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상의 정상화’ 모색한다지만…‘뚝심’ 밀고 나가기엔
| 팬덤·대중 시선 차가워
[일요신문] 과연 비정상적인 내부의 '정상화'가 이뤄질까, 아니면 '비정상의 더 큰 비정상화'란 결말로 마무리될까. 신임 대표이사로 교체된 지 고작 일주일 만에 회사의 유일한 소속 그룹과 팬덤을 뒤흔들며 그들이 구축해 온 세계관을 뿌리부터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연예기획사 하이브(HYBE)의 산하 레이블, 어도어(ADOR) 신 경영진의 '민희진 쳐내기'가 '민희진 지우기'로 이어진, 다소 무모한 행보를 둘러싼 이야기다.
8월 27일 걸그룹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가 이사회를 열어 김주영 어도어 이사회의장(하이브 CHRO·최고인사책임자)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하이브 측 인사로만 구성된 어도어 이사회의 표결로 이뤄진 선임이었기에 사실상 어도어에 대한 하이브의 '완전 장악'으로 평가된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민희진 전 대표는 프로듀서로서 뉴진스의 프로듀싱을 그대로 맡게 된다는 것이 당시 '신(新) 어도어 경영진'의 이야기였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민 전 대표의 프로듀싱 계약은 고작 '2개월 6일' 동안만 유지되는 초단기 계약이었다. 뉴진스가 2025년 월드 투어를 앞두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이 같은 계약을 제안했다는 건 사실상 민 전 대표가 뉴진스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만들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민 전 대표는 "의도적으로 '프로듀서 계약 거절을 유인'해 또 다른 언론 플레이를 위한 포석으로 삼고자 하는 행위"라며 분노했다.
이처럼 프로듀서로서도 민희진이 지워질 위기에 처한 사이, 어도어는 이른바 '민희진 사단'으로 불리는 어도어 협업체들과도 '절교'를 이어나가고 있다. 9월 2일 뉴진스의 주요 뮤직비디오를 연출해 왔던 돌고래유괴단의 대표 신우석 감독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어도어 신 경영진의 요구에 따라 돌고래유괴단이 작업해 업로드했던 뉴진스 뮤직비디오 및 관련 영상 및 채널, 앞으로 업로드 예정이었던 영상은 모두 공개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돌고래유괴단과 뉴진스 관련 비공식 유튜브 계정인 '반희수' 채널에 올라온 뉴진스 관련 콘텐츠는 2일 기준 전부 삭제됐다.
신 감독은 'Ditto'(디토), 'OMG', 'ETA', 'Cool With You'(쿨 위드 유) 등 뉴진스의 대표 곡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은 바 있다. 대중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뉴진스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이 뮤직비디오들이 큰 영향을 끼쳤던 만큼, 뉴진스라는 그룹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콘텐츠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Ditto'에 등장하는 주인공 '반희수'라는 인물을 이용해 현실에서도 개설한 유튜브 채널에서 'Ditto' 세계관과 이어지는 추가 영상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독특하면서도 신선한 마케팅이었기에 당시 K-팝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었다.
이처럼 현재의 뉴진스를 이루고 있는 중요 콘텐츠를 아무런 협의 없이 삭제하라고 요구한 어도어 신 경영진에 대해 "K-팝은 물론이고 아이돌 산업에 전혀 이해가 없는 인사를 경영진에 앉혔기 때문에 일어난 터무니 없는 일"이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어도어 측도 즉각 반박에 나섰다. 자신들이 삭제를 요구한 것은 돌고래유괴단이 게재한 'ETA' 뮤직비디오의 디렉터스 컷(감독판) 영상일 뿐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과거 광고주와도 이견이 있었던 부분이 포함된 편집물인 데다 광고주와의 협의 없이 무단으로 게시된 것이기에 뉴진스의 저작권자인 어도어가 마땅히 시정을 요구했을 뿐이란 주장이다. 돌고래유괴단이 과거 올렸던 모든 영상의 삭제나 중지를 요구한 사실은 없다며 돌고래유괴단 측이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신 감독이 3일 오후 재차 반박에 나서면서 이 사태는 '진실공방'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신 감독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당시 (뮤직비디오) 제작을 위해 모인 3사는 팬들을 위해 디렉터스 컷을 돌고래유괴단 채널에 공개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현재 어도어 경영진은 돌고래유괴단이 디렉터스 컷을 무단으로 게시했다는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며 "대체 왜 입장문에 상관도 없는 제3자를 끌어들여 언론플레이를 하나? 