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S에 양도글, 대포통장 입금 유도
| 인터넷은행 쉬운 가입·해지 '악용'
| 사기 거래 계좌 조회도 속수무책
https://naver.me/5iT09RaN
유명 가수·피아니스트 등 공연 티켓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10억원이 넘는 돈을 가로챈 일당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3일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 5일 사기 등 혐의로 A씨 등 21명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올해 1월께부터 필리핀과 한국에 사무실을 마련해 범행을 공모했다. 아르바이트 구인광고와 불법 대출 광고를 통해 인적정보를 탈취하거나 일정 대가를 지급하고 명의를 대여해 대포통장을 개설했다.
이들은 공연 매표가 끝나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티켓 양도 게시 글을 올렸고, 구매 희망자들에게 대포통장에 입금을 요구했다. 피해자들의 피해액은 적게는 10만원부터 많게는 600만원에 이른다. 현재 확인된 고소인들의 피해액은 3157만4500원으로, 다른 피해자 금액까지 합산하면 1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인터넷 은행의 계좌 가입·해지가 쉽다는 점을 악용한 이른바 ‘무한계좌’ 수법이 사용됐다. 범행 때마다 새로운 계좌를 사용해 피해자들은 사기 거래에 쓰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통상 ‘베테랑’ 팬들은 티켓 거래 시 사기 거래 계좌 조회 사이트에서 반드시 확인을 거치는데 이번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평소 제이팝(J-POP)을 즐겨 듣는 이예림씨(24)는 좋아하는 일본 가수 내한 소식에 지난 3월12일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려다 실패했다. 급한 사정으로 콘서트에 가지 못하는 양도자를 SNS에서 찾아 연락했다. 이씨는 사기 피해 정보공유 사이트인 ‘더치트’에서 판매자 계좌를 조회했는데 정상 계좌임을 확인했고 16만원을 입금했다.
그러나 판매자는 다음날 거래처에 정산 오류가 발생했다며 16만2000원을 보내주면 거래처로 입금해 마무리하겠다고 전했다. 이씨는 돈을 추가로 입금한 후에도 오류가 발생했다며 티켓을 보내주지 않아 더치트에서 계좌를 검색해보니 그제야 사기 사례 5개가 나왔다. 곧바로 판매자에게 환불을 요구했으나 100만원을 입금해야 환불이 가능하다고 답할 뿐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씨는 “공연 날짜가 가까워지는데 티켓은 계속 구해지지 않아 조급했다”며 “그전까지는 티켓 양도 사기를 당한 적이 없었고 양도 실패 시에는 무조건 환불해주겠다고 적혀있어 안심하고 양도받기로 결정했던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다른 피해자들도 똑같은 수법에 사기를 당했다. 유모씨(24)는 일본 밴드 ‘킹누’ 내한 공연 티켓을 양도받으려다가 범죄 피해자가 됐다. 판매자는 티켓을 매매한 화면을 캡처해 보내주며 안심시켰고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유씨는 “판매자의 SNS 계정에 오랜 기간 거래한 내역들이 보였고 게시물과 팔로워가 많아 신뢰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모씨(34)는 지난 2월6일 임윤찬 피아니스트 콘서트 티켓을 구하려고 SNS를 통해 티켓 양도자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판매자는 28만원 입금 내역을 확인한 후 잠적했다. 김씨는 "간절히 원하던 티켓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커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웠다"며 울먹였다.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김송이 변호사는 “일명 무한계좌 등 방식으로 티켓 예매일마다 200~300명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추정되는 피해자만 최소 5000명 이상, 합계 피해액은 10억원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티켓 양도 사기범들은 대포통장을 사용하다 보니 입금명세를 바로 확인할 수 없다. 판매자가 ‘입금명세를 캡처해 달라’고 요청한다면 정상적인 거래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며 “인증된 업체에서 티켓 양도받기를 추천하나 개인 간 거래가 필요하다면 공연별로 마련된 양도 규정을 확인하고 그 절차에 따라 거래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