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와 스페인 사이에 500년 전 제국주의 침략과 정복을 둘러싼 오랜 갈등이 다시 불거졌다.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 당선자는 25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에 올린 두 장 분량의 글에서,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가 ‘제국주의 침략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음달 1일 열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하지 않겠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한 주 전 멕시코 정부는 펠리페 6세가 빠진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스페인 정부는 다시 한 번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라며 취임 행사에 어떠한 외교사절도 보내지 않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오기 전 멕시코 일대에는 아스텍 문명이 번성하고 있었다. 당시 스페인 정복자들은 1521년 아스텍을 정복한 뒤 그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의 폐허 위에 멕시코 시티를 세웠다.
셰인바움 당선자는 이날 “펠리페 6세가 2019년 보낸 현 멕시코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편지에 답장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 취임식에는 페드로 산체스 총리만 초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셰인바움 당선자와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모두 진보성향의 정당인 국가재건당(모레나) 소속 정치인이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당시 편지에서 펠리페 6세에게 ‘두 나라가 새로운 우호관계를 열어나가기 위해 과거 스페인이 멕시코 정복 과정에서 저지른 잔혹한 인권침해를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라’고 요청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2019년 당시 과거사 관련 편지를 펠리페 6세에게만 보낸 건 아니다. 그는 당시 1300년대 이뤄진 아스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건설과 1521년 스페인의 아스텍 정복, 1821년 멕시코의 독립 등 굵직굵직한 멕시코를 둘러싼 역사적 사건을 묶은 대형 행사를 2021년 개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는 그 행사의 일환으로 펠리페 6세뿐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편지를 보내, 당시 제국주의 정복 시절 가톨릭의 잘못을 인정하고, 유럽으로 가져간 원주민 유물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스페인 외교부는 과거 일을 “현대의 생각에 비춰 판단해선 안된다”고 맞섰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그 편지에는 직접 답하지 않았지만, 다른 곳에서 “신의 이름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저지른 많은 중대한 죄악”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 적이 있다.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유엔총회 참석 중에 취재진으로부터 “과거 제국주의 침략을 인정하고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으나 직답을 피했다. 대신 그는 “국왕 배제는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우리가 멕시코 정부에 항의의 표시로 어떤 외교사절도 대통령 취임식 행사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알린 건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