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슈가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후 일부 해외 팬들은 차량에서 술병을 들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슈가를 옹호하기 위한 이른바 '슈가 챌린지'였다.
#장면2. 가수 김호중이 뺑소니 사고로 입건된 후 일부 팬들은 무작정 그를 감쌌다. 음주운전 현장 이탈 후 술을 더 마시는 '술타기' 등을 방지하는 '김호중법'을 만들겠다는 개정안이 발의되자 팬들은 해당 국회의원실로 전화해 항의하고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장면3. 모회사 하이브와 자회사 어도어 민희진 전 대표 간 분쟁이 불거지고 소속 걸그룹 뉴진스 멤버들이 힘들어하는 상황 속에서 팬덤 버니즈는 하이브와 한 연예매체를 고소했다.
최근 연예계에서 연이어 벌어진 일이다. 이 모든 사안에 '팬덤'이 포함돼 있다. 연예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체육 등 모든 영역에서 '팬덤화(化)'가 진행되는 모양새다. 이는 지지 세력을 넓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 팬덤은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정도의 요구를 하면서도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오히려 가치를 잃는 모양새다. 팬덤의 목소리는 과연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을까?
팬은 과거에도 있고, 현재도 존재한다. 가수 조용필, 남진, 나훈아 등은 '오빠부대'의 원조라 불린다. 그들을 보기 위해 수백∼수천 명이 모였고,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팬덤'이라는 표현은 비교적 최근 등장해 널리 쓰이고 있다. 이는 '지지자'를 뜻하는 영어 'fanatic(fan)'과 '영지(領地) 또는 나라'를 뜻하는 접미사 'dom'의 합성어다. 즉 특정한 인물, 이념, 성향을 좇는 이들이 한데 모여서 '세력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정치는 세몰이에서 시작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른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 이가 권력을 쥔다. 이는 대중이 '합리적 판단을 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더 많은 이들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실체적 정의에 가깝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론이 그대로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인물'이 그 중심이 됐을 경우는 더 그렇다. 해당 인물의 도덕적 가치보다는 외모나 그가 가진 재능 등의 매력에 더 치중하기 때문이다. 특히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연예인을 향한 팬덤의 경우 더욱 맹목적인 성향을 보이곤 한다. 객관적 판단에 따르기보다는 '무조건 감싸기'에 매몰되곤 하기 때문이다.
슈가나 김호중의 사례가 그렇다. 음주운전은 사회적으로 가장 지탄받는 사안 중 하나다. '잠재적 살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엄하게 다스린다.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공무원 등 공직에서 일하는 이들은 인사 고과 등에도 크게 타격을 입는다. 유명 연예인의 경우 음주운전 적발 후 수년 간 활동이 정지되는 경우가 적잖다.
하지만 슈가나 김호중을 바라보는 일부 팬덤은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비롯해 그동안 많은 기부를 하고, 대중에게 즐거움을 줬다는 등의 면죄부를 끌어온다.
그들의 거짓말 논란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슈가는 '전동 스쿠터'를 '전동 킥보드'로 지칭하며 사안을 축소했다는 질타를 받았고, 김호중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즉,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는 자세보다는 죗값을 덜려고 노력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성 팬덤은 요지부동이다.
물론 뉴진스의 경우는 다른 사례다. 뉴진스는 철저히 피해자다. 소속사 어도어와 모기업 하이브의 분쟁 속에서 애먼 속앓이를 하고 있다. 몇몇 멤버들이 팬덤 플랫폼을 통해 이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당연히 팬들로서는 속이 상한다. 하지만 이 화살을 하이브로 돌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 처사일까?
하이브와 민희진 전 대표의 싸움은 복잡하다. 배임 관련해 이미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민 전 대표의 기자회견 등을 통해 알 수 있듯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민 전 대표의 주장도 존재한다. 물론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하이브가 언론을 통해 거듭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 또한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누구의 손을 쉽게 들어주기 힘든 상황 속에서 팬덤이 법률대리인까지 내세우며 고소장을 제출한 이유는 무엇일까? 뉴진스가 민 전 대표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지상정이다. 팔이 안으로 굽듯 오래 협업한 민 전 대표에 대해 애착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팬들이 그런 뉴진스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도 순리에 맞다.
하지만 하이브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하는 등 실력 행사에 나서는 것은 성격이 다른 문제다. 하이브와 민 전 대표 간 대립에서 법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 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일부 팬덤의 이런 모습은 '뉴진스가 지지하기 때문에 민 전 대표가 옳다'는 식의 그릇된 논리로 귀결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런 팬덤의 모습은 해당 아티스트의 이미지까지 훼손할 수 있다. 객관적 눈으로 이 사태를 바라보는 대중 입장에서는 이런 팬덤에 둘러싸여 보호를 받는 느낌의 아티스트에게 고운 시선을 보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부모의 과잉 보호는 아이를 버릇없게 키울 수 있다. 이런 간단한 진리를 되새겨 볼 시점이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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