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바깥을 찾아보기 시작한 Z세대
10월22일 멜론차트를 보면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함께한 《APT.》와 에스파의 《UP》 그리고 제니의 《Mantra》 같은 K팝 아이돌의 음악들이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있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띠는 건 데이식스다. 데이식스는 멜론 톱100 차트 20위권에만 최근 발매한 'Fourever' 앨범 수록곡인 《Happy》 《Welcome to the show》는 물론 예전에 냈던 곡들인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녹아내려요》 《예뻤어》까지 순위에 올렸다. 물론 아이돌 같은 외모에 남다른 밴드 실력을 갖춘 팀이다. 확고한 팬덤까지 보유하고 있어 이런 차트 상위권 기록이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이처럼 여러 곡이 동시에 채워지고 있는 건 놀라운 일이다.
같은 날 차트 20위권에 오른 QWER의 《내 이름 맑음》 《고민중독》이나 버추얼 아티스트 플레이브의 《Pump up the volume!》과 《Way 4 LUV》, 나아가 《선재 업고 튀어》의 OST로 극 중 이클립스 밴드의 보컬 역할을 한 변우석이 부른 《소나기》가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이들 곡은 물론 색깔이 조금씩 다르지만, 밴드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올해 가요계에는 '밴드 붐'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찍이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잔나비는 물론 최근 인기가 급상승해 차트를 '올킬'하고 있는 데이식스, 남다른 음악 스타일로 현재의 밴드 붐을 견인했다고 평가받는 실리카겔 등 다양한 밴드가 주목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코로나 시국에 억눌려 있던 콘서트에 대한 갈망이 밴드음악을 통해 폭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 올해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역대 최다 관객 수를 경신했다.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역시 3만5000여 명의 관객이 몰려 뜨거운 열기 속에 공연을 즐겼다. 특히 이번 부산국제록페스티벌에서는 국내에도 팬덤을 가진 일본의 유명 록밴드 스파이에어 공연에 관객들의 관심이 집중됐는데, 이건 최근 J팝에 열광하는 Z세대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밴드음악에 대한 갈증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방탄소년단이 군대 문제로 완전체 활동이 정지된 상태지만 솔로로 이어지는 정국이나 진, 지민의 활동에는 여전히 글로벌 팬덤이 결집한다. 또 에스파나 뉴진스, 세븐틴, 르세라핌, 아일릿, 스트레이키즈 같은 K팝 아이돌들의 글로벌 저변 또한 분명하다. 가온차트의 글로벌 K팝 차트를 보면 그 꼭대기를 차지하는 건 대부분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K팝이 아이돌 음악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비슷한 장르의 믹싱과 거기 어울리는 아이돌 특유의 춤과 노래 그리고 뮤직비디오는 이제 K팝 아이돌 음악의 공식이 됐지만 동시에 '클리셰'처럼 되어가는 면이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한 목소리는 의외로 국내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아예 태어나서부터 K팝을 듣고 자란 Z세대들의 경우 이제 모두가 똑같아 보이는 음악에 대해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가 적지 않다. 특히 남들과 다른 나만의 경험을 추구하는 Z세대의 특성상 모두가 듣는 차트 꼭대기의 음악은 오히려 '개성 없음'으로 여겨지는 추세다.
이들은 새로운 나만의 음악을 찾아 아이돌 음악 바깥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최근 갑자기 J팝과 밴드음악이 국내 팬덤을 갖기 시작한 이유다. 밴드음악은 자체적인 악기 연주와 창작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그 다양성이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게다가 최근 Z세대가 원하는 라이브 무대에도 최적화되어 있다. 똑같은 음악과 무대에 식상해하는 Z세대들은 라이브 무대의 일회성과 그 대체 불가능한 시간을 함께하는 것에 열광한다.
K팝의 획일화 경계해야
물론 아이돌 음악이 가진 잠재성과 가능성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돌 음악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라도 기반이 되어줄 수 있는 밴드음악 같은 저변들이 폭넓어져야 한다. 밴드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아이돌 음악의 색다른 양분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돌'이라는 틀에 가둬놓는 방식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냐는 의구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아이돌은 본래 10대 혹은 20대를 대상으로 높은 인기를 얻는 연예인 특히 가수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이의 제한을 받는 용어가 됐다. 20대만 돼도 아이돌로 나설 수 없는 나이처럼 여겨지던 과거 아티스트들의 데뷔는 더 일찍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아이돌의 범주가 30대 이전의 20대까지를 아우를 정도로 넓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아이돌이라는 개념의 틀은 연습생은 물론이고 데뷔한 그룹의 멤버들조차 옥죄는 족쇄가 되고 있다. 아이돌 데뷔에 나이 제한이 있다는 압박감이 연습생들에게는 초조와 불안을 만들어내고, 데뷔한 후에도 끝나는 시효가 있다는 사실이 아이돌 그룹의 향후 나아갈 방향을 흔들리게 만든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팀이 해체되는 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저마다의 솔로 활동을 하거나 잊히는 과정이 반복된다. 적어도 이 틀을 깨는 것만으로도 훨씬 더 '롱런'할 수 있는 아티스트들이 가능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K팝이 아이돌 음악을 통해 갑자기 글로벌 무대에 등장함으로써 하나의 유일한 방향성처럼 치부되는 건 그 자체로 K팝의 발목을 잡는 일이다. 이미 서구에서는 K팝의 획일성을 지적하며 그 대안으로서 J팝이나 V팝 같은 새로운 지역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심지어 국내의 젊은 세대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취향을 담보할 수 있는 장르의 다양한 아티스트를 찾아 개인적인 플레이 리스트를 꾸미는 중이다. 그래서 이제 'K'로 지칭되듯, 마치 모두가 다 좋아할 것 같은 음악에는 오히려 시큰둥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차라리 남들이 모르는 인디음악을 찾아 듣는 새로운 경향이 생겨나는 것이다.
글로벌하게 사업이 확장된 기획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변화는 마이너한 일이라 여겨질 수 있다. 사업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더 보편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 채산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은 그렇게 비즈니스만으로 지속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창의적이고 독보적인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음악을 내놓을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자생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 밴드 붐이 보여주는 대중의 갈증을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제 '애프터(after) K팝'을 생각해야 K팝의 미래가 보이는 시점에 들어와 있다.
시사저널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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