 오늘 하루 힘들었는데 들어와서 내 작품을 보고 내일 하루가 달라지지 않더라도 '열심히 살아보자!' 그런 마음이 들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대한 행복을 느꼈는데 '인간 남궁민으로 살 때의 행복은 무엇인가?' 그걸 찾고 있는 과정인 것 같다. 일을 쉰 적이 없고 드라마가 끝나면 바로 다른 작품에 넘어가서 사람들 만나고 그랬는데 이번엔 일상을 보내며 나의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50살이 되기 전에 찾아보려고 한다."
-인생 최대 터닝포인트를 꼽는다면.
"드라마 '김과장'(2017)이 아닐까 싶다. 대중이 인식했을 때 '김과장' 이후로 '남궁민이 주인공을 하네? 괜찮나?' 이렇게 봐주지 않았나 싶다. 연기적으로 터닝포인트는 드라마 '스토브리그'(2019)였던 것 같다. '스토브리그'를 할 때 '이 사람이 모든 걸 헤쳐나가는 과정이 과장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뚝뚝하게 일상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반복적일 법한 사람이라는 점에 몰입할 것 같다'라는 지점을 살리고자 했다. 연출적으로 초반 합의가 있었는데 이게 잘 살아났던 작품이었다."
-2015년 첫 영화 연출작 '라이트 마이 파이어'가 있다. 연출에 대한 욕심이 있나.
"내가 연출을 할 수 있어도 아이디어를 많이 줄 수 있는 연출과 함께하면 머리가 두 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작업이 좋다고 생각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발판이 됐든, 뭔가를 창출해 내는 일이든 그런 마인드를 심어주고 싶다. 그게 목표다."
-제작에 대한 계획은 없나.
"제작을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제작을 한다고 해서 제작만 하는 건 아니고 다른 분들이 하는 작품에도 열심히 출연하고 그거와 별개로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게 제작될 수 있는지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대본을 잘 본다고 주변 사람들이 '제작하면 될까요?' 이런 대본 의뢰를 많이 한다.(웃음) 그분들 것을 읽어주고 그분들이 내 것도 읽어주고. 내가 출연도 하고. 여러 가지를 함께하고 싶다. 영화든 드라마든 예술과 관련된 일련의 작업들이지 않나. 그렇게 바운더리를 넓혀가는 방향성이 좋은 것 같다. 그걸 빼놓고 다른 부분에 관심을 가지려고 해도 다른 것에 별 관심이 없다. '이게 행복이구나!' 싶다."
-차기작 및 하반기 계획은.
"아직 확정은 아닌데 드라마 두 개 정도를 생각하고 보고 있는 게 있어서 별다른 이슈가 없다면 하반기엔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다음에 쉴 땐 여행도 편안하게 가고 먹는 것도 관리하지 않고 실컷 먹고 싶다. 한 달 정도 퍼져서 지내고 싶다. 다음엔 그렇게 해 봐도 될 것 같다는 마음이 생겼다.(웃음)"
https://naver.me/5duqGEq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