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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영환 감독, JTBC 수목극 '놀아주는 여자'로 탁월한 연출력 입증
"드라마는 협업해서 만드는 작업, 많은 의견 받아 완성한 엔딩"
"대본 그 이상을 해준 배우들에 감동, 초심 잃지 않았던 원동력"
"사람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이야기 하고파, 차기작 로코 준비 중"
- 사슴즈 배우 구성도 새롭고 재미있었다. 어떻게 캐스팅을 했나?
"오디션과 미팅만 한 달 동안 수백 명을 한 것 같다. 한 인물당 최소 100명 이상을 만나고 얘기했다. 재수 역의 양현민 배우는 '연인'에 먼저 캐스팅이 되어 있어서 힘들다고 했는데 부탁했다. 무게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친구는 그분밖에 없을 것 같았다. 만호도 무서워 보이면서도 귀여운 이미지를 생각했다. 그런 표정이 나오는 친구를 엄청 많이 만나 사담을 나누면서 미소를 캐치했다. 그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유준 배우를 캐스팅했다. 동희는 꽃미남이라 처음부터 아이돌로 뽑으려고 생각했다. 아이돌을 많이 만났는데, 재찬 배우가 확실히 천재끼가 있다. 눈빛, 표정이 계산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 캐릭터에 동화되어 나오는 것이 있다. 동희 이야기가 뒤에 풀려서 분량 할애를 많이 못 한 아쉬움은 있다. 홍기 역할은 사기꾼인데 사랑스러워서 가장 많은 오디션을 봤고, 정말 마지막에 됐다. 문동혁 배우가 그간 연기한 자료가 많지 않았는데, 얘기하다 보니까 이 친구도 천재끼가 있다고 해야 하나. 현장에서 나오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는 판단에 가장 마지막에 캐스팅했다."
- 굉장히 공을 들여 캐스팅한 건데 진짜 신선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을 참 잘 소화했다.
"그 친구들이 최대한 편안하게 연기하게끔 현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저희의 큰 역할이다. 사람들이 좋아한 '극혐' 같은 경우도, 대본에 있는 상황이 끝났는데 그 신이 너무 심심하더라. 귤 까주는 장면도 있지만 이렇게 신이 마무리되면 너무 밋밋하다고 해서 한 테이크를 더 가자고 했다.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한 테이크 더 가면서 무슨 말이라도 해보자"라고 했다. 미호(문지인 분)가 재수에게 "극혐"이라고 하니까, 사전에 약속한 것도 없는데 "극혐이 뭐야?", "좋은 거예요"라고 했고, 이어서 "극혐입니다, 형님"이 된 거다. 저는 이 신이 됐다는 확신이 들었다. 애드리브로 만들어진 신이다."
- 또 다른 애드리브도 많았을 것 같다.
"팬들이 많이 좋아하는 "애기야 가자!"도 "오빠가 라면 끓여줄게"는 태구 배우 애드리브다. 시간에 쫓기면서 찍을 때였는데, "애기야 가자"가 끝이라 밋밋하고 마가 뜨더라. 저도 워낙 많이 준비해가긴 하는데 그때는 대본대로만 하는 것이 힘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따로 준비한 게 없었다. 하지만 심심하더라. 그래서 "미안한데 한 번만 더 가보자"라고 했고 그게 세 번째에 나왔다. 4부에 "라면 먹고 가실래요?" 하는 것이 있다. 그때 그 순간이 떠올랐나 보다. 데리고 갈 때 갑자기 "오빠가 라면 끓여줄게"하는데 '됐다' 싶었다. 권율 배우도 "미쳤나?"가 찐으로 나온 거다."
-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지환이 은하에게 귤을 까주던 장면이다.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엄태구 배우에게 얘기했더니 "대본엔 귤을 까준다고만 되어 있었다"라고 하더라. 그리고 "그런 모습을 잘 봐줄지 걱정했는데 (좋다고 해주니) 다행이다"라며 기뻐했다.
"맞다. 대본엔 귤을 까준다고만 되어있는데, 저는 귤을 그렇게 까는 사람 처음 봤다. 그냥 그 모습이 엄태구다."
- 엔딩 장면 역시 신선했다. 이 드라마니까 가장한 엔딩이 아닌가 싶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나?
"원래 대본에는 없었다. 그냥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뛰어간다였는데, 우리 드라마니까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굉장히 많은 분들의 의견이 종합적으로 담긴 장면이다. 바바리코트를 벗으면서 이 드라마가 정말 끝났다는 걸 보여주고 싶더라.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일명 '또라이 드라마'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잃지 않고 가는 걸 표현하고 싶더라. 그런데 달려만 가면 심심하니까, 20~30분에게 의견을 구했다. 제가 영화 '핸섬가이즈' 남동협 감독과 절친이다. 엔딩이 심심하다, 아이디어를 달라고 했다. 정말 많은 분의 의견을 조합하다가 이런 장면이 나왔다. 드라마는 감독이 선장이라고 하는데 썩 공감하지 않는다. 협업해서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서 많은 분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 남동협 감독은 피드백해준 것이 있나?
"제가 '핸섬가이즈'를 5번 봤다. 그 친구도 고생 많이 하고 입봉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안 보더라. 3, 4부도 얼마 전에 보고 저에게 전화해서는 "3, 4부 너무 재밌더라"라고 하더라. 그 친구가 최근 바빴는데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꼬박꼬박 만났고, 예전부터 서로 할 수 있다며 격려와 응원을 해주곤 했다."
