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고려대학교 럭비부 선수가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받다 열사병으로 숨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폭염 속에 왕복달리기 훈련을 하다 쓰러졌는데, 그럼에도 감독과 코치진은 '엄살'이라며 이 선수를 운동장에 그냥 방치했다는 게 동료 선수들 주장입니다.
박준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지난 19일 고려대 럭비부 김모 선수가 일본 전지훈련 도중 쓰러졌습니다.
정기 연고전에 대비한 훈련이었습니다.
'셔틀런'이라 불리는 왕복 달리기였는데, 김 선수 등 후보선수 약 10명이 대상이었습니다.
[동료 선수 : 터치라인에서 5m 백 다운하고 15m 다운 백, 반대 15m 다운 백, 5m 다운 백…]
훈련은 9시 45분부터 40분 넘게 계속됐습니다.
[동료 선수 : (선수들) 구토 몇 번씩 하는 거 봤고, 거기서 안 뛰면 압박 주고…]
구름이 종종 있었지만 32도가 넘는 무더위였습니다.
[동료 선수 : 햇볕이 내리쬐지 않을 수가 없는 게 등에 화상 입은 OO도 있기 때문에…]
훈련일지엔 오전 11시에 김 선수가 쓰러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같이 뛴 선수들의 말은 다릅니다.
[동료 선수 : 로커룸 들어가서 휴대전화를 확인했던 게 10시 35~36분? (김 선수는) 꿈틀꿈틀거리고 침 질질 흘리고 말 똑바로 못하고…]
그것도 에어컨이 있는 로커룸이 아니라 운동장에 방치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동료 선수 : 쟤 또 그냥 엄살 부리는구나, 포기한다 또. 더위 먹은 거니까 그냥 내버려 둬라. 그게 방치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트레이너가 김 선수를 보살폈지만 전문 의료진은 없었습니다.
30분가량 지나자 김 선수가 다리 경련을 일으켰고 11시가 돼서야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일본 현지 관계자 : 열이 40도까지 올라갔고, (의사 말이) 열사병이 1단계부터 4단계까지 있는데 그 친구가 왔을 때는 이미 4단계였다.]
한때 37도까지 체온이 떨어졌지만 김 선수는 다음날 끝내 숨졌습니다.
고려대 측은 "방치된 게 사실로 드러나면 정기 연고전을 포기하고 감독을 경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숨진 고려대 럭비부 선수의 동료들이 문제 삼는 게 또 있습니다. 선수가 숨졌는데도 감독은 다른 선수들에게 이 사실을 곧바로 알리지 않았고, 다음 달 연세대와의 정기전까지 감독직을 계속 맡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이어서 김휘란 기자입니다.
[김휘란 기자]
고려대 럭비부는 사고 다음 날인 20일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23일에 올 예정이었지만 남은 훈련을 취소한 겁니다.
코치진은 지진과 태풍 때문에 취소했다고 전달했습니다.
[동료 선수 : 지진이랑 태풍 때문에 급하게 좀 귀국을 해야겠다. (김 선수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감독님, 코치님이랑 귀국을 같이할 거 같다.]
김 선수가 숨진 사실도 다른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동료 선수 : 귀국하고 나서 이틀 뒤 오전 10~11시쯤에 소식을 듣고, 그것도 감독, 코치님에게 듣지 않고…]
유족들은 김 선수가 쓰러졌던 당시 같이 있었던 동료들의 얘기는 듣지 못한 채 현지에서 화장을 하고 지난 24일 국내에서 발인까지 했습니다.
유족 측은 "트레이너가 바로 조치를 취했다는 얘기만 들었다"며 "학교가 진상조사를 한다고 했으니 기다려볼 생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감독은 선수들에게 다음 달 예정된 정기 연고전까지 팀을 맡겠다고도 했습니다.
[이모 씨/감독 : 이번 정기전까지는 같이 가자. OO이 내가 죽였잖아. 나한테 기회를 한 번 줘라.]
선수들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발했습니다.
[동료 선수 : 사람이 죽었는데 한 경기를 자기 믿고 따라 달라?]
선수들은 감독의 지휘를 거부하고 학교 측에 경질을 요구하기로 했습니다.
감독은 취재진에게 "선수들의 주장은 사실관계가 왜곡됐다"면서도 "자세한 건 학교에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고대 측은 "일본 경찰에서 사건성이 없다고 확인했다"며 "코치진이 사망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긴 건 아니고 발인 이후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습니다.
박준우 기자 (park.junwoo1@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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