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 박정선 기자] 케이팝 산업의 발전에서 팬덤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아이돌의 성공을 좌우하고,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팬 아트, 팬픽, 커버곡 등 다양한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고 SNS 마케팅에 직접 나서는 등 ‘행동’으로써 케이팝 문화 확장에 기여한다.
특히 시대가 변화하면서 팬덤이 추구하는 가치에도 변화가 생긴 점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자신이 응원하는 아티스트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마냥 옹호하던 과거와 달리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옳은 길로 가도록 질책하는 건 매우 반가운 변화로 읽힌다.
케이팝 포 플래닛은 팬덤의 긍정적인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단순히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응원하는 것을 넘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도 서울 용산구 하이브 본사 사옥 앞에서 캠페인 퍼포먼스 ‘플라스틱 앨범의 죄악’(Plastic Album Sins)을 진행했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무분별한 음반 판매 전략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하고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기획됐다.
지난달 국내외 케이팝 팬 1만2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가장 많은 응답자(42.8%)가 이러한 마케팅을 최악의 상술로 꼽았다는 것을 바탕으로, 앨범을 많이 구매할수록 팬 사인회 참여 확률이 높아지는 마케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표지만 바꿔 앨범을 여러 종류 출시하거나 원하는 포토카드가 나올 때까지 앨범 구매를 유도하는 관행 역시 비판했다.
이들 외에도 팬덤은 아티스트의 생일이나 데뷔 기념일 등 특별한 날을 맞아 기부 캠페인을 진행하거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봉사활동, 환경 보호 캠페인 등 긍정적인 케이팝 팬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진행 중이다.
다만 팬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오는 효과가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앞서 하이브 앞에서 진행된 케이팝 포 플래닛의 캠페인과는 달리, 같은 장소에서 불과 일주일여 전엔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은 방탄소년단(BTS) 슈가를 옹호하며 ‘7인의 BTS를 지지한다’ ‘슈가를 믿는다’는 등의 메시지를 담은 트럭 시위가 진행됐다. 해외의 케이팝 팬덤을 주축으로 한 움직임이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 하이브의 자회사인 어도어 민희진이 대표이사직에서 해임되자 이를 반대하는 팬덤이 트럭 시위를 벌였고, 이후 탄원서 서명 모집에도 나섰다. 팬들의 입장에서 경영권 싸움에 희생된 뉴진스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질 순 있지만, 아직 법적으로 잘잘못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팬덤이 실력 행사에 나서는 것은 옳은 팬덤의 모습으로 보긴 어렵다. 사실상 ‘뉴진스가 지지하기 때문에 민 전 대표가 옳다’는 식의 논리로 기업의 인사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이다.
이에 앞서 에스파 멤버 카리나의 열애로 인해 불거진 팬덤의 행동도 전형적으로 막강한 팬덤의 영향력을 무기 삼은 부정적 사례로 꼽힌다. 열애 소식이 알려졌을 당시, 팬덤이 “당신은 왜 팬을 배신하기로 선택했나. 직접 사과하지 않으면 하락한 앨범량과 텅 빈 콘서트 좌석을 보게 될 것”이라는 협박성 내용을 담은 트럭 시위에 나서면서다. 이 같은 팬덤의 행동에 카리나는 결국 사과했고 외신은 이를 두고 “악명 높은 케이팝 산업”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카리나는 연인과 결별을 택했다.
‘행동’하는 케이팝 팬덤의 막강한 영향력은 케이팝의 글로벌 성장을 이끈 주역으로 꼽히지만, 동시에 건강한 팬덤 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이치에 맞지 않는, 또 아티스트를 향한 맹목적 팬심에서 발현되는 행동들은 장기적으로 아티스트의 이미지까지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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