- '놀아주는 여자'의 해외 반응도 굉장히 좋은데, 체감하는 것이 있나?
"그렇다고는 하던데 제가 아직 해외를 못 나가서 느끼진 못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SBS 드라마 '오늘의 웹툰' 공동 연출을 했다. 국내에서는 잘 안 됐는데, 끝나고 베트남 여행을 갔다. '오늘의 웹툰'이 베트남에서 엄청 잘 됐다. 갑자기 저희가 있던 호텔 방을 스위트홈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주더라. '해외에서 드라마가 잘 되면 이렇게도 되는구나, 배우들은 진짜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 '오늘의 웹툰'은 시청률은 좀 아쉽지만 자극적인 요소 없이 굉장히 착한 드라마였고, 응원이 되는 작품이기도 했다. 특히 저는 김도훈 배우가 그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줘서 인상적이었다.
"김세정 배우가 정말 애를 많이 썼는데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리고 제가 위로를 더 많이 받기도 했다. 제 연출하는 원동력 중 하나이기도 한데, 톱배우들과 작업해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아직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은 친구들을 찾아서 같이 뭔가를 만들고 힘을 얻고 응원을 받을 때 보람을 더 많이 느끼는 것 같다. 김도훈 배우는 SBS '의사요한'에서 처음 만났고, KBS '법대로 사랑하라'도 있어서 스케줄이 안 되는 상황인데도 부탁을 해서 '오늘의 웹툰'도 함께 하게 됐다. 김도훈 배우가 정말 너무 열심히 잘해줘서 고마웠다. 잘 될 친구일 줄 알았다. '놀아주는 여자' 15부 특별출연도 그냥 와서 해준 거다. 사전에 약속한 게 아니라 촬영한다고 하니까 흔쾌히 와서 해줬다 정말 고마운 친구다. '핸섬가이즈'도 제가 추천을 했다."
- 다음 작품 계획이 있나?
"저는 사람들이 편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걸 하고 싶어서 지금 로코를 고민하고 있다. 장르물은 잘 찍는 분들이 많다. 제가 조연출을 오래 하면서 상대적으로 장르물에 가까운 작품을 많이 했다. 좋아하는 분들이 많긴 한데, 제가 좀 피폐해진다. 자꾸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 어떻게 납치를 하는지에만 신경이 가 있더라. 이렇게 장르물이 많을 때 따뜻한 이야기를 해줘야 하지 않나 싶다. 한 번 해봤으니까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로코 책 찾아서 두 군데와 얘기 중이다."
- 큰 응원과 사랑을 준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말 많이 사랑해주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 심지어 제가 생각하지 않았던 연출 의도도 다 만들어주시더라. 애칭도 만들어주시고, 응원해 주시는데 많이 힘이 됐다. 우리 드라마가 정말 많은 분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마지막 방송 날 다 같이 보면서 수고했다는 말을 하는데, 드라마가 끝나도 시청자들이 덜 아쉬울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이 되더라. 지금도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는데, 드라마 속 소품들을 다 가지고 계시더라. 채널 쪽과 얘기해서 소품에 친필 사인을 해서 팬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 그렇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팬들의 반응이 있나?
"개인적으로 정말 확신이 없었던 장면인데, 잔디밭에 굴러떨어져서 은하에게 고백하는 장면이다. 테이크를 정말 많이 갔는데, 남주가 여주에게 고백을 이렇게 해도 되는가 싶었다. 시청자들이 너드미로 받아줄 것인가, 남자 주인공의 힘이 약해 보이거나 안 멋있으면 어쩌나 고민이 많았다. 그 신 편집도 엄청 하고 음악도 다 해보고 긴 시간 동안 후반 작업을 했다. 고라니 장면은 의도했다. 그 뒤에 확 멋있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고백 장면이다 보니 시청자들이 찐따미로 봐주시더라. 너무 감사했다. 그때 태구 배우에게 엄청 고마웠다. 그 신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다.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전형적이지 않은 고백신이 나왔다. 저도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했었고, 배우도 그날 촬영이 다 끝나고 같은 장소에서 다른 신 촬영을 할 때 한 번만 더 해보자고 하더라. 그래서 고백 장면만 며칠 있다 재촬영했다. 완성본은 섞어서 사용했다."
- 그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으니 좋은 장면이 나온 것 같다.
"맞다. 제 가족보다 더 신경 썼던 사람이 엄태구 배우다. 제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많이 신경 쓴 사람이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가장 많이 모니터하면서 쳐다봤다. 24시간 중에 20시간 가까이 되는 것 같은데, 촬영 끝나고 사무실에서 지환이 나오는 장면만 체크해서 봤다."
- 이 정도면 마지막 촬영하고 헤어질 때 운 건 아닌가?
"마지막 촬영 때 창피하게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 그럼 다른 드라마에서 또 같이 작업하고 싶을 것 같다.
"당연하다. 기회가 된다면, 세 분뿐만 아니라 나와준 모든 배우를 다시 만나고 싶다. 특히 양현민 배우는 제가 페르소나다.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나 개그, 모든 것을 담당해준 친구다. 배우들이 캐릭터 분석을 너무 잘해줘서 감사했다. 감사한 시간이 되게 많았다. 책을 보고서 감정선이나 액팅에서 그 이상의 것들을 해주는 배우들을 볼 때 감동한다. '이걸 이렇게 한다고?' 싶다.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배우들에게 너무 많은 힘을 받았고,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촬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