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 운전으로 탑승객을 사망케 한 70대 택시 운전사 A씨가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다. 최근 고령 운전자의 교통 사고가 잇따르자 “고령 택시 운전자들의 면허 취득 기준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서부지검은 차선 변경 과정에서 과속하다 사고를 내 탑승객을 사망에 이르게 한 택시 운전사 A씨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혐의로 지난 19일 불구속 송치돼 곧 기소할 예정이라고 24일 밝혔다. 탑승객은 PD 이주형(35)씨로, 이씨는 인기 예능 ‘삼시세끼 고창 편’ ‘신서유기’ 등의 연출에 참여한 인물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택시 운전자 A씨는 지난달 22일 밤 12시 28분쯤 서울 마포구 난지천공원 인근 상암 월드컵 파크 3단지 앞 도로에서 앞 차를 추월하기 위해 좌측 추월차로가 아닌 오른쪽 주행차로(3차로)로 차로 변경을 했다. 이어 택시는 약 5초 뒤 앞쪽에 주차돼 있던 관광버스 좌측 후미를 들이받고 주행 중이던 경차와 충돌했다. A씨는 이 과정에서 과속 운전을 했으며, 음주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관광버스를 들이받기 전까지 감속을 위한 별다른 시도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수석 뒷자리에 탑승하고 있던 이씨는 머리를 크게 다쳐 현장에서 즉사했고, 운전자 A씨는 경상을 입었다. 이씨의 유족 측은 당시 이씨가 금요일까지 넷플릭스에 납품할 영상 작업을 마무리 짓느라 야근을 하고 퇴근하던 중, 이 같은 변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올해 12월 첫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A씨와 같은 고령 택시운전사가 저지르는 교통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70대 택시 운전자가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에 돌진해 보행자와 탑승자 등 4명의 부상자를 내 23일 검찰에 넘겨졌다. 지난해 부산 북구 만덕동에서는 70대 택시 운전자가 시속 50km 제한인 시내 도로에서 시속 100km 안팎의 속도로 과속해 6중 충돌사고를 냈다. 같은 해 강원도 춘천에서도 60대 택시 기사가 불법으로 유턴하다 배달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 오토바이 운전자를 치어 숨지게 해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다. 65세 이상의 고령 택시 운전자 수는 올해 기준 11만5000명으로 전체 택시 종사자 수의 47%를 차지하는데, 이는 2015년(5만4000명·19%)의 2배 수준이다. 서울시 개인택시 기사의 평균 연령은 64.7세다.
이에 고령의 택시 운전자들의 면허 취득 기준을 재정비하고, 실효성 있는 예방 대책 등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고령의 택시 운전자들은 아무리 오래 운전해도 기기 운전 조작이나 판단 실수가 잦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전기차는 제로백(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에 걸리는 시간)이 짧아서 감각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버스나 화물차는 취업 기준이 높고 ABS(긴급제동장치)도 의무적으로 설치되고 있는 데 반해 택시는 면허 취득의 문턱이 낮고 안전장치 설치도 의무가 아니라서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근 택시의 교통법규 위반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발생한 전체 교통사고 59만여 건 중 택시의 운전자 법규 위반으로 발생한 사고 건수는 3만7227건에 달한다. 3년 동안 291명이 사망했고 5만2976명이 부상했다. 택시의 사고 건수는 사업용 차량으로 분류되는 버스(1만7422건)・화물차(1만8048건) 사고 건수와 비교해도 2배가 넘는다. 특히 화물차 운수종사자는 42만명으로 택시 운수종사자(23만명)보다 2배 가까이 많지만 택시의 사고 건수는 화물차 사고의 2배가 넘는 것이다.
택시의 법규 위반으로 발생한 사고 건수를 항목별로 들여다보면 ‘안전운전의무불이행’이 1만9112건으로 가장 높았다. 신호위반(4926건)과 안전거리미확보(4870건), 교차로운행방법위반(2231건)이 그 뒤를 이었다. 2021년부터 운전자 법규 위반과 따로 집계되는 ‘과속’의 경우 최근 2년(2022~2023년) 간 253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망자와 부상자는 각각 48명, 436명으로 택시 과속 사고의 치사율은 약 19%에 이른다.
구동완 기자 visual@chosun.com
강지은 기자 jieun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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