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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BBC가 "현재 K팝 팬들을 분열시키고 있는 이슈는 인공지능(AI)"이라며 K팝 업계의 AI 도입과 그 영향을 조명했다.
11일 BBC는 "K팝의 AI 실험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세븐틴을 비롯한 여러 K팝 아티스트들이 AI 기술을 활용해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가사를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BBC는 세븐틴을 "작년에만 약 1,600만 장의 앨범을 판매하는 등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K팝 그룹 중 하나"라고 소개하면서 "이들의 가장 최근 앨범이자 싱글인 '마에스트로'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마에스트로'의 뮤직비디오에 AI가 생성한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앞서 세븐틴 멤버 우지는 지난 4월 세븐틴 베스트 앨범 '17 IS RIGHT HERE'(17 이즈 라이트 히어) 발매 기념 기자단감회에서 "AI로 작사·작곡을 해봤다"며 "기술의 발전을 불평만 하기보다는 같이 발맞춰 가야 한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우지는 "단점도 찾아보고 장점은 무엇이며, 또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속에서 우리 고유의 아이텐티티는 어떻게 지킬 것이며,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매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그러나 BBC는 K팝 팬덤 사이에서 AI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며, 일부 팬들은 이 기술이 보편화되기 전에 더 많은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AI 도입에 개방적인 K팝 팬의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26세의 애슐리 페랄타는 BBC에 "AI가 아티스트의 창작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괜찮다"면서도, 앨범 전체가 AI로 생성된 가사로 채워진다면 팬들과 아티스트간의 유대가 끊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페랄타와 함께 K팝 팬 팟캐스트 '소주를 흘리다'(Spill the Soju)를 진행하는 첼시 톨레도는 세븐틴이 직접 곡을 쓰고 안무도 짜는 셀프 프로듀싱 그룹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지만, AI를 사용하게 될 경우 그 명성에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된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톨레도는 "만약 세븐틴이 직접 작사하지 않은 가사로 가득 찬 앨범을 내게 된다면 그들을 예전처럼 생각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라며 "팬들은 진정으로 세븐틴다운 음악을 원할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BBC는 K팝 업계에서 활약한 작곡가 크리스 네언을 인용해 K팝 산업 종사자들이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현상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그들에게는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열망이 있다고 전했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한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네언은 "서울에 있는 동안 충격을 많이 받았다"며 "한국 사람들은 혁신에 관심이 많고,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한발 앞서 나갈 수 있을까' 등의 질문과 고민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AI가 케이팝의 미래일까'라는 명제에는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AI 가사 생성기를 사용해 본 결과,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채택할 만한 가사가 나오지는 않았다고 했다.
네언은 "AI가 상당한 품질의 결과물을 내놓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작곡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혁신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라며 "AI는 이미 업로드된 것을 가져와서 작업하기 때문에 스스로 혁신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BBC는 세븐틴 외에도 걸그룹 에스파의 신곡 '슈퍼노바' 뮤직비디오에서 에스파 멤버들이 얼굴을 가만히 한 채 입만 움직이는 장면이 AI를 통해 제작됐으며, 이 영상이 많은 K팝 팬들을 '민감하게 자극'(Triggered)했다고 전했다.
팟캐스터 톨레토는 아티스트들이 AI 생성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현상을 언급하며 "영상에 AI를 사용하면 누구의 원본 아트워크를 도용했는지 알기 어렵다. 이는 정말 민감한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음악 저널리스트 아르피타 아디야는 K팝 업계의 AI 도입은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진단했다.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2년에 한 번씩 앨범을 내지만, K팝 그룹은 6개월에서 8개월에 한 번씩 앨범을 낸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또 유튜브에서 팬들이 다른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모방해 커버 트랙을 만드는 'AI 커버'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AI의 일상화에 일조했고, 이러한 트렌드는 규제돼야 하며 서구 아티스트들도 이를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4월 빌리 아일리시, 니키 미나즈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음악산업 내 AI 기술의 '약탈적'(predatory) 사용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표했다. 이들은 유튜브 등 AI 음악 제작에 관여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에 "작곡가와 예술가들의 예술성을 훼손 및 대체하거나, 작업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거부하는 AI 음악 생성 도구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아디야는 "아티스트가 AI를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없는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항상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고민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라며 "아티스트에게 팬들은 가장 큰 부분이고 많은 영향을 미치며, 아티스트들은 항상 배우고 듣고 싶어한다. 세븐틴과 에스파가 팬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들은 그것을 해결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디지털뉴스팀 이유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