이는 광고업계의 불문율을 무시하는 처사임과 동시에 비즈니스의 기본인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어도어에 귀속된 저작권과 초상권을 가진 영상은 공식 계정에만 공개할 수 있고 제3자 채널에는 존재할 수 없다며 삭제 요청을 해온 것은 어도어"라며 "일요일 저녁에 일방적으로 월요일 오전까지 삭제하지 않으면 내용증명을 보내고 위약벌로 용역대금의 2배를 청구하겠다며 협박을 해놓고 이제 와서 뭐라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신 감독은 그러면서 "당시의 합의 사항도 모르면서, 대체 뭐가 불만이길래 돌고래유괴단을 계약 위반 및 허위사실 유포자로 만드나? 제가 (민희진 전 대표를 위한) 탄원서를 써서 이러는 건지, 하이브의 뮤직비디오 제작을 거절해서 인지, 뉴진스 지우기에 나선 것인지 모르겠지만 더러운 언론 플레이로 진실을 호도하지 말라"고 꼬집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어도어는 옛 경영진과 협업체인 돌고래유괴단, 그리고 광고주 3자간의 신뢰에 따라 '협의'로 이뤄진 사안에 임의대로 제재를 가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상황은 결국 팬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뉴진스의 팬덤 버니즈는 3일 입장문을 내고 김주영 어도어 신임대표를 향해 "부임 첫 주부터 해당 아티스트와 가장 각별했던 외주 업체와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뉴진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팬들에게 보내는 소중한 영상마저 빼앗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도대체 어디서 배워온 경영 방침인가. '뉴진스를 아낌없이 지원하겠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이 말에 단 한 부분이라도 진심을 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고 강력 비판했다.
'민희진 걸그룹'으로 시작돼 대중들에게도 그렇게 각인돼 있는 만큼, 뉴진스에게서 민희진의 모든 것을 떨쳐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업계의 중론이기도 하다. 더욱이 민 전 대표와의 법적 분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스란히 떠안은 하이브가 주는 여전한 거부감도 무시할 수 없다.
모회사인 하이브도 보이는 행보와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시원하게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처지다. 현재 하이브 산하 레이블 소속 대표 아티스트 가운데 방탄소년단(BTS·빅히트 뮤직 소속)은 음주운전 혐의의 슈가를 두고 데뷔 이래 최초로 팬들 사이 거대한 분열이 일어났고, 엔하이픈(빌리프랩 소속)은 강행군으로 아티스트 혹사 문제가 불거져 국내외 팬덤 보이콧이 이어지고 있으며, 르세라핌(쏘스뮤직 소속)과 아일릿(빌리프랩 소속)은 앞선 하이브-민희진 분쟁에 휘말려 직간접적으로 입은 상처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아티스트 팬덤의 반발은 물론, 대중들의 반감까지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입장상 결단에 좀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증권가에서는 2025년까지 하이브의 성장 모멘텀(동력)을 방탄소년단 완전체 컴백과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음악 외 다양한 사업의 수익 발생에 두고 있는데 방탄소년단은 치명적인 '슈가 리스크'가 발목을 잡고, IP사업의 경우는 타 엔터사들도 그렇듯 아직 도전 단계에 머물러 있어 성장 전망이 그리 밝지 만은 않다. 이런 가운데 향후 미래 가치가 여전히 풍부하게 점쳐지는 뉴진스를 '실패한 실험대'에 올리는 무모한 결단을 내리는 것은 하이브에게도 소득 없는 모험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탈(脫) 민희진'과 '구체제 유지'의 기로에 놓인 어도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하이브의 성장세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편, 뉴진스의 팬덤 버니즈는 4일 1445명의 서명을 모은 공개서한을 김주영 어도어 신임대표와 이경준·이도경 어도어 사내이사, 김학자 어도어 사외이사, 이재상 하이브 신임 CEO(최고경영자)에게 보냈다. 해당 서한에서 버니즈는 "어도어 설립과 뉴진스 데뷔 직후부터 민희진 전 대표 하에 구축된 뉴진스의 성장과 지원에 초점이 맞춰진 어도어의 인력과 체계가 변경·훼손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며 △뉴진스 관련 사항은 멤버들의 의견 최우선 반영 △주주 간 계약에 따라 2026년 11월까지 민희진 임기 보장 △뉴진스 멤버들에 대한 명예훼손·모욕·개인정보 유출 등에 대한 법적 대응 등을 요구했다.
일요신문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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