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의 작성자가 강명석이란 사실을 접했을 때 약간 놀라움을 느꼈다. 특별히 그의 글을 찾아 읽는 건 아니었지만, 문건 내용이 그가 평소 미디어를 통해 쓰던 글들과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 문건이 황당한 부분도 그렇다. 도덕적 차원에서도 문제를 지적할 수 있지만, 업계 동향 리뷰라기엔 너무할 만큼 알맹이가 없다. 아이돌들에 대한 잡담 수준의 인상평과 팬덤들의 동향을 정리하는 정도인데, 대형 기획사 내부에서 시간을 들여 회람될 가치가 있는 보고인지 의아하다. 예전 연예가 엑스파일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건 루머건 뭐건 연예인 사생활에 관한 팩트 형식의 정보라도 있었지만, 이건 인터넷 커뮤니티를 눈팅한 소감을 써놓은 메모장처럼 보일 지경이다.
강명석 같은 식견이 검증된 평론가에게 동향 보고를 맡기는 건 업계에 관한 감각과 정보, 식견을 듣고 싶다는 것일 텐데, 저 보고서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아이돌 팬을 아무나 한 명 붙잡고 써보라고 해도 해치울 수 있는 내용이다. 특히, 자사 아이돌에 관해선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일관하고 타사 아이돌에 관해선 험담 수준의 비관론을 쓰고 있는데, 경영자들이 알아야 하는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진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상황은 하이브의 집단적 인지 능력에 근본적인 의심을 품게 한다.
하이브는 BTS 이후 방시혁이 손을 대서 제작한 아이돌 그룹이 이름값에 걸맞은 규모로 성공한 적이 없다. 지난 몇 년 간 마케팅 전쟁이 극도로 치열했던 신인 걸그룹 경쟁에서도 앞서 가는 수완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상황들이 과연 내부 문건을 통해 들춰진 “업계 동향” 파악 수준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이돌 시장의 주된 계층은 이삼십 대 여성 팬덤인데, 사오십대 중년 남성끼리 모니터링을 취합하고, 보고하고, 평가도 하고, 전략도 짜고, 험담도 하고, 정신승리도 한다. 시장 현실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인지 편향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들이 제작한 걸그룹은 여성향 콘셉트를 표방하거나 콘셉트에 섞어 내면서도 이상하게 아저씨 팬덤 취향으로 휘어져 있는 상태다.
저 동향 보고서의 글줄 상태는 케이팝 평론과 케이팝 산업의 관계맺음을 향해 아픈 질문을 던진다. 케이팝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 중 손꼽히는 평판을 쌓은 인물이 그를 바탕으로 케이팝 1위 기획사에 들어가 “동향 보고”를 하는 중책을 맡았지만, 그렇게 작성된 보고서의 실체는 아전인수 격의 ‘듣기 좋은 말들’이었다. 케이팝 산업의 유력 인사들이 과연 비평 담론의 쓸모를 무엇으로 보고 있는지, 비평 담론의 생산자들이 어떤 양태로 그들과 공생하고 있는지, 그 일각을 단적으로 비추는 조명이 켜졌다고 할까.
강명석은 하이브에 들어가기 전에 언론 매체에 쓰던 글과 들어간 후에 위버스 매거진에 쓰는 글 사이 차이가 없다. 외부자로서 생산하던 특정한 수신자 없는 비평과 특정 회사의 내부자로서 팬들을 수신 대상으로 쓰는 글이 동질하다는 건 케이팝 평론의 현실에 어떤 목적을 전략적으로 겨냥하는 성격이 있다는 뜻이다. 내 아이돌에게 깊은 의미를 부여해 줘서 팬덤을 흐뭇하게 하는 읽을거리, 마케팅 수행에 동원되는 미사여구로서의 문필적 호객 행위다.
케이팝 담론에는 중간이 없다. 무조건 의미를 부여하는 긍정을 위한 긍정의 담론과 무조건 의미를 격하하는 부정을 위한 부정의 담론만이 양립한다. 회사와 팬덤이 벌이는 ‘우리 아이돌’과 ‘너희 아이돌’의 견제와 암투의 무간지옥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커뮤니티 게시물을 긁어서 [단독] 타이틀을 달고 악플을 재생산하는 연예 뉴스들이 찍혀 나온다. 좀 더 격식을 챙기는 평론 형식의 글 역시, 다수 여론에 밉보여 고립되는 개별 아이돌이 있다면 창끝을 숨기지 않고 적의에 합류하기도 한다. 케이팝 평론을 쓰는 필자 중엔 자신의 견해와 가치관을 바탕으로 공들여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케이팝 평론의 실태를 한 마디로 싸잡는 건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중간지대가 사라진 공론장에선 그런 의견들은 읽거나 공유하는 사람이 적다. 담론은 자연스레 수요의 자석에 딸려 가거나, 어느 한편에 붙은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는 행위로 변질된다. 이미 정해진 입장만 사수하는 사람들 대다수에게, 사안의 성질에 따라 내려지는 서로 다른 판단은 이해될 수 없는 소음이거나 용서할 수 없는 ‘태세 전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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