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원이 걸린 치킨게임이다.”
지난 27일 어도어 이사회에서 전격 해임된 민희진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갈등을 본 한 엔터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거액이 걸린 상황에서 양쪽이 한치의 양보도 없는 극한 대립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적법한 절차만 지킨다면 이사회에서 표결로 대표를 해임하는 것은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민 전 대표 쪽은 “일방적인 해임 통보로, 심각한 주주 간 계약 위반”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민 전 대표의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세종 이숙미 변호사는 2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100% 주주 간 계약 위반으로 1천억원 넘는 손해배상 소송감이다. 소송 시점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쟁점은 주주 간 계약의 효력 여부다. 2021년 어도어 설립 당시 민 전 대표와 하이브는 주주 간 계약을 맺었다. 계약 내용을 보면, 하이브는 민 전 대표가 회사 설립 뒤 5년 동안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 직위를 유지하도록 의결권 행사 등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한다. 민 전 대표의 주식매수청구권(풋옵션) 권리도 담겨있다. 관련 조항을 보면 회사 설립 3년 뒤(올해 11월부터) 민 전 대표는 자신이 가진 어도어 지분(18%)의 4분의 3까지 하이브에 특정 가격으로 사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가격 산정 기준에 따라 최대 1천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얘기가 증권가에서 나온다. 내년에 뉴진스 월드투어가 예정돼 있어 흥행 여부에 따라 액수는 더 올라갈 수도 있다.
하이브는 지난달 이 주주 간 계약이 끝났다며 민 전 대표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법원에 해지가 정당하다는 확인을 해달라는 소를 제기했다. 지난 5월 민 전 대표 해임 안건이 상정된 주주총회 때는 민 전 대표가 의결권 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대응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향후 법적 쟁점은 ‘주주 간 계약 해지 권리’에 맞춰질 전망이다. 하이브 쪽은 계약 해지 사유를 별도로 밝히지 않았으나, 계약서에는 민 전 대표가 △고의∙중과실로 어도어에 10억원 이상의 손해를 입혔을 때 △계약을 중대하게 위반했을 때 △배임이나 횡령, 기타 위법 행위를 했을 때 △대표이사로서의 업무 수행에 중대한 결격사유가 발생했을 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명기했다.
엔터업계 일각에선 민 전 대표 해임을 두고 대표직 상실 자체보다 풋옵션 행사를 못하게 하려는 의도다 크다는 해석도 나온다. 현재 하이브는 2021년 발행한 전환사채(CB)의 차환(새로운 채권을 발행해 기존 채권을 상환하는 것)을 위해 투자자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투자한 미래에셋증권이 오는 9월부터 풋옵션(1500억원 규모)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만일을 대비해 실탄을 비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민 전 대표의 풋옵션 행사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자금 업무를 담당하는 한 엔터업계 관계자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민 전 대표 쪽이 풋옵션 카드를 꺼내면 하이브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이브 쪽은 “밝힐 입장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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