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현상이 무척 기괴하다는 결론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1. 라이즈 승한은 무슨 행위를 했는가
제일 대표적으로 지탄받는 것은 '데뷔 전 여자친구와 모텔에 갔다는 사실'과 '데뷔 전 라이브 방송에서 흡연을 하고 어떤 아이돌을 욕했다는 사실'이다.
안했으면 좋았을 행동이고 경솔했지만, 사람은 누구나 그런 실수를 하면서 살아간다.
(물론 인터넷 특성상 길빵은 아무도 안하고, 살면서 악플 한번도 달아본 적 없다는 사람들만 있겠지만... 그리고 본인이 아이돌 연습생으로 들어갔다면 완벽하게 사생활 관리를 성공했었다고 하겠지만...)
저 두가지 행위가 엄청난 폭력이나 불법인 것처럼 떠드는 걸 보면 좀 황당해지려고 한다.
저건 그냥 불량한 행위에 불과하고 아무리 혹독하게 평가를 하려고 해도 그냥 에이 왜 저래... 하고 말 일이기 때문에.
이 모든 건 '아이돌'이라는 사회적 위치에 팬들이 자의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율법 같은 것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다른 직업군을 예로 들어보자.
a. 인기많고 유명한 남고생이 여자친구랑 모텔에 갔었고 담배도 피웠다
b. 인기많고 유명한 남고생 래퍼가 여자친구랑 모텔에 갔었고 담배도 피웠다
c. 인기많고 유명한 남고생 락밴드 보컬이 여자친구랑 모텔에 갔었고 담배도 피웠다
d. 인기많고 유명한 남고생 야구선수가 여자친구랑 모텔에 갔었고 담배도 피웠다
아무 일도 아니다. 아주 정숙하진 않네... 근데 사생활이니까... 그러고 말 일이다.
2. 지독한 도덕적 기대도 '아이돌'이라는 직업적 특성에 불과한 일인가?
저런 예시를 들면 누군가는 꼭 이런 도덕적 기대치가 붙는 게 '아이돌'이다 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
모든 걸 다 특정직업군에 따르는 문화적 차이라고만 하면 우리는 바로 인간적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어떤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왜 누군가의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인생을 갈아넣어야하는가?
이것은 아이돌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이나 미화원이나 호텔 서비스직이나 비행기 승무원 등 여러 직업에서 생기는 문제다.
'00이라는 일을 하고 있으면 당연히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켜야 하는 거 아냐?
그게 당신 일 아냐?'
나는 예전에 아시아나 비행기를 탔는데 내 자리에서 영화가 제대로 안나온 적이 있다.
안나오면 안봐야지... 그러고 있었는데 승무원들이 "너무 친절하고 죄송하게" 나를 대해서 마음이 엄청 무거워진 적이 있다.
나는 그 정도의 친절을 바라지 않는다. 어떤 직업군에게도 그 정도 친절을 받고 싶지 않다.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다.
심지어 승한의 저 이슈는 아이돌 데뷔 전에 생긴 일이고, 반성하고 넘어가면 그만인 일이다.
아이돌 활동 중에 그랬다 할지언정, 그 경솔함은 지탄받고 반성하면 되는 일이다.
지금 유느님으로 불리는 유재석도 개그 컨테스트에서 상을 탔을 때 귀를 후비면서 나갔다. 누구에게나 미숙한 시절은 있다.
3. '아이돌'이라는 직업군에게, 완성된 인격을 구매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내가 제일 문제삼는 것은 연예인에게서 인격을 구매하려는 흐름이다.
그리고 아이돌은 대개 10대에 데뷔를 하며 대다수 사람들은 10대에 인격이 완성되어있지 않다.
10대 후반에는 철이 들지도 않을 뿐더러, 춤과 노래만 연습하느라 하루를 보낸 사람들에게는 인격 수양의 기회조차 없다.
그리고 인격수양이 덜 된 아이돌들도, 자신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늘 감시당하고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다.
다른 아이돌들은 저런 문제를 안일으킨다고 비교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는 하는데 너는 왜 못하냐, 부모들이 자식 성적을 끌어올리려고 할 때 가장 자주 쓰는 비교의 폭력이다.
그걸 아이돌의 인격에 적용할 수 있을까? 혹은 아이돌의 이미지에 적용할 수 있을까?
