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이니까 말해볼게.
때는 2022년 3월, 코로나가 끝날락 말락하는 시기에 우연찮게 지인을 통해서 내 최애와 식사자리를 하게 되었어. 내 지인은 연예계에 종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예인을 많이 만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에 동성이든 이성이든 연예인들을 몇명 알고 있었어.
그 중에 내 최애가 있었고, 지인이랑 연락을 몇번 주고받다가 지인이 너 남자 소개 받을 생각 있어? 라는 메세지를 보냈어. 나는 당연히 일반인이겠거니 해서 그래 몇살이야? 라고 보냈는데 지인이 너 알면 깜짝 놀랄걸ㅋㅋㅋㅋ 이라고 보낸 다음 내 최애 이름을 알려주는 거야. 지인이랑 아는 사이인 줄은 어렴풋이 알았는데 이렇게 소개까지 시켜 줄 사이일 줄은 몰라서 깜짝 놀랐지. 나는 너무 부담스러웠지만 내 최애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일단 승낙했어.
지인이 미팅 일주일 전, 카톡으로 내 최애한테 '00이 내가 아는 동생인데 진짜 착하고 돈도 잘 벌고 예뿐애야'라고 보낸 걸 보고 내 최애가 진짜? '나 00(내가 몸담고 있는 직군) 멋있어 보여서 좋아하는데 기대한다 누나ㅋㅋㅋ'라고 답장 온 걸 지인이 공유해줬어. 그때부터 엄청 떨리기 시작했어. 실망하면 어쩌지... 이런 고민들 때문에 그냥 파토낼까 고민도 했지만 만나보기라도 하고 싶어서 결국 약속날에 나갔어.
첫 만남은 신논현역에 위치한 한 선술집이었어. 엄청나게 막혀져 있는 폐쇄형 룸 컨셉의 술집은 아니었지만, 가게의 사장이 연예인들이랑 인맥이 있었고 단골들도 많다고 해서 그곳으로 만남을 잡았어. 지인이 그당시 자신이랑 교제하던 30대 초반 남자분 한명을 데려왔고, 내 최애는 스케줄이 없던 날이었는지 검은색 마스크에 남색 버킷햇+크롬하츠 티셔츠에 회색 츄리닝을 입고 왔어. 오자마자 나를 쳐다보고 인사를 하더니 "안녕하세요, 00 누나가 자꾸 사람들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 편하게 입고 오라 해서 조금 덜 멋있게 입고 왔는데 죄송해요..."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나는 그때 아, 내가 진짜 최애랑 만났구나. 느꼈어. 그래서 "아 괜찮아요! 그렇게 입어도 멋있으세요!" 이런 멘트를 내뱉었고 최애가 그걸 듣더니 내 옆자리에 자연스레 착석하면서 웃었어.
"00씨는 나 멋있어요?"
그때 벙쪄서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맞은편에 앉아있던 지인 커플만 "ㅋㅋㅋㅋㅋ00(최애 이름)이가 00 마음에 들었나 봐. 00이 마음에 안 들면 진짜 약속에 코빼기도 안 나오는 거 알지ㅋㅋㅋ E라는데 숙소에만 있는다니까." 이런 말을 했고 내 최애는 옆에서 민망하다는 듯 "그런 거 하지 말라니까.." 하면서 자연스럽게 수저를 내 앞에 놔줬어. "00씨는 음식 뭐 좋아해요? 저희는 여기 자주 와서 00씨가 먹고 싶은 거 시킬게요." 이러는데 솔직히 키도 조금 크고 잘생긴 사람이 이러니까 말이 잘 안 나오더라. 나도 연애를 안 해본 편이 아니었는데도 저는 다 좋아요...! 야끼우동도 좋고... 이러니까 최애가 저도 그거 좋아하는데. 하면서 앞에 앉은 지인들한테 취향 잘 맞아서 좋네요. 이럼.
저녁 9시쯤에 만나서 새벽 2시까지 얘기하다가 지인 커플은 집이 강남 쪽이어서 자차 끌고 갔고, 최애 숙소는 완전 강남 쪽이 아니어서 택시를 타고 가야한다 했어. 그래서 나 보고 "00이 데려다주고 가고 싶은데 집 어디야?" 이러길래 갑자기 바뀐 호칭에 엄청 당황했어. 아.. 이 사람은 연애 많이 해봤구나가 ㄹㅇ 진짜 느껴지길래 내 집 대충 말하고 혼자 가도 괜찮다 말했어. 그런데 굳이 카택 불러서 같이 가고 오피스텔 앞까지 데려다준 다음 "오늘 좋았는데 디엠으로 또 연락해도 되나? 안 되면 말고요. 00이 생각이 제일 중요하니까." 이러고 택시 불러서 다시 감. 나중에 보니까 내 오피스텔이랑 최애 숙소랑 택시로 25분 거리였더라.
집 들어가자마자 디엠 왔는데 혼자 설레서 이불 뒤집어 쓰고 난리침...ㅋㅋㅋ
아무튼 이렇게 썸타다가 4월부터 2년 1개월 사귀게 됐는데 좋았던 추억들 많지만 제일 좋았던 거 네 개는
1. 망원한강공원에서 새벽 세시에 에어팟 나뉘어 끼고 산책했을 때, 내가 들키면 어떡하냐고 마스크 쓰라고 하니까 너랑 사귀는 거 들켜도 상관없다고 뒤에서 백허그해준 거.
2. 컴백주 음방 다 끝나자마자 콘레드 호텔 그랜드 킹 코너 스위트룸 미리 예약했었으니까 거기로 오라고 한거. 일 다 끝나고 밤에 객실 들어가자마자 티파니앤코 커플링 + 프라다 백 선물해줬을 때.
3. 숙소 때문에 얼른 독립하고 싶다고 한 거, 나한테 팬들한테 버블 이렇게 오는데 하고 보여주다가 팬들 덕분에 이렇게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을 때(이때 개인적으로 감사함을 당연히 여기지 않는 것 같아서 인성이 엄청 조아보였음...)
4. 국내 공백기 때 가끔씩 내가 일 힘들다고 하면 밤에 차 끌고 카페에서 달달한 거 사와서 회사 앞까지 온 다음에 드라이브 가자고 한 거. 내가 오빠네 그룹 노래 틀어달라고 하면 부끄럽다고 머리 긁다가 틀어주고 너 잘 부르니까 불러봐. 이랬던 거.....
지금은 비록 헤어졌지만 너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어서 보고 싶다.... 가끔씩 트위터에 이름 검색해보는데 잘 사는 거 같아서 마음이 미묘함ㅠㅠ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