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조치도 없다
"선생님, 이것 좀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 사진이 돌아다녀요." 9월2일 시사저널과 통화한 대구 서구의 한 중등교사 김명진씨(가명·여)도 자신의 사진이 텔레그램 딥페이크 대화방에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약 한 달 전 또 다른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인 한 여학생이 알려주면서다.
'지인방'이라는 대화방에는 김씨 사진을 올린 가해자가 '지인 능욕해 달라'는 등 딥페이크 성착취물 제작을 의뢰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씨와 사건을 제보한 재학생, 해당 학교 졸업생 등 총 5명이 유사한 피해를 당했다. 김씨는 범행이 발생한 대화방에 들어가 직접 내용을 확인했다고 한다. 당시 약 2200명이 들어있던 대화방에선 같은 학교 학생과 교사의 사진이 오갔다. 이에 "능욕해 주실 분" "△△△ 약점 있는데 협박해 주실 분" 등 모욕글이 끝없이 쏟아졌다. 한 학교 예체능 교사 얼굴에 전신 나체 사진을 합성한 성착취물이 유포되기도 했다.
수사 결과 가해자는 해당 중학교 2학년생 B군이었다. 그는 김씨가 작년 한 해 동안 가르친 학생이었다. 김씨는 곧바로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를 신청했지만 B군에 대한 처벌은 등교 중지 5일, 특별 교육 10시간 등에 그쳤다고 한다. 김씨는 "(학교에선) 해당 조치를 내린 걸로 상황이 종료됐다. 학교폭력과 달리 교권 침해는 학교 측 조치에 만족하지 못해도 더 이상 방법이 없다. 후속 절차가 없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학교에 딥페이크 TF까지 꾸리며 나선다는데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는 변화는 없다"고 비판했다.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교내 경각심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특히 피해자에 대한 익명 보장이 허술해 2차 피해까지 속출했다. 김씨는 "한 동료 교사는 제 실명을 거론하면서 이번 사건을 학생들에게 누설하기도 했다"며 "제가 너무 지쳐 이사를 결심했다는 등 사실과 다른 소문까지 퍼지면서 심적으로 더 힘들어졌다"고 호소했다. 이어 "학교 측은 제가 SNS에 남들 보라고 올린 사진을 그 (가해) 학생이 퍼나른 것뿐이라는 분위기"라며 "저는 분명히 성범죄라고 느끼고 있는데 남들은 그렇지 않더라"고 털어놨다.
김씨는 또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시켜주길 바라지만 (학교는) 그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며 "특히 피해 학생 중에는 B군과 같은 반인 여학생도 있는데, (B군이 등교 중지 조치가 끝나고) 돌아오는 상황에 대해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해당 사건의 경우 B군이 의뢰한 성착취물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텔레그램 운영자가 제작한 성착취물은 주로 개인 대화방을 통해 배포됐는데, 현재 B군이 '지인 능욕'을 의뢰한 사실만 확인됐고 합성물에 대한 증거가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B군에 대해 모욕죄 등 혐의는 성립될 수 있으나 디지털 성범죄 혐의로는 처벌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와 관련해 김씨는 휴대전화 압수수색 등 경찰 수사가 더디게 진행된 점을 지적했다. 그는 "만약 경찰이 가해자를 검거하고 바로 휴대전화를 압수했다면 합성물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사건을 신고한 뒤 경찰에 여러 차례 (가해자) 포렌식을 요청했는데 1~2주가 지난 후에야 시도했고, 가해자는 그새 휴대폰을 없앴다"고 주장했다.
'딥페이크 공화국' 된 한국…해외는 어떨까
단 1분이면 만들어지는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해자는 전국적으로 수천 명에 달한다. 경찰청이 딥페이크 성범죄 집중단속을 시작한 지 단 5일 만에 118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검거된 피의자 7명 중 무려 6명이 10대다. 이미 학생들은 "까불면 너도 능욕해 버린다"는 무서운 농담을 거리낌 없이 주고받고 있고, 학부모들은 "내 아이가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텔레그램을 통해 대놓고 일어나는 범행에, 걸리더라도 처벌은 '솜방망이'다.
한국은 '딥페이크 성범죄 취약국 세계 1위'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가장 큰 이유로 처벌 공백이 꼽힌다. 현재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은 2019년 'N번방' 사건 이후 만들어진 '성폭력처벌 특례법 14조 2항'뿐이다. 이 조항은 특정인의 얼굴·신체·음성을 대상으로 한 영상물 등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형태로 편집·합성·가공하는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지난 5년간 딥페이크 성범죄로 기소된 71건 가운데 35건은 집행유예에 그쳤다.
심지어 합성물을 유포할 목적이 입증되지 않으면 처벌하기가 어렵다. 시청 및 소장은 처벌 조항조차 없다. 왜 그럴까. 해당 법안이 만들어진 4년 전 국회 회의록을 들여다봤다. 입법 당시 '유포 목적이 입증됐을 때로 처벌을 제한하는 건 협소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유명인들 놓고 혼자 작업할 수 있는데 처벌이 너무 과하다" "예술작품이라 생각해 만들 수 있지 않냐"는 반박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N번방' 사건의 중대성을 두고도 딥페이크 성범죄의 잠재적 위험을 도외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면 해외에서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대해 훨씬 엄격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공유·유포 여부와 상관없이 제작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또 유죄 판결을 받을 시 '무제한 벌금(unlimited fine)'과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미국은 피해자에 초점을 둔 민사 구제책을 시행 중이고, 독일은 지난 7월 형법 개정안을 발의해 딥페이크로 인한 인격권 침해와 처벌 규정을 강화했다. 특히 범죄 예방 및 증거 보전을 위해 범행에 사용된 장비를 몰수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한편 윤석열 정부는 텔레그램과의 협의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불법 정보에 대한 자율 규제를 위해 '상시 핫라인'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TF를 꾸리고 한동훈 대표가 강조해온 촉법소년(형사 처벌을 안 받는 10세 이상 14세 미만) 연령 기준 하향, 허위영상물 처벌(최대 징역 5년)을 불법 촬영물 처벌(최대 징역 7년)에 준하는 수준으로 강화하는 방안 등을 논의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조인철 의원이 가해자 처벌 및 플랫폼 책임 강화를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나섰다.
이에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시사저널에 처벌 강화만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보호관찰법상 딥페이크 성범죄 피의자에게 심리상담 명령 등 준수사항을 추가할 수 있다"며 "범죄의 피해 양상을 정확히 인지시키고, 잘못을 뉘우치도록 하는 실질적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피해자들에 대해선 "'피해 영향 진술서'를 법원에 제출해 가해자의 처벌 수위를 높이거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내도록 시도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