4. 아이돌과 순결
은지원이 유튜브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기가 예능을 촬영하면 거기에 항상 자신을 보러 온 팬들이 있었는데 결혼하니까 아예 촬영장에 나타나질 않더라
그런데 자기가 이혼하니까 다시 촬영장에 그런 팬들이 나타나더라...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였지만 진짜 기괴했다. 은지원 나이가 몇인데... 그 팬들의 나이는 대체 몇이고?
한국에서 '순결주의'가 가장 강한 곳은 개신교가 아니라 (내 경험상 교회는 연애의 장이다) 아이돌 업계다.
그걸 모든 사람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집단광기처럼 생각이 들 정도다.
그게 정말 유사연애의 문제라면, 유사연애를 기대하지 않는 팬들은 쿨하게 넘기면 되는데 그러질 않는다.
어떻게 아이돌이 연애를? 하면서 아이돌 당사자와 상대방을 비난하고 모욕하는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아이돌은 연애를 하면 안된다, 연애를 하는 걸 들키면 안된다는 걸 너무 당연한 덕목으로 생각한다. 왜? 사람인데?
누군가의 인생과 선택을 자신이 소비하는 이미지로 전부 간주하고 그걸 아예 금지하며 그걸 어기면 배신당했다고 울부짖는다.
그렇게나 은혼 오타쿠 전쟁 짤을 올리면서도 그게 자기 이야기인줄은 꿈에도 모른다.
5. 멤버방패라는 괴악한 표현 좀 안썼으면 좋겠다
본인이 어떤 멤버가 아이돌에 다시 복귀하는 게 너무 싫을 순 있다.
그런데 그 멤버의 복귀를 반기고 같이 하겠다는 다른 멤버의 의견을 '방패'라고 하는 건 정말 뜨악하다.
연습생 시절 동고동락하면서 같이 잘 해보자는 멤버에 대한 정이나 의리가 아예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건지?
그럼 그 멤버가 '예 우리 팬분들이 원하는 거니까 저는 그 멤버가 저희 팀에 다시 안돌아왔으면 좋겠어요~' 라고 생각한다는 건가?
아이돌이 개인의 의견을 내는 걸 '방패'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너무 그 아이돌한테 실례이고 무례다.
아이돌도 다 생각이 있고 가치관이 있다. 그게 맞든 틀리든.
그런데 회사가 멤버를 방패로 쓴다 어쩐다 이런 의견은 그냥 라이즈 팀 전체를 회사의 꼭두각시로 취급하는 거다.
팬들이 이럴 수록 라이즈 전체가 겁에 질려간다.
데뷔 전에 담배 피웠네 여자친구랑 모텔갔네 이랬다면서 누군가를 아예 팀에서 퇴출을 시키려는 사람들의 권력이, 남은 라이즈 멤버들 본인들에게 어떻게 보일 것 같은데...??
승한이 저 못된 놈은 치워버리고 우리끼리 잘하자 화이팅!! 이러겠나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흠잡을 거리가 생기고 이해해주기 싫으면 나도 쫓아내겠지, 하면서 불안해할까?
우리 00는 누구랑 달라요 이럴려고? ㅎㅎ
6. 아이돌은 자기 인생까지 파는 사람이 아니다
앨범을 사주고 굿즈를 사준다고 누군가의 인생을 통째로 살 수 없다.
아이돌이라면 이래야지...? 그것도 본인들이 자의적으로 정해놓은 본인들 말이지 무슨 사회적 질서나 윤리가 아니다.
이미지를 해쳤네 어쨌네 하는 것도 다 그냥 본인들이 그렇게 느낄 뿐이지 대중들은 일말의 관심도 없다.
아이돌에 대한 연애나 흡연 관련한 요구는 철저하게 상품 이미지에 관련된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 딴 해묵은 규율을 본인들이 상품 이미지에 결속시킬수록, 나쁜 친구들이랑 놀면 안된다며 통금 걸고 핸드폰이랑 sns 다 뒤져보는 정병유발 부모처럼 될 뿐이다.
그런 부모들? 용돈 많이 주니까 자기들이 사랑하는 줄 안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라면서.
인간을 이해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연예)산업도 오래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인간에게서 편리한 환상의 이미지만을 뽑아내려고 하니까.
이 아이돌 산업이 오래 가려면, 10대의 미숙한 사람들이 춤이랑 노래를 몇년간 연습하다가 곧바로 수만, 수십만의 가십거리가 된다는 가혹한 현실을 좀 이해를 해야한다.
자기가 돈 쓰는 사람이고 자기 기분에 거슬리면 다 꺼져야 한다는 갑의 논리만을 주장할 거라면 어쩔 수 없을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